동물 복지 2
불교와 육식의 문제
남궁 선
철학 박사, 마음편한요양병원 원장
불교 하면 자비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자비 하면 불살생을 우선으로 한다. 불살생은 생명 존중과 맥을 같이한다. 불교의 자비 대상은 인간에 국한하지 않는다. 인간 이외의 생명체도 그 대상이 된다. 불식육계가 불교에서 성립된 이유다.
그러나 절에서 사찰음식을 공양할 때를 제외하고는 불자들조차도 불식육계를 그리 잘 지키는 편은 아니다. 건강을 위해서 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 나름의 논리 정연한 이유가 있다. 그 내용은 아주 다양하다.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을 죽이는 것도 살생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잡식동물이다.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 육식은 계속 유지된 식습관이었다. 그리고 부처님도 육식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육식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채식을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살생이 발생하게 된다.
풀을 뜯어 먹으면서 초식동물에 의한 1단계의 살생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그 짐승을 잡아먹으면 우리는 2단계의 살생에 가담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2단계의 살생을 식습관으로 하는 잡식동물이나 육식동물을 식용으로 하는 것은 3단계의 살생을 거쳐야 우리의 입에 음식물로 들어오게 된다. 이처럼 단계가 많아질수록 살생당하는 중생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또한 식물을 살생하는 것과 동물을 살생하는 것은 급이 다르다. 식물은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지 않는 한 다시 생명을 되찾을 수 있고, 곡물의 경우에는 한 알의 씨앗에서 수많은 열매가 열린다. 그러나 동물은 개체 생명이 일단 희생되면 재생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식물은 감각기관이 동물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고통의 강도가 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살해당하는 순간 고통을 견디지 못해 동물들이 지르는 비명 소리를 들어보아야 한다. 꼭 저렇게 동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으면서 내 입맛을 고집해야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식물은 동물의 배설물과 사체를 영양으로 삼아 생존에 도움을 받는다. 생태적으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동식물이 나눠 갖는다는 점이다.
부처님은 육식을 일부러 피하지 않으셨다. 생명의 소중함과 중생의 노고가 깃들어 있는 음식물을 버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택권이 없이 탁발해서 얻은 음식물 중에 들어 있는 동물성 식품을 부처님은 거부하지 않으셨다. 우리와 달리 부처님은 결코 맛에 탐착해서 음식물을 드신 게 아니었다. 부처님에게는 먹는 것도 일종의 수행이었다. 맛을 즐기기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우리가 육식을 하는 것은 부처님이 고기를 먹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식사 행위다. 부처님도 고기를 먹었으니까 우리도 고기를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큰 착각이다. 고기를 먹고 싶으면 그냥 조용히 먹으면 되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한다고 부처님까지 끌어들이지 말자. 그것은 불자의 태도가 아니다. 이제 불교에서 육식을 자제해야 할 당위성은 너무 뚜렷하다. 앞으로는 육식의 유혹에서 벗어나보자.
지금부터는 다른 측면에서 육식의 폐해를 알아보자.
우리는 건강에 필수적인 단백질 섭취를 위해 육식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정보 때문이다. 사람이 단백질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는 1930년대의 생각은 1970년대에 깨졌고 보건 기구들은 단백질 권장 섭취량을 3분의 1 수준으로 낮춰서 발표했다. 그렇게 낮춰진 수준은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하는 성인의 경우 빵, 파스타, 밥, 감자만으로 이루어진 식사를 하더라도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미국영양협회는 “적합하게 잘 짜인 채식 식단은 건강식이고 영양식이며 특정 질병들의 예방과 치료에 이롭다. 임신기, 수유기,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성인기 등 인생의 모든 시기에 적합하다. 운동선수에게도 적합하다”라고 밝혔다. 동물성 단백질의 과다 섭취는 인간의 건강에 해로운데도 전 세계의 많은 곳에서 매일 섭취하는 단백질 양은 권장량을 훨씬 뛰어넘는다. 성인은 평균 50g의 단백질을 필요로 하지만, 2009년 1인당 평균 단백질 섭취량은 68g으로 필요량보다 36% 더 높았다. 제러미 리프킨은 『육식의 종말』 에서 적색 육류에 대한 최적의 소비량은 0%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쇠고기 소비문화 중심의 서구 세계에서 결장암 발생률은 쇠고기 비소비 문화권인 아시아와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에 비해 10배가 높다고 한다.
동물성 식품 섭취는 에너지 효율성이 크게 떨어진다. 예를 들어보자. 사람이 옥수수를 직접 먹으면 옥수수 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 그런데 옥수수를 짐승에게 먹이면, 90%의 에너지는 잃어버리고 만다. 섭취된 옥수수는 짐승의 뼈나 털을 만드는 데 사용되거나, 활동하거나 신진대사에 소모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쇠고기 1㎏을 생산하기 위해서 약 5㎏의 옥수수나 콩을 사료로 먹인다. 이렇게 해서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40%가 쇠고기 생산을 위해 소모된다.
채식주의자들이 ‘음식 사슬의 낮은 단계’에서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음식 사슬이 한 단계 올라갈 때마다 음식에 포함된 에너지 양이 10분의 1로 감소한다. 자연 생태계의 경우 먹이에 비해 포식자가 지극히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식량경제학자 프랜시스 무어 라페는 식량 재배와 가축 사육에 사용되는 각각의 토지 생산성을 다음과 같이 비교했다.
곡물 재배에 사용되는 1에이커의 토지는 육류 생산에 사용되는 1에이커의 토지보다 5배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콩류(대두, 완두콩, 렌즈콩)를 심으면 10배 많은 단백질을 생산하며, 잎이 많은 야채를 심으면 15배나 많은 단백질을 생산하고, 시금치를 심으면 무려 26배나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 1에이커의 기름진 땅에서 감자는 4만5,000파운드, 당근이라면 3만 파운드, 토마토는 1만5,000파운드, 쇠고기는 250파운드를 생산할 수 있다.
‘고기를 먹는 환경론자란 자선을 베풀지 않는 자선가나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하는 학자의 말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는 통계적 증거다. 음식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자연의 은혜다. 음식물은 태양과 지구와 생명체가 합작해 만들어준 생명의 산물이다. 자연의 건강은 우리가 먹는 동식물의 건강, 우리의 음식 문화, 우리의 몸과 정신의 건강까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인류의 생존 문제가 달려 있는 심각한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의 선택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 사회 문화와 인간 생존 차원의 행위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음식은 생명을 죽여서 생명을 살리는 자연 순환의 과정이다.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부정과 긍정이 교차하는 행위다. 그런 가운데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 상황은 음식의 선택에 대해 각자에게 무한한 권리를 인정할 수 없게 진행되고 있다. 불자가 불식육계를 지켜야 할 당위성이 충분한 시대가 도래했다.
남궁 선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불교생태학 전공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불교환경연대 회원이며 마음편한요양병원 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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