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교를 보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②
이수정
창원대학교 철학과 교수・대학원장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불교라고 하는 종교가 있다. 2,000 수백 년 전 인도 북부 카필라 왕국에서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우치고 펼친 가르침이다. 그게 중국을 거쳐 이 땅에 들어와 천 년 넘게 우리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2021년 지금도 그것은 엄연한 하나의 현실로서 우리의 삶에 작용하고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전국에 많은 사찰과 스님들이 있다. 불교와 전혀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도 성철, 숭산, 법정, 법륜, 현각, 혜민 등의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스님들이다. 불교가 그만큼 우리 가까이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불교란 도대체 뭘까? 우리는 이 종교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불교 관련 서적과 강좌가 무수하고, 수많은 불도들이 절에 가서 불상 앞에 향불을 피우고 합장하고 절을 하며 뭔가를 빈다. 도대체 뭘 빌고 있을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들도 없지 않다. ‘부처님 (누구누구) 병을 낫게 해주세요, 부처님 돈 좀 벌게 해주세요, 부처님 우리 남편 승진하게 해주세요, 부처님 우리 아이 수능 잘 봐서 좋은 대학 붙게 해주세요…’ 그런 부류가 아마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도에 부처님은 과연 어떤 응답을 하실까. 그런 불도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런 건 사실 불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단언하지만 부처는 신이 아니다. 그런 것을 들어줄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 부처가 가리키는 방향은 오히려 그 반대쪽이다. 어떤? 의외로 분명하다. 모든 인간적 욕망을 부정하는 쪽이다. 부귀공명은 분명히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의 헛됨을 보라는 것이다. 특히 그 모든 것의 원점인 나라는 것의 헛됨(오온개공)을 꿰뚫어보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이 다 괴로움의 원인이 되니 그런 것들에 대한 갈애를, 집착을 버리고 올바른 길을 걸어 고요의 경지에 이르라는 것이다. 그런 쪽으로 건너가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도(度)’다. 그게 바로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뜻이다. 고에서 멸로! 그런 방향으로 걸어가라는 것이다. 그게 불교다. 3법인 4성제, 8정도, 12연기,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색즉시공, 수상행식 역부여시(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그런 말들이 다 그런 쪽을 가리킨다. 일체개고를 열반적정으로 바꾸는 게 불교의 핵심인 것이다. 그러니 ‘고에서 멸로’, 즉 ‘도(건넘)’ 이것을 제대로 모르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외운다 해도 불교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아는 A는 뛰어난 물리학자다. 그는 스스로 양자물리학의 대가임을 자처한다. 나는 그쪽을 잘 모르지만, 주변에서도 그의 실력은 인정한다. 더욱이 그는 시도 쓴다. 몇 권의 시집도 냈고 뒤늦게 모 문예지를 통해 이른바 ‘등단’도 했다. 그는 시인이라는 이 타이틀을 아주 명예롭게 생각했다. 나도 같은 등단 시인으로서 언어를 다루는 그의 솜씨를 일정 부분 인정한다. 그는 또 자연과학의 좁은 틀에 갇히지 않고 인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철학에도 조예가 깊다. 더욱이 그는 불교까지도 섭렵했다. 그것으로 그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법화경』 공개강좌를 운영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의 강좌를 직접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수강생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고 했다. 이러기가 어디 쉬운가. 그는 참 대단한 인물임이 틀림없다. 더욱이 그는 소위 스카이대학 출신이고 미국의 모 대학에서 연구원을 지냈으니 더할 나위 없는 스펙이다. 게다가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다.
그런 그를 나는 높이 평가했으나 끝내 그의 친구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그런 자기를 항상 과시하고 싶어 했고, 자기에게 거슬리는 사람들을 쉽게 적대시했다. 적에 대한 그의 비난은 단어를 가리지 않았다. 발설한 ‘그다음’은 전혀 그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가 누군가에 대해 날선 비난을 쏟아낼 때마다 나는 가장 먼저 ‘구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건 독설이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결국 그는 술 때문에 건강을 잃었고 독설 때문에 친구를 잃었고 돈 때문에 직장을 잃었다. 모르긴 해도 그의 흉중에는 고의 파도가 일렁이고 있을 것이다. 갈애와 집착의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과연 『법화경(묘법연화경)』의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 있는지 나는 참으로 궁금하다. 그의 이름은 말하지 않겠다. 나는 그가 언젠가 그 괴로움의 강을 건너 고요한 저 언덕에 도달하기를, 거기서 그윽한 미소를 띤 부처의 마중을 받게 되기를 축원한다.
•이번 호를 끝으로 이수정 교수의 <다시 불교를 보다> 연재를 마칩니다.
이수정 일본 도쿄대(東京大)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철학전문과정에서 석사 및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프라이브루크대 연구원을 지냈고, 한국하이데거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월간 『순수문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창원대 철학과 교수·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향기의 인연』과 『하이데거-그의 생애와 사상』(공저), 『부처는 이렇게 말했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 도덕경의 새 번역, 새 해설』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