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끝만큼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나의 불교 이야기

털끝만큼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

주경 스님
대한불교조계종중앙종회 의장


고교 시절 사찰 법회와의 인연이 출가로 이어지다
전에 없었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돌아온다는 기약 없는 출가의 인사를 드리는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해 등을 돌리는 아버님과 눈물이 어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뒤로하고 걸어가는 마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았다.

궁금한 것이 무척이나 많고 호기심이 넘쳐나는 것이 본성이었는지 한글을 배우고 혼자서 책을 읽을 수 있을 때부터 몇 년간 국어사전이 손에서 떠난 적이 없었고, 눈에 띄는 대로 온갖 책들을 읽었다.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식에 대한 탐구와 열정은 넘쳐났다. 항상 이야기하고 따지고 토론하는 것을 즐겨 했기에 어릴 때부터 청산유수라는 별명이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진학도 부모님의 뜻과 상관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했다.

둘째 형님의 인연으로 고교 시절 사찰 법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고3이 되어 대학 진학에 대한 압박을 받을 때까지 한 번도 일요 법회에 빠진 적이 없을 만큼 법회에 매료되어 있었다. 고교와 대학 7년 동안 여러분의 스님들을 법사로 인연을 맺었고 스님마다 각기 개성과 특색이 있었다. 그중 한 분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단아한 인상과 산뜻하게 주름 잡힌 가사에 명쾌하고 지식이 가득한 법문. 아직도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매력적인 스님 중의 한 분으로 출가의 욕구를 강하게 자극한 분이다. 참선할 때 숨소리가 너무 커서 내 숨소리를 거듭 살피게 한 스님도 있었고, 개그맨처럼 재미있고 즐거운 법회를 하시겠다는 의욕 넘치는 스님도 있었다. 녹차를 처음 마셔본 것도 스님의 방에 가서 있었던 일이고, 학생 법회 법사이면서 동국대학교 학인이셨던 스님의 방에서 경전을 빌려다 읽으며 부처님의 생전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때로는 엄중하지만 가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사 주시던 스님들은 다정하고 편안한 선배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수행자로서의 위의와 엄중함도 큰 매력이었고, 일상을 함께하는 편안함도 또 다른 멋이었다.

고교 3학년이 되면서 대학 진학을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가장 큰 관심사는 가출이고 독립이었다. 가족을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싹이 자랐고 고3이 되면서 확실해졌다.

최우선이며 최고의 선택 출가… 훌륭한 스승과 길잡이가 큰 변화 만들어
대학에 진학하며 가출의 꿈은 잠시 잠복했고, 대학생활은 한없이 자유롭고 활기찼으며 즐거운 시간이었다. 진리 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가치도 접했고, 1980년대 초 민주화의 소용돌이에서 운동권 친구들과 어울리며 민주주의를 외치기도 했으며, 대학생불교연합회에 몸을 담아 전국으로 불교학생회 법우들과 법회와 활동의 시간은 군 입대도 미루게 했다. 그렇게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청춘의 파티는 대학 졸업과 함께 끝이 났다.

다시 선택의 시간이 되었을 때, 주저 없이 출가를 결정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넘치는 아이디어와 가슴속의 열정은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고 어떠한 길이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지만 최우선이며 최고의 선택은 출가(出家)였다.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길,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출가였던 것이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면서 마음속에는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우선 한 3년 절에서 살아보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때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를 생각하곤 한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고.

숭산 행원 스님과의 인연으로 수행의 관문이 열리다
출가한 첫날 객실에서 자고 새벽 예불을 드리러 일어나 차가운 새벽 공기를 한 가슴 들이마셨다. 그리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선택했음을 알았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무척이나 상식적이고 고지식한 성격의 사람이다. 보통 사람의 시각과 생각에서 벗어나거나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대체로 사람들이 적게 간 길에 닿아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세속과 출가의 차이가 별로 없다고 본다. 원효 스님께서는 ‘사람이 누군들 산으로 가서 수행하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설파하셨다. 선택과 결정의 문제일 뿐이다. 중생은 세상을 선택하고, 스님은 출가를 선택한 것이다.

승찬 스님의 『신심명(信心銘)』 가운데 ‘호리유차(毫釐有差), 천지현격(天地懸隔) 털끝만큼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는 말씀은 차이에 대한 극명한 가르침을 준다. 서산 부석사 주지 시절 일주문을 지으며 ‘삼일수심도량(三日修心道場)’이라고 중간 현판을 달았다.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 사흘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라는 『자경문(自警文)』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중생이 깨달아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이니 3일 만이라도 수행해서 깨달음의 인연을 지으라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한국 선불교를 전파하신 숭산 행원 스님과의 1994년 스리랑카에서 3일간의 인연은 크나큰 행운이고 공덕이었다. 혼자 수행하는 중에 속이 꽉 막혀서 답답함을 풀 길 없을 때, 스님께서는 새벽이나 늦은 밤을 가리지 않고 세 번의 인터뷰를 허락하셨고 그 인연으로 1995년 하안거를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살게 되었다. 훌륭한 스승과 길잡이가 있어서 병통이 치유되고 수행의 관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선지식의 인연은 평생을 관통해 힘을 발휘한다. ‘다만 할 뿐’이라는 당신의 가르침은 언제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더라도 담담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할 일을 하게 한다.

우리 덕숭산의 대선사 만공 스님께서는 나를 완성시키는 데는 3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도량(道場), 도사(道師), 도반(道伴)의 삼도라고 하셨다. 문인으로 일생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가르침이다.


주경 스님|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대학생불교연합회 서울지부장 겸 전국부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수덕사로 입산 출가해 비구계를 받았으며,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한서대 대학원 문화재보존관리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댈러스 포교당 해외 포교 활동을 비롯해 서산 부석사 주지,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국장, 템플스테이 사무국장, 불교문화사업단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것』, 『나도 때론 울고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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