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종교가 만나려면
불교와 힌두교
박기열
동국대학교 인도철학·불교학연구소 연구초빙교수
인도는 기원전 약 3,000년 전부터 고대 인류 문화가 꽃피었던 인더스 문명의 발생지로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약 1,500년경 아리안족은 페르시아 지방을 거쳐 중앙아시아를 횡단해 지금의 파키스탄과 인도의 분쟁 지역인 카슈미르를 거점으로 서서히 인도 북동 지역을 정복해나갔다. 힌두(Hindu)라는 말은 인도의 아리안족을 지칭하는 페르시아어, ‘Hindhū’를 어원으로 하는 그리스어 ‘Hindū’에서 비롯되었다. 즉 힌두는 다른 나라가 인도를 지칭하는 표기다. 그러나 이 말의 어원 속에는 인더스 문명을 일으켰던 토착민을 정복하고 정착한 아리안족과 그들의 문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아리안족은 본래 유목민이었다. 그들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하늘, 바람, 물, 불, 땅 등을 신격화해 자신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길 기원하는 많은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는 베다(Veda)로 불리며 구전되었고, 베다의 신들은 이후 추상화되어 만물의 창조자(Brahmā), 유지자, 파괴자라는 삼신일체(trimūrti)로 자리 잡게 된다. 이와 더불어 신들에게 지내는 제사는 신들이 행복 또는 불행을 내리게 하는 결정적 수단이기에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 제사의 형식과 진언은 종교·철학적 의미를 더해갔다. 힌두교(Hiduism)는 넓은 의미로는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를 말한다. 그러나 좁은 의미로는 베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종교, 즉 아리안족의 전통을 잇는 종교만으로 한정되고, 이 좁은 의미에서 힌두교를 바라문교(Brahmanism)라고 부른다. 한편 현대의 힌두교는 바라문교에 토착민의 신앙이 결합된 형태로 발전되었고, 시바교와 비슈누교로 크게 구분된다. 시바교는 카슈미르 시바파, 남인도 시바성전(파슈파티)파, 샤크타파가 있다. 비슈누교는 바가바타(Bhagavata)파가 가장 크다.
시바는 파르바티(Parvati)를 부인으로 두고 우주의 파괴를 관장한다. 그는 형태를 가지지 않으나 링가(liṅga)로 상징되어 신전의 가장 중요한 곳에 안치된다. 그는 전지전능한 요가의 완성자로서 자애의 얼굴과 모든 악마를 물리치는 무서운 얼굴을 동시에 갖는다. 시바교의 샤크타파는 인도 탄트리즘(Tantrism)을 대표하는 학파로서 의례와 진언 그 자체를 신과 동격화해, 그것들을 통해서 신과의 합일이라는 최고의 경지를 추구한다.
한편 비슈누는 락슈미를 부인으로 두고 우주의 질서 유지를 관장한다. 그는 다양한 세계 어디라도 존재하는 신이기에 그의 모습은 변화무쌍하다. 그는 부인 락슈미와 함께 태초의 우유 바다에 떠 있는 시간을 의미하는 코브라의 똬리 위에서 일체를 관조하며 수면을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비슈누의 10종류의 화신-인어의 모습을 한 마트샤, 거북이의 모습을 한 쿠르마, 멧돼지의 모습을 한 바라하(Varāha), 반인반사자의 모습을 한 나라싱하(Narasiṃha), 난쟁이의 모습을 한 바마나(Vāmana), 도끼를 든 선인 파라쉬라마, 『라마야나』의 주인공 라마(Rāma), 불교의 개조 붓다(Buddha), 날개를 가진 백마를 타는 영웅 칼키(Kalki)-는 그의 다양한 현현을 대변한다.
힌두교도들은 힌두교 성전의 가르침(dharma)을 준수하고, 경제적 이익(artha)을 위해 근면하며, 삶의 즐거움를 추구한다. 구체적으로 자신의 신분(카스트)에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제사를 정성껏 지내는 행위의 길, 베다의 지혜를 배우는 지혜의 길, 신의 은총에 의한 해탈을 위해 신을 진실하게 섬기는 신애의 길을 실천한다. 그들은 이와 같은 덕목들의 실천을 통해서 선업을 쌓아 윤회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힌두교는 신과 자아를 영원한 존재로 보고 자아가 신과 합일하는 것이 해탈이고,
진리란 베다의 말이라고 한다. 반면에 불교는 신과 자아를 영원한 존재로
상정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괴로움의 멸이 해탈이고,
진리란 집착 없이 존재 그 자체의 무상성을 통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기원전 500년경, 바라문교의 베다 사상을 반대하는 자유사상가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불교의 개조, 고타마 싯다르타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기존의 사상과 수행을 직접 체험하고 인생의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거기에는 없음을 알고, 독자적인 수행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었다. 즉 붓다는 세계가 시간적·공간적으로 영원한 것인가 아닌가? 영혼은 육신과 같은 것인가 아닌가? 깨달은 자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아닌가?와 같은 질문은 질문자의 괴로움을 없애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침묵했다. 그는 오로지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 괴로움의 멸, 괴로움을 멸하는 방법에 관해 다양한 예시를 통해서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했다.
불교의 가르침은 신과 자아를 전제로 하는 힌두교의 가르침이 진리를 말해줄 수도 있지만, 그 진리가 현실의 괴로움을 없애줄 수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이상과 같이 힌두교와 불교는 모두 업, 윤회, 수행, 해탈, 진리를 공통으로 추구하지만, 그 내용은 서로 상이하다. 힌두교는 신과 자아를 영원한 존재로 보고 자아가 신과 합일하는 것이 해탈이고, 진리란 베다의 말이라고 한다. 반면에 불교는 신과 자아를 영원한 존재로 상정하는 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고, 괴로움의 멸이 해탈이고, 진리란 집착 없이 존재 그 자체의 무상성을 통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힌두교는 불교의 개조인 붓다를 비슈누의 화신 중의 하나에 포함하지만, 불교는 힌두교의 신들을 불법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지위로 격하한다. 예를 들면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범천, 천둥의 신 인드라는 제석천, 부와 번영의 신 락슈미는 길상천 등이 대표적이다. 불교에서 이들 신의 역할은 깨달음을 위한 방편일 뿐, 그 자체가 궁극적 진리가 아니다.
불교는 힌두 문화에서 탄생한 종교다. 특히 대승불교의 삼신 사상과 보살 사상은 힌두교의 삼신일체 또는 비슈누의 화신 사상과 닮았다. 또한 『바가바드기타』 4장 7~8 게송에서 비슈누의 화신 크리슈나가 “바라타의 후예여, 정법이 쇄하고, 비법이 성하면 나는 자신을 드러낸다. 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악한 사람을 멸하기 위해, 정의를 확립하기 위해, 나는 천 년마다 출현한다”라고 말한 것은 불교의 미륵 사상과 유사하다. 나아가 불교가 인도에서 티베트로 옮겨가기 전까지 불교 철학과 힌두철학은 논쟁의 역사를 통해서 각각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최종적으로는 힌두교는 불교를 배척하지 않고 자신의 교리 속에 포함시켰다. 불교 또한 다른 지역에서 그 지역의 토착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포용해 불교화했다. 이와 같은 타 종교에 대한 포용력도 불교와 힌두교가 지닌 힌두문화로서의 공통점이라 할 것이다.
박기열 일본 교토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에서 인도불교 전공으로 철학 박사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인도철학·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 『인식론과 논리학』, 『유식학파의 실재·형상·존재에 관한 인식론적 논증』 등이 있고, 「원효의 외도(tīrthaka) 비판에 관한 고찰; 『기신론소기』 중 「眞如自性관련 四句 분석을 중심으로」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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