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가 있는 풍경 | 사유와 성찰

 사유와 성찰


징검다리가 있는 풍경


이복희 

수필가



대청 창문 앞에 서면 모든 광경이 다 보였다. 아침저녁으로 건너가는 사람, 건너오는 사람이 많아 제법 복잡했다. 이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이 건널 때면 건너편 사람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인적이 드물 때라도 한쪽에서 누군가 먼저 건너기 시작하면 다른 쪽 사람은 기다려야 했다. 어쩌다 같이 건너게 되어 중간에서 마주칠 때의 위태로움이란 보는 사람이 다 아슬아슬했다.

징검다리는 태생적으로 외롭다. 나란히, 또 같이 건널 수 없어 기다림과 배려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갈 수는 있어도 둘이 나란히 갈 수는 없다. 사람살이도 더러는 그렇지 않은가.

디딤돌들은 따로 또 같이 함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조화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그런가 하면 흐르는 물속에 자리를 잡았지만 결코 물살에 맞서지 않고 아쉬움 없이 스쳐 보내는 넉넉함. 기꺼이 등을 내주어 가야 할 길을 이어주는 그 충실함은 또 얼마나 든든한가. 나는 삶의 물살을 여유롭게 견뎌냈을까. 누군가에게 든든한 등을 내준 적은 있었을까. 자신이 없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돌에도 석격이 있다고 해서 웃었던 일이 있다. 돌은 비슷한 것끼리 놓아두면 별로 아름답지 않은데 모양이 서로 다른 것들을 모아두면 훨씬 보기 좋다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징검다리 하나씩을 담아 두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모습도 제각각이었다. 첫 번째 디딤돌 위에 발이 닿기 무섭게 다음다음으로 후다닥 뛰어 벌써 건너편에 가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겁 없는 아이들은 깡충깡충 뛰듯이 가볍게 건넜다. 여자아이가 두 손을 펼치고 치마를 나풀거리며 춤추듯 건너갈 때면 물소리는 그대로 노래가 되었다. 그럴 때 징검다리는 오선지에 놓인 음표처럼 보였다.

매일 두어 번씩 건너면서도 징검다리 앞에 서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다. 냇물이 그리 깊지는 않았지만 돌을 휘감으며 도는 여울물과 울퉁불퉁한 디딤돌의 모양새가 위험해 보여 늘 마음이 졸아들곤 했다.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지나 않을까, 돌이 움직이면 어쩌나 싶은 자잘한 근심들이 건널 때마다 발목을 붙들었다.

나중에 보니 내 삶도 징검다리를 건널 때처럼 늘 아슬아슬했다. 통행인이 뜸할 때는 제일 안전해 보이는 돌 위에 쭈그리고 앉아 물속을 들여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물에 반쯤 잠겨 있는 디딤돌 주변에서는 언제나 송사리 떼를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좁고 검은 등을 보이며 미끄러지듯 날쌔게 움직였다. 마치 제식 훈련을 받는 병사들처럼 무리지어 나란히 서서 동시에 방향을 바꾸는 모습은 암만 봐도 싫증 나지 않는 하굣길의 큰 즐거움이었다. 여름이면 큰 비가 와 물이 불어나면 징검다리는 물속에 잠겼다. 냇물은 낯설고 두렵기만 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잔물결의 사랑스러움도, 도란거리는 물소리도 간데없었다.


삶의 여정에도 간간이 놓여 있던 징검다리들.

하나, 하나를 건널 때마다 허락된 빈칸을 메우며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마침내 바다에 다다를 때까지.


 물론 멀리 돌아서 갈 수는 있었지만 물이 불어난 냇가에서 맛보았던 두려움과 서운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항상 나를 반겨주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차갑게 밀쳐내는 것 같아 당혹스러웠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에 맞닥뜨릴 때가 얼마나 많은가.

물이 빠지고 다시 드러난 징검다리는 자리가 달라져 있기 일쑤였고 돌 몇 개는 떠내려가고 없었다. 그래도 언제 보면 제자리에 다시 정리되어 있곤 했다. 당연히 그러려니 여겼었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다. 그는 아마도 말수가 적은 사람일 것만 같았다. 어쩌면 개울 건너편 구릉 가득 가꿔 놓은 정갈한 밭의 주인일지도 모르겠다. 거친 물살에 패인 자리를 메우고 단단하고 편편한 돌을 골라 놓으며 물속에 맨발을 담그고 있었을 그 사람. 모습을 혼자 그려보는 순간은 가슴이 따뜻해졌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몇몇 그 따뜻한 손길에 위로를 받았던 내 생의 굽이굽이도 그랬으리라.

그곳을 떠날 때까지 내 유년의 모든 날들을 그렇게 징검다리와 함께했다. 나의 유년 시절과 영영 작별을 한 것도 그 다리를 건너면서였다. 몇 년 후, 여고생이 되어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징검다리뿐이 아니었다. 맑고 잔잔하던 냇물은 시커먼 하수로 변해 있었다. 그 후로 가끔 꿈을 꾸었다. 개울을 건너기 위해 언덕에 서 있지만 흙탕물이 넘실대는 바람에 도무지 건널 수 없는 안타까운 꿈을. 징검다리는 그렇게 꿈에서조차 만날 수 없었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유년 시절은 꿈에서조차 나를 밀어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삶의 궤적은 돌이킬 수 없다는 암시였을까. 삶의 여정에도 간간이 놓여 있던 징검다리들. 하나, 하나를 건널 때마다 허락된 빈칸을 메우며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마침내 바다에 다다를 때까지.



이복희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했다. 『에세이문학』, 『에세이피아』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에세이문학작가회 및 일현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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