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하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주체가 되는 곳
소생공단
예쁜 대나무 바구니가 있다. 한창균 씨가 공들여 만든 수제품이다. 평범한 서울 시민이자 수학 선생님이었던 한 씨는 둘째 아이를 낳고 귀농을 결심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전남 곡성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일을 배워 목수로 다시 태어나는, 인생 2막을 준비 중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담양 대나무 박물관을 찾았고, 거기에서 대나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미친 듯이 대나무 바구니를 짜고, 담양의 대나무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스스로 연구했다. 공예 쪽으론 아무런 인맥도 없었으며 교육기관 같은 연계 기관도 알지 못했다. 그에겐 그저 열정뿐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집 뒷산에서 대나무를 직접 키우고 가꿔서 작업을 이어갔다. 전통을 응용한 새로운 디자인과 기술적인 도전을 시도하던 그는 소생공단을 만나 자신의 열정을 업으로 발전시켰다.
“근본적으로는 ‘유통’이에요. 소규모 생산을 하는 생산자들을 찾아서 그들이 물건을 팔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소생공단은 크게 세 가지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첫 번째로, 앞서 소개한 한창균 씨처럼, 한국에 있는 창의적인 생산자를 발굴하고 그들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홍보하고 함께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다. 디자이너 출신인 소생공단 이정혜 대표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에서 새로운 상상을 하는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느껴, 직접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다. 스스로 장인이 되어 디자인한 것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을 찾아내고, 물건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좋은 공예품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국에 단 4곳 남은 대장간 장인이 만든 질 좋은 무쇠 칼에 좋은 손잡이를 달아줄 수 있는 목공예 장인을 연결하는 식으로, 장인과 장인을 만나게 해 1+1이 2 이상의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워크숍은 소생공단의 두 번째 업무 분야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 기술이 있었다. 엄마들은 손바느질로 아이들 옷을 해 입혔고, 마을엔 베틀을 두고 직조를 하는 사람이 있었으며, 농한기에는 새끼를 꼬아 신발 따위를 만들곤 했다. 모두에게 재주는 빠른 산업화 속에서 차츰 잊혔다. 이 대표는,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의 긴 노동 시간 탓에 변변한 취미 생활조차 할 수 없는 현대인들이 분명히 타고났을 ‘손재주 유전자’가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사람들이 쉽게 체험하고 참여할 수 있는 워크숍을 기획했다.
세 번째 업무 영역은 ‘오픈 마켓 플랫폼’이다. 생산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가 만든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가게를 열어두었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온라인 시장으로, 손재주를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나의 물건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도록 중개한다.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정도의 간단한 과정을 거치면 나만의 페이지 주소를 부여받고 판매할 수 있다.
새 단장을 마친 소생공단 오프라인 매장은 공간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재고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수공예품만의 감성 때문에 눈을 뗄 수 없으며, 제품마다 얽힌 뒷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이 훌쩍 간다. 취재차 찾은 때에는 오프라인 매장 한쪽에 무형문화재 장인이 만든 채상이 진열되어 있었다. 평생 담양에서 채상 작업을 해온 할머니를 만나 조심스럽게 입점을 제안했던 이 대표는 “나는 서울 사람 못 믿는다”는 단호한 대답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그러나 며칠 뒤, 그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아들과 함께 소생공단을 살펴봤는데, ‘소생공단은 좀 다른 것 같다’는 결론에 닿았단다. 백화점에서 물건 달라고 찾아와도 누가 가치를 알겠느냐며 물건을 주지 않던 할머니였다. 가구 역할을 했던 채상이 시대 변화 탓에 고유의 의미를 잃어버리자 평생 해온 작업에 회의가 들던 때, 장인은 소생공단을 만나 변화를 맞았다. 상품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자 상품이 더 예뻐 보이는 마법이 일어났다.
소생공단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된장, 간장, 청국장 등 전통 장류, 쌀과 현미 같은 기본 곡류, 미숫가루와 보리차 같은 곡류 가공품, 자염, 초콜릿, 차 등 다양한 먹을거리도 취급한다.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시대에, 소생공단이 취급하는 먹을거리는 식품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재료 자체가 지닌 본연의 맛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생산자들이 깐깐하게 생산해낸 제품이라 그야말로 믿고 먹을 수 있다. 가정에서 흔히 먹는 참기름, 들기름도 아주 특별하다. 깨가 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원적외선으로 볶아 냉온 압착해 얻어낸 기름은 고가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처럼 음용이 가능하다. 소금 역시 갯벌에서 채취해 가마솥에서 장시간 끓이는 전통 제조 방법을 복원해낸 자염을 판매한다. 천일염에 비해 좋은 성분은 훨씬 풍부하며, 불순물의 수치가 천일염의 1/14에 불과하다. 이처럼 소생공단은 좋은 재료를 찾아 소량으로 엄격하게 생산하고, 관리하는 좋은 생산자들을 찾아내 소비자들에게 소개한다.
“물건을 사고, 또 사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가치 있는 물건과 오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집에서 쓰는 대나무 채반은 결혼하며 어머니께 물려받았는데요, 수십 년이 지났어도 씻어 말리면 대나무 향이 나요.”
이 대표는 소생공단에서 취급하는 물건들이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넘어 ‘의미’가 되길 바란다. 정성껏 만든 물건을 아끼면서 오랜 세월 정을 주며 쓰기를 원한다.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물건, 물려줄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물건이기를 바란다. 이 바람을 담아 생산자들과 함께 물건을 기획하고, 생산자들은 더욱 정성을 들여 생산하고, 그 가치를 알기에 소생공단은 제품마다 공 들여 홍보하고 판매한다. 아무래도 수공예품은 디자인 제품이다 보니 한 번 출시되고 나면 모방 제품들이 나와 물량 공세를 하는 답답한 상황이 벌어져도, 이 대표는 꾸준히 첫 의미가 퇴색되지 않도록 중심을 지킨다.
공사가 한창인 구 마포 석유비축기지, 이 버려진 땅 위에 자리한 소생공단 안에서 무언가 움트고 있다. 소규모 생산으로 소생공단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 지향점을 위해 소생공단을 운영하는 이들은 물건을 사는 사람 모두를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 아주 깐깐하게 생산해낸 소생공단 상품들이 저마다 생산자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달고, 특별히 의미 있는 물건을 아끼면서 쓰며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박예슬(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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