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세상 읽기
명상의 시간,
‘나’의 경계를 확장하다
『뉴로다르마』
초등학생 시절은 워낙 오래전이라 수업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유독 생생하게 기억나는 유일한 수업 시간이 있다. 바로 ‘명상의 시간’이었다. 엄밀히 말해 명상의 시간은 ‘수업’의 일환은 아니었다. 방송실에서 녹음테이프를 틀어주는 것이었으니, 선생님이 학생들을 직접 지도한 것이 아니었다. 명상에 관한 시험도 없고, 명상을 좀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해서 어떤 제재도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어떤 수업보다 교육적 효과가 뛰어났다. ‘수업한다는 느낌’이 없이, 뭔가를 배우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늘 무언가를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을 길러주는 다른 수업과 달리, 명상의 시간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뭔가 멋지고 뜻깊은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뭔가를 해내서 좋은 것이 아니라 전혀 아무것도 안 해서 좋았던 것이다. 음악과 이야기를 그저 가만히 듣는 것, 그것만으로도 초등학생에게는 훌륭한 명상 수업이었다.
타인과 지내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연습이 필요하다고. 바로 그 의도적인 연습,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의식적인 훈련이 명상이다.
『뉴로다르마』는 바로 그런 ‘명상’의 시간이 누구에게나 신체적이고 정신적으로 커다란 도움이 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명상이 두뇌 개발은 물론 신체 건강에도, 나아가 자기 계발이나 심리 치유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저자릭 핸슨은 평생의 연구를 거쳐 낱낱이 밝혀냈다. 『뉴로다르마』는 전작 『붓다브레인』을 뛰어넘어 더욱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명상의 뛰어난 효과에 대해 증명한다. 사실 명상을 하면서 느낀 기쁨은 단지 ‘아무것도 안 하는 기쁨’만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다른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신체의 다른 부분의 활동에 대한 과도한 열망을 완전히 내려놓음으로써, 나도 모르게 뇌 기능을 엄청나게 활성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뉴로다르마』식으로 말하자면, 초등학생 시절 어린 나는 명상을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 알 수조차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전전두엽 피질을 두껍게 만드는 건강한 두뇌 운동을 하고 있었고, 주변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고 있었으며, 충만하게 현재에 거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자비-집중 명상’의 효과에 대한 묘사다. 자비-집중 명상은 분리된 존재들이 연결된 느낌, 긍정적 감정, 보상의 느낌에 관여한다. 특히 눈썹이 만나는 부위 뒤에 존재하는 안와 전두 피질(orbitofrontalcortex)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자애 명상을 오랫동안 수행한 사람들은 낯선 타인의 얼굴을 바라볼 때 마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때와 유사한 신경학적 반응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명상을 오래 할수록 공감 능력이 커진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당신도 나와 같군요’라는 느낌에 잠길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따스한 사랑과 우정의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저자는 힘주어 강조한다. 타인과 지내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연습이 필요하다고. 바로 그 의도적인 연습,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의식적인 훈련이 명상이다.
명상의 가장 긍정적인 효과 중 하나는 ‘내면의 쓸데없는 수다’를 줄여주는 것이다. 특히 자기혐오적인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데 명상은 커다란 효과를 발휘한다. ‘넌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구나’, ‘아무도 널 사랑하지 않아’와 같은 부정적인 자기 이미지와 결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명상의 결정적 효과다. “맛,촉감, 정경, 소리, 냄새에 집중하면 자연스레 좌뇌의 내면의 수다를 침묵”시키며,명상을 통해 몸 안의 감각에 집중하면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생각 속에 소용돌이치며 빠져드는 대신, 자신의 몸에 확고하게 뿌리박고 머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명상은 과도한 감정적 반응과 우울한 기분을 줄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3대 미지의 영역은 바로 우주, 바다, 그리고 인간의 두뇌였다고 한다. 바로 그 바다와 우주만큼이나 탐구하기 어려운 인간의 뇌를 탐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과학적 발견이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였다. 자기공명 영상 장치를 통한 다양한 두뇌 실험은 명상이 인간의 두뇌를 엄청나게 변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명상을 할 때 행복감을 주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분비되며, 불안이나 우울에 사로잡혔을 때, 전두엽 피질과 편도체에서는 과도한 흥분파를 보내는데 명상은 이에 대한 치료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명상은 혈압을 낮추고 심장병 발병 위험률을 낮출 뿐 아니라 각종 통증의 경감이나 중독성 물질에 대한 의존성도 줄일 수 있다. 마음이 두뇌를 바꾸고 두뇌가 신체를 바꾸는 일이 결코 ‘기적’이 아니라 ‘과학’임을, 명상은 증명해낸 것이다.
명상을 오래 한 사람들은 해마 조직이 늘어나는데, 해마체의 활동이 증가하면 편도체를 진정시킴으로써 스트레스에 더욱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명상을 오래 한 사람들의 몸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더 적게 분비된다. 특히 수천 시간 이상의 명상을 실천한 티베트 불교 수행자들은 통증 앞에서도 놀라운 평정심을 보여주며, 통증 뒤에도 대개 빠른 회복을 보인다. ‘뇌과학의 최신 발견’과 ‘언어를 통한 명상 연습 매뉴얼’을 통합하는 것이 바로 뉴로다르마다. 이제야 명상 수업이 오랫동안 나에게 영감을 준 이유를 알겠다. 명상 수업은 내게 무언가를 가르치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 것이다. 바로 생각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진정으로 생각하는 기쁨, 생각에 머물지 않으면서 더 깊고 널리 생각하는 기쁨이었던 것이다. 가르치지 않으면서 무언가를 진정으로 가르치는 것. 그것이 가르침의 최고봉이니까.
정여울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월간정여-울똑똑』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