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다
김승현
그린 라이프 매거진 『바질』 발행인
심지 못했다.
직접 심지는 못했다.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환경에 눈을 조금씩 뜨면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나무 심기야말로 정말 멋진 직접 행동이 될 거라는 생각에 꼭 나무를 심고 싶었다. 일단 심고 나면 눈에 딱 띄었던 이유도 있었고, 프레데릭 백이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을 원작으로 만든 한 편의 인상파 화가의 그림 같은 애니메이션의 영향도 있었다. 머릿속으로 수차례 상상했다.
“도토리 씨앗을 심고 싹이 나고, 그렇게 하나씩 늘리면 어느 순간 도토리나무로 숲이 생기겠지, 맑은 날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 사이로 빛이 부서지면 정말 아름다울 거야. 작은 개울이 숲 사이로 흐르기 시작할 거고, 거기엔 다람쥐, 벌, 새, 나비, 사슴 같은 동물들도 돌아올지 몰라. 진짜 숲이 그렇게 커지면 정말 신나겠다.”
삽을 뜨기도 전에 내 머릿속에는 이미 숲이 짠 하고 생겨나 있었다. 상상은 충분히 했다. 집 베란다로 내다보니 공터가 보였다. 강변을 산책하는데 잔디만 잔뜩 깔려 있지, 그늘 하나 만들어줄 나무조차 보이지 않는 공터도 있었다. 강변을 따라 폭 50m는 족히 넘어 보이는 곳이 몇 킬로미터나 이어져 있었다. 이 잔디 공터에 숲이 들어서는 걸 상상했다. 아주 신났다. 나는 저 공터들이 지구를 지키는 일에 기여할 수 있도록 나무들로 채워보기로 했다.
내 야심 찬 꿈을 산림조합원에 다니는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남의 땅에 함부로 나무를 심는 것은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공유지라도 말이다. 이럴 수가… 첫걸음부터 막혔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던 그 많은 나무 심는 장면은 도대체 뭐였단 말인가? 나눠 주던 그 많은 나무는 무엇이었던가? 질문이 밀려왔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장면은 보통 땅 주인이나 국가, 지자체로부터 심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아마 나눠 준 나무는 자신의 마당이나 베란다에 심는 거였겠지? 어쨌건 나에게는 나무 심을 땅이 없었다.
결국은 심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직접 나무를 심지 못하는 것은 정말 아쉽지만, 현실은 현실이니까 말이다. 내가 땅이 없지만,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방법으로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나무 심는 활동을 하는 시민 단체의 힘을 빌리자는 것이었다. 그런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나무 심는 행사가 있을 때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나무를 심는 일은 정해진 기간에만 이뤄지는 일이었고 내가 많이 심고 싶다고 심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구의 숲들이 한 해에만 1,200만 헥타르가 사라지고 있다는데, 이렇게 해서는 언제 사라져가는 숲을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땅이 없는데… 이렇게라도 심을 수 있으니 다행이라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찾아왔다. 바로 기후위기의 원인과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해 공부하면서 나무를 살리는 길이 나무를 심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국제 환경 단체인 트릴리언 트리(Trillion Trees)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590만 헥타르가 복원될 동안 2020년 한 해에만 축구장 330만 개 분량의 숲이 사라졌다. 면적으로 치면 1,200만2,000헥타르에 해당한다. 전 세계 숲이 사라지는 원인은 자연적인 산불, 목재와 펄프 생산을 위한 벌목, 도심 개발, 농지 개간 등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심각한 원인은 농지 개간인데, 농지 개간이 일어나는 배경을 살펴보면 가축 산업에서 사용되는 동물 사료 재배를 위한 대규모 경작과 가축을 기르기 위한 목초지 확보, 팜유・코코넛・옥수수 등 수요가 높은 작물을 기르기 위한 농장화가 있다. 전 세계 숲의 85%를 차지한다는 아마존, 인도네시아, 콩고는 특히 이런 이유로 수많은 나무가 베어지고 있다. 좀 더 원인을 파헤쳐보면, 목초지를 만들고 동물 사료용으로 더 많이 기르려고 하며 더 많은 팜 나무를 심으려고 하는 것은 일상에서 인식 없이 행해지던 나의 선택과 관련 있었다. 고기를 먹는 것, 팜유가 함유된 제품을 구매하는 등의 행동이 모여 아마존과 인도네시아 등의 나무가 베어지고, 숲이 사라지게 하는 원인이었다. 숲이 사라지는 만큼 대기를 뜨겁게 하는 온실가스 흡수량도 떨어지고 이는 다시 숲을 건조하게 해 과거보다 더 큰 산불이 일어나게 하고 있으며, 그 불은 수많은 나무를 불태워버렸다. 캐나다와 미국에서만 올해 우리나라 산림 면적에 육박하는 630만 헥타르의 숲이 피해를 입었고, 그리스,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대형 산불이 일어나 수많은 숲이 사라졌다. 거기에 또 슬픈 사실은 이런 산불이 심각한 기후변화로 그 강도와 빈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인가? 숲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무방비 상태로 죽거나 서식지를 잃어 헤매는 수많은 동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말이다.
한 그루씩 나무를 심는 것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심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고 큰 규모로 나무들이 사라지고 있으니 말이다. 나무 심기가 자기 만족적 행위에 지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무를 심는 것도 의미 있지만, 반드시 숲을 지킬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더 강력한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를 심을 기회가 온다면 적극 심는 것에 동참하겠지만, 직접 나무를 심기 어려운 지금은 나무를 베어내는 이들에게 더 베어낼 명분을 주는 행동은 멈춰야겠다고 결심했다. 고기를 먹지 않음으로써, 숲을 파괴해 얻어지는 제품을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숲을 보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산된 먹거리와 제품을 이용함으로써, 마치 보호가 필요한 아이를 후원하는 것처럼 자연이 길러놓은 다 자란 나무를 내가 지켜내는 것이다. 그것 또한 나무를 심는 행위이지 않을까? 또한 내가 아무리 나무를 많이 심은들, 내 행동으로 지구 어딘가의 숲이 통째로 날아가버린다면 과연 그 행동이 좋을 수 있는가 말이다.
나비 효과
서로가 연결된 세상이다. 인과와 인연에 의해 촘촘히 얽혀 있다. 우리가 한 행동의 인은 과가 되어 돌아오고, 상호의존성에 의해 모든 곳에 영향을 주고 있다. 식탁 위에서 맛을 위해 들었던 고기 한 점은, 그 고기를 키우기 위해 길러진 콩과 그 콩을 기르기 위해 베어졌던 숲, 나무, 그 숲에 사는 동물 등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눈앞의 것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소중히 하기 쉽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잊기 쉽다. 함부로 하기 쉽다.
브라질에서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효과라는 이론이 있다. 우리는 이 나비 효과를 이미 기후위기를 통해 경험하고 있다. 내가 고기 한 점을 먹어 브라질 아마존 숲의 나무를 쓰러뜨렸고 이것이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전 지구에 대형 산불을, 가뭄과 홍수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먹지 않는 고기가 아마존 숲의 나무를 다시 일으키고 현재의 기후변화를 돌이켜 다시 지구를 안정적으로 만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나무를 심는 방법을 바꿨다. 고기를 끊고 숲을 파괴해 생산하는 제품을 쓰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무를 살리는 방식으로 나무를 심겠다. 그것이 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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