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다른 사람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유영만
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 언어는 생각의 옷이다
“딴생각은 머리를 흔들어서가 아니라 몸의 경험으로 기존 언어를 부정할 때 생긴다.” 정희진의 『낯선 시선』에 나오는 말이다. 이전과 다른 생각을 잉태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낯선 경험이다. 경험해본 만큼 생각도 바뀐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프랑스 작가 폴 브루제의 말이다. 하지만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지만 사실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지금 나의 생각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생긴 결론이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삶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어도 그걸 표현하는 언어가 바뀌지 않으면 낯선 생각은 몸속에서 타성에 젖은 채 잠들어 있다. 딴생각은 결국 날 선 언어를 만날 때 비로소 어제와 다르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언어는 생각의 옷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나 창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도 기존 언어 사용 방식에 물들어 있으면 생각은 낯선 생각으로 표출되지 못한다.
◦ ‘언어의 틈새’를 극복하려는 안간힘이 바로 언어 디자인이다
이전과 다른 경험을 날 선 개념으로 벼리는 과정에서 낯선 생각이 잉태된다. 배수아의 소설 『당나귀들』에 ‘언어의 틈새’라는 개념이 나온다. 아름다운 풍경이나 멋진 장면을 보자마자 감각적으로 내뱉는 언어가 예를 들면 ‘와우!’와 같은 감탄사지만 그 감탄사 한마디에 내가 목격한 아름다운 장면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밖의 풍경과 기존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언어의 틈새’라고 표현한 것이다. 소설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작가들은 끊임없이 언어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언어를 벼리고 벼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적 틈새가 있어도 별다른 격차를 느끼지 못하고 늘 쓰는 타성에 젖은 언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중년 이후 언어를 벼리겠다고 마음먹고 벼리지 않으면 언어가 나를 버린다. 언어의 틈새는 매일 만나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기존 언어로는 그 순간에 담긴 의미나 느낌을 포착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날 선 언어로 낯선 생각을 벼리고 벼리지 않으면 나 역시 타성에 젖어 습관적인 삶을 반복할 것이다.
‘언어의 틈새’를 극복하려는 안간힘이 바로 언어 디자인이다. 언어 디자인은 똑같은 생각도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서 전달의 의미심장함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키라는 말을 반복하지만 익숙한 언어 사용 방식으로 상대를 감동시키기 어렵다. 물건을 훔치면 범인, 마음을 훔치면 연인이라는 언어 디자인을 보자. 짧은 말이지만 그 안에 어려운 말을 사용하지 않고도 의미 전달의 임팩트를 높일 수 있는 언어 디자인의 한 가지 사례다. 스치면 우연이지만 스미면 인연이 될 수 있다. 스치는 것은 당구공처럼 한순간 잠깐 만나면서 지나는 일이고 스미는 것은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서서히 상대의 마음을 뒤흔들어 속수무책의 상태로 번져가는 것이다. 한 회사가 금요일 오전까지만 근무하고 오후부터 퇴근해도 좋은 주 4.5일제 근무 방식을 채택했다. 그다음 날 전 직원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 “주 4.5일제 전격 실시.” 하지만 생각보다 별다른 반응이 없자, 똑같은 제도지만 언어를 다시 디자인해서 다시 전 직원에게 알렸다. “회사는 금요일 오후를 선물로 드리려고 합니다.” 이전과 다르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같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어떤 언어로 디자인하는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의미와 의도로 다가서게 만들 수 있다.
◦ ‘언격’이 ‘인격’을 결정한다
웨이터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웨이터의 법칙은 누군가에게는 친절하지만, 자기보다 못한 위치에서 일하는, 예를 들면 웨이터에게 무례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함부로 사귀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실수로 웨이터가 손님 양복에 와인을 쏟았을 때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보여준다. 와인을 실수로 쏟자마자 “여기 주인 나오라고 해! 나 너 당장 해고시킬 수 있어!”라고 큰 소리로 질책하는 손님이 있다. 또 다른 손님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준다. “오늘 아침 바빠서 샤워를 못 했는데 어떻게 그걸 알았죠? 허허…” 웨이터 입장에서는 전자의 손님에게는 모욕감을 느껴 어쩔 줄을 모르고 당황하겠지만 후자의 손님에게는 감사함을 어찌 표현할지 모를 정도라서 당황했을 것이다. 똑같은 사고에 직면했어도 그 사고에 대응하는 방식의 차이는 언어적 차이다. ‘언격’이 ‘인격’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웨이터 법칙이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다. 나를 바꾸는 방법은 내가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는 것이다. 뭔가 다른 사람은 뭔가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 사용 방식의 수준과 차원이 세계를 만나는 방식과 접근을 결정한다.
유영만|지식생태학자이자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이다. 주요 저서에 『인생이 시답지 않아서』, 『언어를 디자인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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