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민주주의 | 불교와 민주주의 4

불교와 민주주의 : 생활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 4


불교와 민주주의


제이 가필드 

미국 스미스 대학 인문학 교수



 엄밀히 말해 불교와 민주주의는 상호 독립적이다. 불교는 민주주의를 배제하지도 수반하지도 않고, 자유민주주의 역시 그러하다. 불교는 개인의 행복한 삶에 대한 교리를 설하고 또한 개인이 고에서 해탈하기 위해 요구되는 가치, 수행, 성격, 마음 상태와 세계관을 설하는 교리이다. 대승에서 이 가치가 이타적 교리로 세분화되기는 하지만 불교 이론은 대체로 개인의 삶과 수행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이런 일반화에 두 개의 예외가 있다. 그중 하나가 본 논문에 중요한 것으로 판명된다. 첫째 승가의 사회 체계와 행정 구조를 설해놓은 율장이 있다. 수장을 선출하는 방법, 승가 입문 자격을 결정하는 방법, 쟁점을 해결하는 방법 등을 담은 율장은 경전 중에서도 가장 명시적으로 사회 정치적이므로 불교와 민주주의에 관한 탐구를 시작하기에 좋은 지점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시작하면 안 되는이유 또한 많다. 율장은 오직 자발적으로 입문해 금욕 생활을 하는 ‘동질적’ 승려 사회를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반면 자유민주주의는 ‘이질적’ 시민들을 가정하면서 시작하고, 사회에서 한 개인을 제거하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분쟁을 해결하고 정책과 제도를 수립해야 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불교와 자유민주주의가 함께하고 비교되려면 이렇게 좀 더 세속적인 환경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규모는 더 작지만 통치권자인 왕들에게 주었던 또 다른 불교 문헌을 보자. 나가르주나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Suhrllekha)』, 『보만론(寶鬘論; Ratnavali)』이 여기에 해당된다. 나라를 다스릴 때 사용하도록 불교 윤리에 근거한 직접적 조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저서들에서 두 가지 두드러진 점이 보인다. 첫째 불교는 적절한 형태의 정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나가르주나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군주제에 대한 보수적 방어도 없고 민주 질서를 요구하는 혁명적 언급도 없다. 이 문헌에 의하면 불교는 행복에 대한 이론만 제공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절차가 정당하다는 암묵적 단서 외에) 절차 자체에는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사회질서의 목표는 행복의 최대화, 고통의 최소화, 최약자를 위한 고려, 그리고 자비, 인내, 보시, 지혜 등의 성품 함양이다. 군주제가 이를 해낸다면 좋고, 민주제가 이를 해낸다면 그 역시 좋다는 입장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로크, 제퍼슨, 밀, 롤스를 통해 내려온 사회계약 전통의 민주이론은 행복에 관해서는 비교적 침묵하나 사회제도와 절차에 대해서는 상세하고 구체적이다. 사회적 행복과 가치를 담은 자유민주주의는 그런 약속에는 최소주의를 택한다. 하지만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으로, 자유민주 전통의 천재성이라 할 만한 것은 절차 자체가 비절차적 가치와 무관하게 정당화될 수 있고, 정당한 절차는 제도와 행복의 개념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와 자유민주주의의 이런 대조를 주의 깊게 해석해야 한다. 불교에 절차적 개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자유주의가 행복한 삶과 사회질서에 대해 구체적 가치나 개념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대조는 실재하고 이를 두 가지 방식으로 짚어볼 수 있다. 첫째 두 전통에는 정당화 절차가 전반적으로 고유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재화를 절차를 근거로 해 정당화한다. 불교는 절차를 적절한 재화 생산을 근거로 해 정당화한다. 둘째 특별한 종류의 절차가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반면, 특별한 사회 재화에 대한 책임이 불교 사회를 깊은 측면에서 구성한다. 자유민주 사회들은 행복의 특정한 비전(예 : 무료 교육, 보편적 의료 서비스 등)에 관해서는 서로 매우 다르면서도(또는 세월이 흐르며 달라지면서도) 큰 의미에서는 민주 사회로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선거, 열린 정치, 투명한 사법 과정의 절차를 저버린다면 그 사회는 더 이상 자유민주 사회가 아니다.

불교와 민주주의는 상호 독립적이다. 불교는 민주주의를 배제하지도

수반하지도 않고, 자유민주주의 역시 그러하다. 불교는 개인의 행복한 삶에

대한 교리를 설하고 또한 개인이 고에서 해탈하기 위해 요구되는

가치, 수행, 성격, 마음 상태와 세계관을 설하는 교리이다.

 마찬가지로 불교 사회도 일부는 군주제이고 일부는 민주제로 운영한다. 정부 형태가 세월에 따라 바뀌어도 여전히 큰 의미의 불교 사회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비폭력, 최약자에 대한 복지, 모든 시민에 대한 의료 서비스와 교육, 원하는 자에게 영적 수행 제공 등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사회는 더 이상 불교 사회가 아니다.
 이렇게 불교와 자유민주주의가 절차와 행복의 개념을 정당화하는 방향에서 판이하지만 융합의 가능성은 있다. 행복의 절차와 개념을 두 전통에서 서로에게 강화해줄 수 있다. 불교민주주의 이론에는 행복의 이론도 필요하고 행복을 실현할 정치제도 이론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행복의 이론은 불교에서 가져오고 행복을 실현할 정치제도 이론은 민주주의에서 가져오면 어떨까? 각 전통이 각자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도록 허용하면서 서로 보완하고 지원하는 일관성 있는 제도를 실현할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불교에 기여할 수 있는 것

 불교가 자유민주주의 이론에 주의를 기울일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조건에서도 그리고 세속적, 영적 재화를 얻을 가능성의 측면에서도 사회구조와 제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교 문헌과 불교 철학 전통에는 사회 이론과 정치 이론이 전무하다 할 만큼 희소하다. 이는 고통의 본질을 밝히고 사회적인간의 고통을 제거하려는 철학 체계에 심각한 공백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불교는 수행자에게 방편을 발전시킬 것을 요구하고 여기엔 사회적, 정치적 방편도 포함되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이론은 불교의 이런 공백을 메워줄 분명한 이론 체계가 될 수 있다.

불교가 자유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것

 하지만 문화 간 융합 철학의 혜택은 일방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이론과 자유민주 사회의 정책 수립자들은 불교적 시각을 접목한다면 혜택을 얻을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홉스, 로크, 루소, 롤스의 전략을 검토해보면 실용적 이성에 대한 호소가 일관되게 존재한다. 임의로 선택된 시민들을 향해 민주주의가 개인의 행복을 달성할 최선의 기회를 제공하며 적어도 최악의 고통은 피하게 해주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행복을 실현하려는 개인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정부와 사회제도를 약속하 기 때문에 이런 전망을 준다. 하지만 특정 사회적 재화를 제공한다는 약속에는 의도적으로 최소주의를 선택해 그런 결정을 불확정한 정치 절차나 개인 기업에게 남겨두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민주 이론은 개인적인 동시에 다자적이다. 개인적 측면은 사생활을 강조하고 개인의 삶에 사회적 개입을 제한한다. 다자주의는 국가적 행위의 대상으로서 가장 일반적이고 공식적인 사회적 재화만을 제안하려 한다. 행복에 대한 특정의 비전에 결정적으로 전념하면 그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의 권리와 소망을 함부로 하게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틀의 기저에 놓인 합리화 논리를 고려할 때 자유민주 사회가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기본 재화를 향상시키려 할 때, 편협한 지역주의와 상관이 없다면, 최초 계약 당사자들은 그를 선택할 것이며, 그 재화가 사회 전반을 향상시키고, 롤스의 말처럼 취약층에 이득이 되고, 그리하여 전체 효용이 너무 저하되지 않게 시민의 이익을 보호하는 한 그런 선택은 계속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합리적 계약 당사자는 기본적 사회 재화를 요구할 뿐 아니라 그 재화가 가능한 한 최대 다수에게 사용 가능하게 해 피할 수 있는 가난은 피할 것을 주장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불교가 체계에 기여할 여지가 있다. 고통을 멸하려는 불교의 목적이 강력한 사회복지 정책을 요구한다. 고통의 보편성과 그 교정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계약 당사자는 무한 자유시장을 거부할 때 숙고의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며, 자유로운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정부 권력의 한계와 정당화에 대한 그럴듯한 계약설에서 최초 계약 당사자들은, 비록 계약 관련자들에 대해 상세한 상황,선호도, 입장은 모른다 해도, 인간 본성의 일반적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런 일반적 사실을 알면 자신들이 수립하려는 사회질서가 가져올 효과를 상상할 수 있다. 이제 불교 윤리 이론이 옹호하는 미덕들(인내, 지혜, 비폭력, 보시 등)이 실로 넓게 실현될 때 더 행복하고 안정된 사회를 가져올 것이 압도적으로 분명해진다. 사회제도는 이런 가치들을 독려하고 보상하고 장려하거나 좌절시키기 위해 설계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 사회계약 당사자들은 이들을 좌절시키기보다 독려하는 제도에 동의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시 이는 비교적 가치중립적인 자유주의 체제를 상당히 비옥하게 한다.
 그러므로 불교민주주의에서 우리는 군대가 아니라 사회 서비스 단체를, 사설건강보험제도가 아니라 강력한 사회복지 및 의료 서비스 제도를 발견하리라 기대한다. 이런 제도는 경쟁 우대책, 부의 집중과 권력 차이를 우대하는 정책보다 더 수위를 차지한다. 행복에 대한 이런 실질적 설명은 경제 성장에 대한 강조 및 개인의 이익 독려와 대조적인 입장에 서 있다. 하지만 이 중 무엇도 ‘법 앞에서 평등, 공적 담론에의 참여, 열린 정치, 넓은 범위의 사적 자유’라는 민주주의 이상과 조화 불가능하지 않다. 실은 인간 삶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려면 이런 자유가 가능해야만 한다. 불교 윤리 이론이 자유민주주의에 긍정적 행복의 개념을 줄 수 있는 측면에서 유일무이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다른 실질적 가치 체계도 역시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의 주장은 단지 불교 이론이 그런 기여를 할 수 있고, 자유민주 이론 역시 유사하게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불교 가치가 민주 이론과 실천의 측면에서 사회제도 구축과 합법화 과정의 정당한 고려 사항이 되지 못한 채 간과되어왔고, 이런 간과는 불필요할 뿐 아니라 부당함을 말하고자 한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불교의 가치와 원리에 의지하는 민주 사회는 성공의 전망이 더 크고, 시민들에게 행복한 삶을 주며, 실은 이런 원리에 중립적인 사회보다 도덕적 정당성을 더 크게 주장할 수 있다. 따라서 불교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전통 자체가 선택한 조건으로 판단해도 더 나은 민주주의이며, 불교 자체가 도덕적 평가에 사용하는 조건으로 판단해도 더 나은 불교다. 결론적으로 이 두 제도는 상반적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이며, 서로에게 접목했을 때 더욱 강력한 제도가 된다.

발 췌 ・번역|로터스불교영어연구원

이 글은 미국 스미스 대학의 제이 가필드 교수가 1998년 보스턴에서 열린 제20회 세계철학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 번역한 것이다.


제이 가필드(Jay Lazar Garfield) 1955년 출생. 티베트 불교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이자 연구원이다. 연구 분야는 마음 철학, 인지 과학, 인식론, 형이상학, 언어 철학, 윤리 및 해석학이다. 현재 미국 스미스 대학의 인문학 교수, 하버드 신학교의 철학 및 불교학 객원 교수, 티베트 중앙대학의 철학 겸임 교수로 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