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생명과학 5
생명과학을 꿰뚫는 연기와 공
유선경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생명과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명체란 유전자를 지닌 개체로서 길고 긴 진화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모두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유전자는 생명과학 연구에 있어 기본 단위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유전자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은 주저 없이 “유전자는 DNA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렇게 자명한 진리를 묻는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불자들은 이 진리와 붓다의 가르침인 연기와 공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이 글은 “유전자는 DNA다”가 자명한 진리가 아니며, 유전자는 여느 만물과 같이 조건에 의해 연기해 공하다는 사실을 논의한다.
고정불변한 기능적 유전자
그런데 멘델의 유전자는 단순히 기능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세대를 가로질러 형질을 전달해 보존시키는 고정불변한 기능을 유전자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런 고정불변한 기능이 세대를 아우르며 나타나는 상동성을 설명한다고 이해했다. 세대가 바뀌어도 언제나 고정불변한 기능이 발휘되니 이 기능이 유전자의 본질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고정불변한 구조적 유전자
이후 DNA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알려졌다. 이 특징은 또 다른 핵산인 RNA에 대한 관심을 쉽게 저버리게 했다. 거의 모든 세포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DNA는 안정된 상태로 그때까지 추론된 유전자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관찰되었다. 세대가 바뀌어도 고정불변한 분자 구조를 지니는 DNA는 고정불변한 기능으로 규정된 유전자의 개념을 충족시킨다. DNA는 유전자 기능의 실체가 되었고, 유전자와 DNA는 동의어가 되었다.
기능적 유전자와 구조적 유전자의 만남
전형질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유전자는 DNA다’가 참이라면 (1)′와 (2)′모두 참이어야 한다.
그런데 생명과학에서 보고하는 실험 결과에 의하면 (1)′와 (2)′모두가 언제나 참은 아니다. 우선 (1)′를 살펴보면,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기능은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에서는 RNA가 담당하고, 바이러스와 비슷한 생명체인 프리온(Prion)에서는 프리온 단백질이 형질을 전달한다. 그래서 ‘세대를 거치며 고정불변하게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것이 유전자라면, 그것은 고정불변한 구조를 지닌 DNA이다’라는 문장은 거짓이 된다.
한편 놀랍게도 DNA 전체의 90~98%를 차지하는 부분이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21세기 와서야 생명과학자들이 이 ‘쓰레기(junk) DNA’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2)′‘고정불변한 구조를 지닌 DNA라면 세대를 거치며 고정불변하게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라는 문장은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참이 아니다. 따라서 (1)′와 (2)′모두 거짓이므로 ‘유전자는 DNA다’의 동일 명제는 거짓으로 판명된다. 유전자는 오직 DNA만도 아니고, 모든 DNA가 유전자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고정불변한 본질에 대하여 : 본질 없이 공한 유전자
또한 DNA 구조는,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고정불변하지 않다고 보고되고 있다. DNA 염기 배열의 자리가 바뀌거나 일부 배열이 제거되거나, 또 DNA 분자 이외의 화학 분자들이 DNA에 붙어 DNA 염기 배열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모든 DNA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DNA는 유전자의 본질이 아니며 DNA 자체도 고정불변하지 않다.
그렇다면 부모 세대의 형질을 자식 세대로 전달하는 기능이 유전자의 본질인가? 본질(또는 자성自性)이라면 고정불변해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도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유전자의 기능이 유전자의 본질이라면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도 이러한 변화와는 상관없이 유전자의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환경 재해나 질병으로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유전자의 정상적 기능을 잃는다. 사실 기능이란 여러 조건이 만나서 발현되는 작용이다. 따라서 조건에 좌우되는 기능은 조건에 따라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유전자의 기능은 고정불변한 본질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DNA 구조나 유전자의 기능은 유전자의 본질이 아니다. 유전자는 고정불변한 본질적 속성 또는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전자는 (공空)하다.
유전자와 유전 기능을 분리하는 사고에 대하여: 연기하는 유전자
생명체는 연기해 공하다. 그러므로 연기하는 유전자는 연기하는 생명체를 규정하거나 구분할 수 없다. 구분할 수 없는데 어느 생명체군들과는 동일성을 보이고 다른 생명체 집단들과는 상이성을 보인다고 쉽게 주장할 수 없다. 연기해 공하다는 자연의 진면목을 알게 된 이상, 상동성 등 동일성을 찾는 우리의 집착은 허망해진다. 생명체들은 동일하지도 생뚱맞게 다르지도 않다. 모든 생명체를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명과학의 실험 보고들을 이해해야 하겠다.
유선경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세포분자생물학과 박사 과정 및 텁스대학교에서 철학과 석사 과정을 수학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ankato)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과학철학과 과학철학 및 인지과학 분야의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철학』과 홍창성 교수와의 공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가 있고 홍창성 교수와 함께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를 영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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