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을 꿰뚫는 연기와 공 | 불교와 생명과학 5

불교와 생명과학 5


생명과학을 꿰뚫는 연기와 공


유선경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 철학과 교수



 생명과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명체란 유전자를 지닌 개체로서 길고 긴 진화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모두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유전자는 생명과학 연구에 있어 기본 단위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유전자란 무엇인가? 많은 이들은 주저 없이 “유전자는 DNA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이렇게 자명한 진리를 묻는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그리고 불자들은 이 진리와 붓다의 가르침인 연기와 공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이 글은 “유전자는 DNA다”가 자명한 진리가 아니며, 유전자는 여느 만물과 같이 조건에 의해 연기해 공하다는 사실을 논의한다.


고정불변한 기능적 유전자

 유전자라는 단어는 1953년 DNA의 분자 구조가 밝혀지기 훨씬 전인 19세기에 나타난 개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멘델의 콩깍지 실험에서 유래한다. 멘델은 부모 세대에 나타난 형질이 자식 세대에도 발현되는 것을 관찰하며, 이러한 상속동일성(상동성 Homology)의 현상을 초래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멘델은 부모 세대에서 자식 세대로 형질을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이것을 ‘유전을 일으키는 인자’라 불렀다. 지금은 누구나 이것이 유전자라고 쉽게 설명하지만, 멘델의 시대에는 유전 현상을 신비한 비물질적인 현상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멘델의 추론은 과히 혁명적이었다. 1909년 조한슨이 멘델의 인자를 유전자(Gene)로 명명한 이후 유전자라는 단어가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멘델의 유전자는 단순히 기능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세대를 가로질러 형질을 전달해 보존시키는 고정불변한 기능을 유전자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런 고정불변한 기능이 세대를 아우르며 나타나는 상동성을 설명한다고 이해했다. 세대가 바뀌어도 언제나 고정불변한 기능이 발휘되니 이 기능이 유전자의 본질이라고 이해한 것이다.


고정불변한 구조적 유전자

 20세기 초 염색체 이론이 대두된 후 멘델의 유전학과 융합되며, 기능으로만 이해했던 유전자가 그 실체를 찾기 시작한다. 거의 모든 세포에 있는 염색체가 주기적으로 구조적 변화를 보이는 것이 현미경으로 관찰되었다. 그리고 유전자의 기능을 발휘하는 곳이 있다면 염색체가 바로 그곳일 수 있다고 짐작하기 시작했다. 그 후 실타래같이 생긴 염색체가 사실은 DNA(디옥시리보 핵산)의 다발이라고 보고 되었다. 그리고 1953년 DNA의 분자화학 구조가 밝혀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유전 기작이 성공적으로 제안되며, 단순하고 정갈한 이중 나선형의 DNA 구조가 생명과학자 집단뿐만 아니라 대중을 매료시키기 시작했다.
 이후 DNA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알려졌다. 이 특징은 또 다른 핵산인 RNA에 대한 관심을 쉽게 저버리게 했다. 거의 모든 세포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DNA는 안정된 상태로 그때까지 추론된 유전자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관찰되었다. 세대가 바뀌어도 고정불변한 분자 구조를 지니는 DNA는 고정불변한 기능으로 규정된 유전자의 개념을 충족시킨다. DNA는 유전자 기능의 실체가 되었고, 유전자와 DNA는 동의어가 되었다.


기능적 유전자와 구조적 유전자의 만남

 진리라고 생각하는 ‘유전자는 DNA다’라는 동일 명제를 자세히 살펴보자. 논리식에서 ‘A = B’는 (1) A⊃B (A라면 B이다), 그리고 (2) B⊃A (B이면 A이다)이다. (1)과 (2) 두 문장이 모두 참이어야 ‘A = B’가 참이 된다는 뜻이다. 어느 하나의 문장이 거짓이면 ‘A = B’가 거짓이 된다. 이 논리식을 ‘유전자는 DNA다’에 도입해보자. ‘유전자는 DNA다’가 참이라면, (1) ‘유전자라면 DNA다’ 그리고 (2) ‘DNA이면 유전자다’가 모두 참이어야 한다. (1)과 (2)를 자세히 풀어보면, (1)′세대를 거치며 고정불변하게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것이 유전자라면, 그것은 고정불변한 구조를 지닌 DNA이고, (2)′고정불변한 구조를 지닌 DNA라면 세대를 거치며 고정불변하게 유
전형질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유전자는 DNA다’가 참이라면 (1)′와 (2)′모두 참이어야 한다.
 그런데 생명과학에서 보고하는 실험 결과에 의하면 (1)′와 (2)′모두가 언제나 참은 아니다. 우선 (1)′를 살펴보면,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기능은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에서는 RNA가 담당하고, 바이러스와 비슷한 생명체인 프리온(Prion)에서는 프리온 단백질이 형질을 전달한다. 그래서 ‘세대를 거치며 고정불변하게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것이 유전자라면, 그것은 고정불변한 구조를 지닌 DNA이다’라는 문장은 거짓이 된다.
 한편 놀랍게도 DNA 전체의 90~98%를 차지하는 부분이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21세기 와서야 생명과학자들이 이 ‘쓰레기(junk) DNA’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2)′‘고정불변한 구조를 지닌 DNA라면 세대를 거치며 고정불변하게 유전형질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라는 문장은 지금까지의 실험 결과에 의하면 참이 아니다. 따라서 (1)′와 (2)′모두 거짓이므로 ‘유전자는 DNA다’의 동일 명제는 거짓으로 판명된다. 유전자는 오직 DNA만도 아니고, 모든 DNA가 유전자 기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고정불변한 본질에 대하여 : 본질 없이 공한 유전자

 앞에서 논의한 ‘유전자는 DNA다’가 거짓이라는 판명은 결국 유전자 개념을 와해시킨다. 우선 본질의 뜻을 살펴보자. 본질이란 ‘무엇을 그것이게끔 해주는 것, 이것 없이는 무엇이 그것일 수 없는 것’이다. 유전자가 고정불변한 구조인 DNA를 본질로 삼는다면, 유전자는 오직 고정불변한 DNA 구조가 있어야 유전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앞서 (1)′를 논의하며 (1)′가 거짓으로 드러났듯이, 어떤 생명체에서는 DNA가 아닌 RNA나 단백질이 유전자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DNA는 유전자의본질이 아니다.
 또한 DNA 구조는,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고정불변하지 않다고 보고되고 있다. DNA 염기 배열의 자리가 바뀌거나 일부 배열이 제거되거나, 또 DNA 분자 이외의 화학 분자들이 DNA에 붙어 DNA 염기 배열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아니다. 모든 DNA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DNA는 유전자의 본질이 아니며 DNA 자체도 고정불변하지 않다.
 그렇다면 부모 세대의 형질을 자식 세대로 전달하는 기능이 유전자의 본질인가? 본질(또는 자성自性)이라면 고정불변해 어떤 조건이나 환경에도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유전자의 기능이 유전자의 본질이라면 유전자에 변이가 일어나도 이러한 변화와는 상관없이 유전자의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주지하듯이, 환경 재해나 질병으로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 유전자의 정상적 기능을 잃는다. 사실 기능이란 여러 조건이 만나서 발현되는 작용이다. 따라서 조건에 좌우되는 기능은 조건에 따라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유전자의 기능은 고정불변한 본질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DNA 구조나 유전자의 기능은 유전자의 본질이 아니다. 유전자는 고정불변한 본질적 속성 또는 자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전자는 (공空)하다.

유전자와 유전 기능을 분리하는 사고에 대하여: 연기하는 유전자

 독자들은 지금까지 필자가 유전자와 유전자의 기능을 따로 분리해 설명하고 있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 중 어떤 이는 유전자란 유전자의 기능을 행하는 행위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생명과학 분야에서 “유전자 X는 Y(표현형 Y)를 발현시킨다”나 “Y의 발현은 유전자 X가 초래했다”등의 표현을 흔하게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을 단지 은유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취급한다면 문제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을 마치 유전자가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기능을 발휘하려고 행동하는 행위자처럼 해석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목적론이 잘못되었듯이, 유전자를 목적을 내재한 행위자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이해 방식이다. 자연에는 목적이 없다. 있을 이유도 없다.
 다시 앞의 독자들의 의심을 살펴보자. 필자가 만약 유전자를 기능을 행하는 행위자로 이해했다면, 우선 유전자라는 행위자가 존재하고 그 행위자가 행위를 통해 발현하는 기능이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고는 행위자인 유전자가 미리 존재하고 있어 그러한 기능을 한다는 뜻이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기능이 미리 존재하고 있어서 그것이 유전자를 형성하는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틀리다. 행위자와 행위가 서로 관계 속에 존재하듯이, 유전자와 유전자의 기능도 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행위자와 행위가 둘이 될 수 없듯 유전자와 유전자의 기능이 둘일 수 없다. 유전자와 유전자 기능은 서로 관계하면서만 존재한다. 유전자는 조건들과 관계하고 결합하면서 그 기능을 수행하며 연기할 뿐이다.
 유전자는 세포 안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한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고 쉼 없이새 분자로 교체되거나, 기존의 분자들이 제거되거나, 삼차원 구조가 변하거나, 세포가 죽으면서 소멸되는 등 무상함을 보인다. 유전자는 조건에 의존해 생겨나고,변하고, 소멸한다. 유전자는 연기한다. 연기하는 유전자는 어느 순간도 같은 유전자가 아니다. 그래서 연기하는 유전자는 생명체를 규정하지 못한다. 사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환경 조건과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며 연기한다. 어떤 생명체도 스스로 홀로 존재하지 못하니 스스로를 스스로이게끔 해주는 본질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는 자성이 결여되어 공하다.
 생명체는 연기해 공하다. 그러므로 연기하는 유전자는 연기하는 생명체를 규정하거나 구분할 수 없다. 구분할 수 없는데 어느 생명체군들과는 동일성을 보이고 다른 생명체 집단들과는 상이성을 보인다고 쉽게 주장할 수 없다. 연기해 공하다는 자연의 진면목을 알게 된 이상, 상동성 등 동일성을 찾는 우리의 집착은 허망해진다. 생명체들은 동일하지도 생뚱맞게 다르지도 않다. 모든 생명체를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생명과학의 실험 보고들을 이해해야 하겠다.


유선경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세포분자생물학과 박사 과정 및 텁스대학교에서 철학과 석사 과정을 수학했으며, 미국 듀크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ankato)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생명과학철학과 과학철학 및 인지과학 분야의 논문을 영어와 한글로 발표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명과학의 철학』과 홍창성 교수와의 공저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가 있고 홍창성 교수와 함께 현응 스님의 저서 『깨달음과 역사』를 영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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