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예방, 해법은 있다 | 자살 4

자살 4


자살 예방, 해법은 있다


오진탁 

한림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우리 사회에서 자살은 특정한 원인과 특정 사회계층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각계각층’에서 ‘각양각색’의 동기로 일어난다. 자살에서 발견되는 공통점, 자살이 마치 현실 고통의 해결책이라도 되는 듯이 죽음 이해가 부족해서 자살이 발생한다. 따라서 자살 예방은 미봉책이나 임시방편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죽음 이해와 임종 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 제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살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자살자를 만나서 직접 들어볼 수는 없을까? 자살자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찾아보면 방법은 있다. 민간신앙 무속, 정신 건강 의학의 최면 치료, 불교의 구병시식을  통해 자살자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자살자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는 전문가는 우리 사회에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찾기가 쉽지 않다.  

 『춘천 MBC』가 2010년 자살 예방 다큐 촬영을 제안했을 때, 죽음에 대한 현장 연구(fieldwork) 작업을 진행하면서, 직접 자살과 자살 현장을 접할 수 있었다.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무속을 통해 자살자 영혼을 초혼하기로 했다. 어떤 여성이 30여 년 전 자살했다. 그의 자살로 집에 오토바이 사고를 비롯해 교통사고, 교도소에 간 사건도 있었고, 죽은 사람도 있는 등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무속인을 통해 불러내자마자 자살자 영혼은 통곡했다. 

“자식들 뒷바라지하면서, 하루 이틀 살아온 세월이 억수 같건만, 누가 망자의 설움을 알아주나, 서러운 마음을 알아준다고. 남편이 나를 찾을까, 자식이 나를 찾을까, 한 많은 세월이구나. 죄 지은 게 너무 많아, 이승 가면 저승 가나, 저승 가면 이승 가나, 문전 앞에서 내동댕이친 꼴이 되었으니(울음)….” 

자살은 사고사나 병사와는 달리 당사자는 물론 가족에게 너무나 깊고 아픈 상처를 남긴다.  한 여성은 엄마의 자살로 인한 충격이 의식 깊은 곳에 저장되어 35년간 원인도 모른 채 고통 속에서 살았다. 어떤 여성이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면서 정신과 의사 김영우 박사(최면 치료 전문가)를 찾아왔다.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돌도 되기 전에 어머니가 자살했고 고등학생 때 이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녀가 최면 치료를 원해 치료를 시작하자 서너 살 먹은 아기처럼 울었다. 태어난 지 6개월쯤 엄마와 함께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하자, 엄마는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랑받는 표정을 지었다. 태어난 지 9개월이 지나자 엄마 내면에 혼란이 일어났다. 엄마가 자살하는 시점에 이르자, 그녀는 갑자기 울면서 “엄마가 그러면 안 되잖아!” 하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최면 치료를 통해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크는 장면, 자살에 충격받는 상황을 재현한 이후 그녀의 두통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또 다른 사례자 30대 여성 K씨는 이공계 엔지니어 직업 종사자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집안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악몽에 시달려서 견딜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주 반복되자 김 박사를 찾게 되었다. 


질문 : 본인은 왜 자살 충동을 자주 느꼈는가?

답변 : 최면 치료를 통해 자살한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한 이유를 해결하지 않고 자살해서 현재도 자꾸 그러한 이유들이 생겨나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 같다. 

질문 : 사람이 육체만의 존재가 아니라 영혼도 있다는 것을 사실로 알고 있는가?

답변 : 영혼의 존재는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다. 마음으로 알고 또한 충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의심하지 않는다. 최면 치료를 통해 직접 체험하고 느꼈다. 

질문 :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답변 : 나도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 청소년기에 아주 심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 청소년들은 자살 충동을 느낀다.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나를 괴롭힌 사람 때문에 인생을 망칠 필요가 없어 자살하지 않았다.


티베트인은 죽음과 자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티베트에서 영혼이 모이는 곳, 삼예산 삼예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중국어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니드롱’을 만났다.


질문 :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답변 : 한국인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크게 놀랐다.

질문 : 티베트에서 자살한 사람을 보거나 들어본 적 있나?

답변 : 들어본 적 없다.

질문 : 죽으면 고통이 끝난다고 생각하나?

답변 : 자살한다고 고통이 끝나는 게 아니다. 티베트인은 윤회를 믿기 때문에 자살을 해도 고통은 계속된다.

질문 : 고통이 어떻게 계속되는가?

답변 : 티베트에선 어릴 때부터 윤회 교육을 받는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자살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고 티베트인들은 누구나 생각한다.


죽음 이해의 차이는 삶에 대한 이해와 삶의 방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에서는 살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마치 해결책이라도 되는 듯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죽는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므로, 삶의 고통은 자살한다고 해결되지 않고, 삶의 고통은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으로 티베트인은 간주한다. 

구병시식을 40여 년 동안 하고 있는 차길진 법사는 ‘자살 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살자 영혼들이 죽음 이후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직접 체험해보면 자살률이 뚝 떨어지리라 장담한다. 구병시식에 나타난 자살자 영혼들이 입을 모아 “죽으면 다 끝나는 줄 알았더니 끝이 아니다”라고 증언한다. 수많은 자살자 영혼들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끔찍한 모습으로 구병시식 현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 사회의 오래된 민간신앙 무속, 정신 건강 의학의 최면 치료, 그리고 불교의 구병시식에서 보면 자살 현상의 밑바탕에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오해’가 깔려 있다. 생사학의 이런 콘텐츠는 자살 예방에 어떤 치료 효과가 있을까? 한림대의 인터넷 강의 「죽음의 철학적 접근」은 수강생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의 분석 도구를 활용해 분석했다. 첫 시간에 우울증과 자살 시도 검사를 실시한 결과, 수강생 65명 중 우울증으로 판정된 수강생이 7명이었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시도했던 7명은 한 학기 동안 다른 수강생들과 함께 인터넷 강의를 수강했고 한 번도 직접 만나 상담하지 않았지만, 15주 동안 인터넷 강의를 마치고 우울증 검사를 다시 했더니, 모두 정상적인 수준으로 바뀌어 있었다.

J양은 자살을 두 번 시도했고, 주변에 자살자가 세 명 있었다. 수업을 듣기 전엔 자살을 용기 있는 선택이라 생각했다. 당시엔 마음대로 죽을 수 없어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수업을 듣기 이전에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리라는 기대감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수업을 듣고서 자신의 어리석음에 소름이 끼친다고 했다. J양은 두 번 자살을 시도한 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생사학 교육을 받은 이후 자살을 꿈꾸지 않는 자신이 솔직하게 증언한다면, 훨씬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해 동영상도 찍어 공개했다. 우리 사회에 효과적인 자살 예방법이 없는 것은, 죽음과 자살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위기 대응 위주로 자살 예방을 진행했고, 죽음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죽으면 다 끝나니까, 자살하면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살의 개인적 원인과 사회문제 해결을 통한 예방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죽는다고 다 끝나는 것도, 또 자살한다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라는 것과 죽음을 정확하게 가르침으로써 자살을 효과적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오진탁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노장(老莊) 철학에 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 고마자와 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한림대학교 인문학부 교수이자 한국생사학협회 회장이다. 주요 저서로 『죽으면 다 끝나는가?』, 『죽음이해가 삶을 바꾼다-자살 예방 해법은 있다』,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 등이 있고, 『한글 세대를 위한 금강경』, 『티베트의 지혜』 등의 역서와 「불교의 49재, 생사학으로 읽다」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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