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한 개인의 어리석은 죽음일 뿐 | 자살 5

자살 5


자살은 한 개인의 

어리석은 죽음일 뿐


- 형의 ‘불행한 죽음’을 떠올리며 


허남결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불교문화』의 원고 청탁을 받고 한참이나 망설였다. 하필이면 자살이 주제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자살은 가족사의 아픈 기억을 강제로 되새김질시키는 고문과도 같은 단어다. 그래서 자살은 처음부터 가치중립적인 개념이 될 수 없었다. 나는 기어이 오래전에 돌아가신 형의 안타까운 죽음을 소환하고 말았다. 


형의 죽음을 발견하다

 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고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슬픔과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군에서 제대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2월 초의 어느 날 아침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꿈자리가 이상하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형이 혼자 살던 셋방을 찾아갔다.

잠시 뒤 눈에 들어온 방 안의 풍경은 비극의 흑백사진 한 장이었다. 아궁이에 있어야 할 연탄은 빛바랜 형의 얼굴 바로 옆에서 차마 그를 쳐다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부근에는 찢어진 공책에 급하게 휘갈겨 쓴 듯한 “구질구질하게 살다 가서 미안하다”는 쪽지 한 장이 나뒹굴었다. 한걸음에 달려온 어머니는 넋 나간 모습으로 형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자기 업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나는 형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곱씹을수록 서럽고 억울한 죽음이었다. 


고향의 절에서 49재를 지내다

황망한 가운데 경찰관들이 들어섰다. 육안(肉眼)으로 확인한 결과 타살의 위험은 없으나 의사의 부검을 거쳐야 장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시엔 시립 화장장 옆의 별도 건물에 부검실이 있었다. 사무적인 표정의 부검의는 일산화탄소 중독이 직접적인 사인이라고 했다. 타살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의미였다. 곧바로 화장 절차가 진행되었다. 형의 육신은 불과 두 시간 만에 세상과 철저하게 작별했다. 마침내 종이로 싼 한 줌의 잿빛 가루가 내 손에 건네졌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버스로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고향 뒷산의 조그만 암자에서 49재를 지내기로 했기 때문에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절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제사 의식이 끝나갈 무렵 한 줄기 회오리바람이 영가(靈駕) 옆에 있던 촛불을 출렁이게 하더니 법당 천장 쪽으로 올라갔다가 문틈 사이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스님은 형의 영가가 고맙다고 하직 인사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갓 태어난 형의 몸은 검은 점투성이였다

종갓집 맏며느리였던 어머니는 한 번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고 푸념했다. 어머니는 남편 복도 없었고 자식 복도 없었다. 생전에 당신이 낳은 자식들을 넷이나 앞세웠다. 그중에서도 자살로 마감한 형의 삶은 어머니에게 두고두고 한(恨)이 되었다. 어머니는 다섯 번째 형을 온몸에 검은 반점이 있는 아이로 낳으셨다. 거기에는 불가사의한 업력(業力)이 작용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형을 임신하고 있던 1940년대 중반에 가축전염병이 크게 창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병든 소를 소독하는 것 외에 별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문제는 어처구니없는 소독 방식이었다. 어머니는 며칠에 걸쳐 이루어졌던 끔찍한 장면들을 고통스럽게 떠올리셨다. 할아버지의 주도로 네 다리를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병든 소를 미리 파놓은 흙구덩이 속에 한 마리씩 밀어 넣었다. 이어서 집안의 남정네들을 시켜 물집이 생겼거나 헌데가 난 부위를 벌겋게 달군 인두로 단단히 소독하도록 했다. 구제역(口蹄疫)과 같은 역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던 소들의 눈망울과 뜨거운 고통에 몸부림치던 울음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하셨다. 뱃속에 형을 품고 있던 어머니는 태아에게 미칠 업보(業報)를 염려해 울면서 말렸지만, 할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은 막무가내였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어머니는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렸다. 불안하고 초조했을 것이다.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수도 없이 빌었다고 했다. 하지만 걱정했던 일은 결국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오늘이 되고 말았다. 아이를 받아내던 친척 아주머니가 놀라 나자빠질 정도였다. 갓 태어난 아이의 몸에 시커멓게 불탄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검붉은 점들의 위치는 고통스럽게 울부짖던 암소의 몸에 새겨졌던 인두 자국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보기 흉한 점들 위에는 굵은 소털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그것 보라고 목놓아 울었지만 아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 순간부터 어머니는 형에게 평생 죄를 지은 수인(囚人)이 되었고, 형은 그런 어머니를 평생 미워하는 모자(母子) 사이가 되었다. 온몸에 점투성이인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얼마나 낙담했을까를 생각하면 커다란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듯한 통증을 느낀다. 


자살은 또 다른 악업을 지을 뿐이다

어쩌면 자살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가슴 한구석에 깊이 묻어두었던 형의 영가를 40년 만에 예를 갖춰 법당에 봉안했다. 작년 여름의 일이었다.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했던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게 된 절에 부탁해서 처자식도 없이 외롭게 떠돌던 형의 영가를 늦게나마 모셨다.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만 머물던 형과의 약속이 가슴으로 내려와 영가를 다시 찾는데 무려 40년이나 걸렸다. 무심한 동생이라고 섭섭했을지도 모를 형의 얼굴이 침몰한 난파선처럼 무시로 떠올라 죄송스러웠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인연이 된 절에 이제야 겨우 모시게 된 것이다. 

생전의 형은 그림에 특출난 소질이 있었다. 특별히 배운 적도 없었으나 인물과 정물화뿐만 아니라 풍경화에도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친구에게 얻은 말라비틀어진 물감 몇 개를 물과 섞어 다양한 색깔을 만들며 달력 속 그림과 똑같은 풍경을 그려내는 것을 보고 선생님은 형의 소질이 아깝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도저히 형을 뒷바라지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형은 몸도 마음도 서서히 병들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다 보니 형의 불행한 삶과 죽음을 소재로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미안하기도 하고 힐링도 되는 기분이다. 늦었지만 형도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는 동안 서로에게 아픈 애증(愛憎)의 관계였던 어머니와 화해했는지도 궁금하다.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고, 형은 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저 인연의 사슬이 만든 모진 업보의 결과였을 뿐이다. 

숨기고 싶었던 가족사를 고백하면서까지 무거운 주제인 자살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자살은 어떤 이유와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저 한 개인의 어리석은 죽음일 뿐이다. 가족조차도 죽은 사람의 선택을 마음속으로부터 깊이 공감하기 어렵다. 내 형의 죽음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특히 어머니에게 불효막심한 행동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정이 어떻든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 것은 말 그대로 불살생계를 어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윤리학적으로 말하면 자살은 세상에 불행의 총량만 증가시킨다. 어떤 경우에도 자살이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이유일 것이다. 자살은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공동체의 정책적 배려가 조화를 이룰 때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많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공업(共業)의 도덕적 함의도 한번 더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자비심의 사회적 실천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려할 때다.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통계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병들어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사회과학적인 증거일 수 있겠다. 정말 심각한 불행 지수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불자들은 세상에 대한 따뜻한 자비심을 바탕으로 자살하려는 이웃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다양한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다.  


허남결 동국대학교 국민윤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현재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불교윤리와 공리주의의 접점 모색에 관심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공리주의 윤리문화 연구』가 있고, 번역서로는 『불교와 생명윤리학』, 『자비 결과주의』, 『불교응용윤리학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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