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 속에 생명이 있다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걸음 속에 생명이 있다


김승현 

그린 라이프 매거진 『바질』 발행인



길을 나서다

하루에 한 번은 건강을 생각해 걷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아침에 일하러 갈 때 걸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오후 산책으로, 저녁에 운동으로, 퇴근길에 걷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혹은 어지간하면 매일 걸어가지만,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우면 걷는 걸 포기하기도 한다. 바람도 얼어붙은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어느 때보다도 걷기가 즐거워지는 시기가 온다. 봄이다. 땅에 물이 오르고 딱딱하던 땅에 연두색 잎사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땅이 폭신해지면 걷는 시간이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진다. 

어제도 그랬다. 벚꽃이 흩날리고 제비꽃, 민들레를 비롯해 온갖 꽃이 피어나고, 땅에는 풀이 연하게 올라와 폭신해진 풀 위를 걸으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잠시 갓 올라온 풀잎들을 밟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원래 인간도 동물처럼 이런 풀밭을 밟고 다녔을 거로 생각하면서 미안한 마음을 애써 외면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 발로 걷는 동물과 두 발로 걷는 인간 중 누가 더 많은 부담을 주고 있을까? 발바닥의 총면적은 누가 더 넓을까? 발바닥 하나에 실리는 하중은 누구의 것이 더 클까? 발바닥의 면적이 작으면 좋을까? 하이힐은 바닥 면적이 좁지만, 하중이 실려서 땅을 구멍을 내는데 그래도 그게 나은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누군가 생각하기에 참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걷는 동안 나는 온전히 생각에 집중할 수 있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어 이 시간을 정말 좋아한다. 걷는 시간은 나 자신을 챙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를 챙기는 시간

걷다 보면 처음에는 온갖 걱정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어느 순간 나에 대한 생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다 오직 걷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걷고 나면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걷기는 마음을 챙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불교에서는 걷기를 참선과 함께 소중한 수행 방법의 하나로 봤다. 걷기 수행은 틱낫한 스님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다. 틱낫한 스님은 ‘걷기 명상’이라고 해 일상생활에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느리게 걷는 과정을 통해 화를 다스리고 마음을 챙기며, 마음의 평화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도 걷기 수행이 있다. ‘경행’이라고 해서 참선을 하다가 잠시 일어나 몸을 풀고 호흡을 가다듬는 걷기가 있다. 

걷는 시간 동안은 ‘오직 걷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빠르게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주변과 호흡하며 걷게 된다. 단순하지만 걷는 과정에서 마음의 불안감을 줄이고 긴장을 풀 수 있다.

더 나아가 걷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주변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다. 뉴스나 방송에서 떠드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촉감으로 느끼며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매연이 가득한 거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깨끗한 공기를 떠올리게 되고, 땡볕에 그늘 하나 없는 더운 날씨에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와 숲을 생각하게 된다. 다니기 좋도록 길을 정비하는 일하는 사람들의 땀방울 등 우리가 받는 세상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도움도 만나게 된다. 나만이 아니라 주위를 살피게 되고 세상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세상을 챙기는 시간

석가모니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신 후 “세상 밖과 세상 속에서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윤회하는 세계는 모두 고통이니 마땅히 내가 편안하게 하리라.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설파하셨다. 그리고 평생을 걸어 다니시면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마음의 힘을 길러주셨다. 그렇게 석가모니 부처님은 평생을 걸어 다니시면서 세상을 챙기셨다. 

여기 기쁜 소식이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하셨듯이 걸음으로써 우리도 세상 챙김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딘가 갈 때 기름을 써서 움직이는 자동차 대신 두 발로 걷기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임으로써 뜨거워지는 세상을 챙기는 것이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의 증가로 지구온난화가 일어났고, 이는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라고 불릴 만큼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뭄과 홍수의 빈발로 식량난이 증가하고 있고,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해양 산성화가 심해지면서 해양에서 사는 생물들이 사라지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잘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더위와 추위를 막을 방법이 부족하고,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한 국가들이다. 만약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원인 중 13~14%를 차지하는 교통, 그중에서도 원인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자동차 사용을 줄이고 걷기를 늘린다면 바로 기후변화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챙기는 일이 된다. 그뿐인가!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대기오염 물질을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짐작하듯이 대기오염 또한 가난한 이들에게는 더욱더 힘든 고통이 된다.

우리가 사는 곳에 대해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많은 사람이 걸어서 출퇴근하기를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장거리를 제외하고는 자동차가 거의 필요 없어지게 되는 도시를 말이다. 자연스럽게 걷기 좋은 거리가 생겨날 것이고, 매연은 줄어들어 하늘은 맑아질 것이다.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을 따라 걸을 수 있고, 그 숲에는 동물들이 다시 찾아오고, 자동차 경적 대신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로 가득한 곳을 말이다. 우리가 걷는 것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다. 


걷기를 위한 한 걸음

오늘은 퇴근길에 차를 타는 거리를 조금 줄여보자 마음먹어보자. 걷기를 위한 준비가 되었는가? 이제 팔목을 돌리고 발목도 부드럽게 돌려주자. 어깨도 돌려주자. 목도 돌려주면 좋다. 관절들이 부드러워진 것 같으면, 가볍게 뜀뛰기를 한 후 손목과 발목을 털어주자. 준비는 끝났다.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자. 고개를 들고 허리는 곧게 세우고 아랫배에 힘을 주자. 팔은 가볍게 앞뒤로 흔들자. 그리고 공기를 느껴보자. 한 호흡 한 호흡,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며 천천히 걸어보자. 주변도 둘러보면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며 걷는 시간을 즐기자. 그 걷는 시간이 당신 자신을 챙겨주고, 세상을 챙기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당신의 몸도 마음도 튼튼해질 것이다. 

나는 오늘 우체국을 다녀오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강변의 산책로를 나섰다. 초록 융단이 깔린 듯, 땅은 풀이 솟아올라 폭신해졌다. 잠시 풀을 밟아보았다. 풀의 폭신함이 한없이 좋았지만, 풀밭을 나와 시멘트로 된 길로 가기로 했다. 내가 걷는 걸음이 나와 세상을 챙길 수 있는 길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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