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성찰
정타(正打)와 팔정도(八正道)
임웅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새 낫을 사용할 때, 처음에는 풀이나 잔가지를 베다가 서서히 큰 가지를 쳐서 베어 나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큰 가지를 치지 않도록 하세요. 그걸 여기서는 낫을 길들인다고 합니다,”
농촌살이를 갓 시작해 좀 묵직한 낫을 구입하는 내게 동행한 마을 주민과 철물점 주인이 던지는 충고였다. 단조로 제작한 두꺼운 쇠 낫을 ‘대장간 낫’이라고 부른단다.
나는 ‘낫을 길들인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생물인 쇳덩어리가 큰 가지를 쳐내는 것은 처음이나 나중이나 간에 변함없이 기능을 발휘할 터이지, 처음에는 안 되고 나중에는 된다는 말이 과학 상식으로 보아 납득하기 어려웠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처음부터 낫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큰 가지를 쳐내다가는 낫의 이가 빠지거나 잘 벼려진 날이 무디어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낫도 규격과 담금질, 두드림, 손잡이 형태 등등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어서 제각기 개성이 있는 법이니까, 연장을 다루는 사람이 풀이나 잔가지를 자르면서 낫을 손에 익히고 낫과 호흡을 맞추어가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자기 낫에 익숙해진 단계에서는 단단하고 굵은 나뭇가지를 힘껏 내려쳐도 낫이 상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 아닐까? ‘낫을 길들인다’는 것은 베어낼 물체를 향해 낫을 ‘정타(正打)’로 날릴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서 ‘낫을 제대로 다루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평소에 호쾌하게 장타를 날리는 힘 좋은 골퍼가 구입한 지 몇 달 안 되는 새 골프채를 휘두르다가 라운딩 도중에 채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목격한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치던 골퍼나 보고 있던 나나 그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낫을 제대로 사용하는 정타 원리를 이해한 지금에서야 탄성 좋은 골프채가 똑 부러지고만 원인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골퍼는 스윙 궤도를 바꾼다든가 새로운 타법을 시도하든가 해서 연거푸 정타를 날리지 못한 까닭에 채가 부러진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작업 도구이든 운동 기구이든 정타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나는 무엇을 다룰 때에는 정법(正法)에 따라야 한다는 이치를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이 이치를 새겨볼 영역을 넓혀, 인간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삶의 고비 고비에서 깊은 내상을 입고, 크게 망하고, 중병에 걸리고 하는 불행한 일들이 삶을 정타로 살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업을 쌓고, 바르게 명을 받고, 바르게 노력하고, 바르게 뜻을 품고, 바르게 다스리는 팔정도(八正道: 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의 삶이 상하지 않고 온전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까? 불가(佛家)에서 가르치는 팔정도야말로 정타로 삶을 살아갈 여덟 가지 현책(賢策)을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정타의 삶, 팔정도를 걷는 삶이 평안하고 복된 낙토(樂土)를 약속한다.
우리는 무턱대고 살 것이 아니다. 삶을 서투르게 다룰 것이 아니다. 낫을 길들이듯이 삶을 길들여야 한다. 삶을 길들인다는 것은 팔정도의 수행을 쌓는 일이다. 인생에 시련이 없을 수 없다. 잔 시련을 수없이 겪어가는 성장 과정에서 팔정도의 수행을 쌓고, 언젠가 닥칠 크나큰 시련을 정타의 낫질로 척척 쳐서 끊어낼 일이다.
임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법과대학 교수로 31년간 재직했고, 현재는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전공 서적 이외에 장편소설 『영성지수(靈性指數)』, 단문집(短文集)인 『센타크논 전문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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