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는 즐거움 | 살며 생각하며

채식하는 즐거움

이현주
기린한약국 원장, ‘한국고기없는월요일’ 대표


나는 채식을 시작한 지 18년째 접어들고 있다. 맨 처음 채식을 시작했을 때는, 단지 마음을 좀 편안하게 가라앉혀 보고자 하는 단순한 이유였고, 그리 오래 지속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때 마음이 좀 복잡하고 불안하던 시기였던지라, 매일 『금강경』 원문과 해석을 한 번씩 사경하며 채식을 100일쯤만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막상 100일쯤 되고 보니,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 것은 물론, 고기 냄새도 싫어지고 더 이상 다른 생명을 해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래서 순식물성 한약재로 처방하는 한약국을 열어, 나의 일상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채식하는 삶을 지속하며, 오시는 분들에게 약만 처방하는 게 아니라 채식 식단도 처방하고, 강좌를 열어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건강한 채소 요리를 통해 채소들의 영양을 살리는 조리법과 식단을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한 끼 식단에서 다섯 가지 색을 살려 조리하고자 했다. 식물의 오색(초록색, 붉은색, 노란색, 흰색, 검은색)은 오장(간, 심장, 비위, 폐, 신장)에 이롭고, 이 색깔들 속에 식물의 영양이 가장 많이 들어 있다. 파이토케미컬로 알려진 항산화 성분, 항노화, 항균, 항암 작용을 하는 무수한 영양 성분들이 바로 식물들의 색소, 맛, 향기 성분에 들어 있다. 두 번째로, 다섯 가지 맛을 골고루 요리에 반영하려고 했다. 오미(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역시 오장에 이롭다. 한쪽으로 치우친 맛은 편식, 과식, 폭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평소 다섯 가지 맛을 고루 섭취하면 식욕을 조절하기 쉽고, 정신적으로도 균형 잡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식재료 고유의 맛을 즐기기 위해 간을 적게 하고, 특히 화학조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천연 허브나 향신료 등을 적절히 활용하면 음식의 풍미를 다채롭게 만들 수 있어 좋다. 세 번째, 기름을 적게 사용하려고 했다. 식물성 기름도 칼로리가 높고 쉽게 산패되기 때문에 신선한 상태로 소량 섭취하는 게 좋다. 가능하면 최소한의 기름을 사용하고, 튀기는 대신 기름 없이 굽거나 가볍게 볶는 조리법을 선택했다. 네 번째로, 식품은 통째로 조리하는 편이다. 과일은 껍질째 먹고, 채소도 통째로 조리하면 식물들의 온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강박적인 원칙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고, 가능하면 창조적으로 즐기면서 조리하고 채식과 친해지려고 하다 보니 점점 채식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지게 되었다. 또한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도 선물하듯, 채식 요리를 함께 나누다 보니 주변 사람들도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채식을 즐기게 되었다.

나는 끼니마다 내게 오는 축복 같은 채식의 순간들을 정말로 사랑한다. 또한 접시를 비우고 난 후, 설거지통에 담긴 그릇을 닦을 때, 쓰레기가 적게 나올 뿐만 아니라 세제를 적게 사용해도 뽀드득해지는 그 기분도 매우 좋다. 가능하면 음식을 남기지 않지만, 설사 남겼다 해도 땅과 물을 많이 더럽히지 않아도 되어 안심이 된다. 무엇보다 다른 생명들과 우리가 사는 지구에 해를 덜 끼친다는 다행스러운 감정이 든다.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지 육식의 폐해 때문에 채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채식에 대한 즐거움에 눈뜨기를 기도해본다. 일주일에 하루 채식하면, 연간 일인당 30년산 소나무 15그루를 심는 탄소 감축 효과가 있다고 한다. 천천히 즐기면서 채식을 시작해보자.

이현주
한약학 박사. 동물성 한약재를 쓰지 않고 순식물성 한약과 채식 식단만을 처방하는 독특한 한약국(기린한약국)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몸과 마음의 셀프 힐링 방법을 배우는 ‘오감테라피 학교’도 운영 중이다. ‘고기없는월요일(Meat Free Monday)’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채식 연습』, 『맛있는 채식』, 『행복한 레시피』, 『기린과 함께하는 한방채식 여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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