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 살며 생각하며

독일에서 티베트 스님과 함께한 

비대면 명상 수행 


박서연 

작가



독일 함부르크 중심가에서 약 18km 떨어진 베르네(Berne)라는 역. 이곳에서는 형형색색 오색 깃발이 걸린 주택을 볼 수 있다. 올해로 44주년을 맞이하는 티베트센터협회(Tibestisches Zentrum e.V.)로 건물 외관은 바로 옆집과 다를 것 없는 뾰족한 삼각형 모양 지붕의 2층짜리 주택이지만, 그 안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티베트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인 오색 깃발 ‘다르촉(經幡, Tharchog)’이 지붕 끝을 따라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 깃발 하나하나에는 경전이 적혀 있는데, 티베트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경전을 적은 깃발을 걸어두면,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경을 읽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다르촉에서 시선을 거두고 정원으로 들어가면 부처님의 금불상을 안에 모신 새하얀 돌탑과 작은 사당과 정원에 핀 붉은 튤립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독일 주택이 이렇게 사찰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만 했다. 

함부르크의 티베트센터협회 설립의 중심에는 게셰 랍텐 스님이 있다. 게셰 랍텐 스님은 대표적인 티베트 승려로 달라이 라마 성하가 티베트 불교를 서양에 전파해줄 것을 요청해 1974년 스위스로 가게 되었다. 게셰 랍텐 스님은 이때부터 스위스를 기반으로 본격적으로 유럽에 티베트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3년 뒤인 1977년 함부르크에 이 티베트센터협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이곳은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과 세미나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6년 동안 풀타임 과정으로 불교를 정식으로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갖추고 있다. 여름에는 함부르크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명상 하우스에서 숙박을 하면서 세미나와 명상을 할 수 있는 여름 캠프도 연다. 읽자마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취소된 듯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여는 명상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수행을 하기 위한 절차 같은 것은 따로 없었다. 그저 마음을 내고 수행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 때문에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어 각자의 집에서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모였다. 총 100명 정도였다. 

티베트 불교의 수행은 처음 접해보는지라 차분한 듯하면서도 강렬한 자줏빛의 승복이 가장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오늘 법문을 설해주실 스님은 ‘겐 롭상 초에조르(Gen Lobsang Choejor)’라는 티베트 스님이었다. 스님의 등 뒤로는 부처님이 그려진 탱화가, 그 아래에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그리고 그 아래에 스님이 앉아 있었다. 시작할 시간이 되자 스님은 손에 쥐고 있던 염주를 동그랗게 말아 손안에 넣고 합장을 했다. 그러고는 염주가 들어 있는 손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티베트어로 불경을 외우면서 수행이 시작되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도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스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리듬이 익숙해질 즈음에는 소리만 따라 하기도 했다. 

불경이 끝나고 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구텐 아벤트(Guten Abend).”

통역이 있지 않을까 추측했던 것과 달리 스님은 직접 독일어로 법문을 시작했다. 유창한 독일어는 아니었지만 진정성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에 오히려 더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힘이 있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행복과 불행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행복의 원인은 아주 많습니다. 부처님도 말씀하셨고, 여러분이 믿는 신도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행동에 옮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내가 되기 위한 변화,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명상입니다.”

우리에게 명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들은 뒤,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을 직접 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은 독일어로는 ‘집중하는 명상’과 ‘분석하는 명상’이라고 풀어서 표현한다. 우선 무엇이든 한 가지 대상을 정해서 그것에만 집중하는 사마타 명상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초보자가 많은 것을 배려해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짧아도 좋으니 짧게 여러 번 연습해볼 것을 권하셨다. 

“길지 않아도 됩니다. 30초, 1분, 1분 30초 이렇게 명상을 해보고, 생각이 흐트러지면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반복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중요한 건 무엇이든 한 가지 대상을 정해 거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집중해보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하나의 개념도 좋고, 글자도 좋고, 소리도 좋습니다.”

설명이 끝나고 울려 퍼지는 싱잉볼 소리에 모두 눈을 감고 5분 정도 사마타(집중) 명상을 했다. 더 중요한 건 그다음에 이어지는 위빠사나(분석) 명상이었다. 

“행복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행하고,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아무런 문제가 생길 것이 없습니다. 행복의 원인은 ‘남을 생각하는 것’이고, 불행의 원인은 ‘나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나’를 생각하는 마음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을 더 내어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 명상에서는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어려운 것을 새로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들을 내일이 아닌 오늘,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위빠사나 명상까지 마친 후, 내게는 스스로 실천해보고 싶은 새로운 화두가 생겼다. 평소 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문장 중 ‘나’라는 주어가 들어가는 것을 모두 타인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음식’을 ‘이웃의 음식’으로, ‘나는 여행을 가고 싶다’를 ‘저 사람은 여행을 가고 싶다’로 말이다. 이때 ‘내 음식’을 떠올리며 느끼는 강한 집착을 함께 기억했다. 그리고 주어를 ‘이웃’으로 바꾸니 갑자기 그 집착이 ‘펑’ 하고 사라져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된다고 했다. 이 ‘주어 바꿔보기’ 연습이 나의 행동을 바꾸고,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박서연 성신여자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CJ E&M(Netmarble), BIGPOINT 등의 IT 업계에서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 시장을 잇는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했다. 지금은 독일 함부르크의 하펜시티 대학에서 대도시문화학을 공부하며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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