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허무가 아닌 연기법의 다른 이름|10분으로 배우는 불교

공은 허무가 아닌
연기법의 다른 이름

정상교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과 교수



공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아주 가끔 연구실로 ‘재야 불교 도사님’들의 항의성(?) 전화가 걸려올 때가 있다. 말씀인즉, 부처님 말씀의 핵심은 공(空)이고, 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을 말로 하면 이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상에 떠도는 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공을 자꾸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건 불도에 대한 오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 공부를 다시 하라는 격려도 잊지 않으신다.   

우리나라의 불교 역사가 1,500년이 넘기 때문에 한국인의 사상과 문화 등등 많은 분야에 불교가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그래서 일상적으로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다음 생에도 이 길을’ 등등의 가벼운 농담도 나누곤 한다. 이렇게 불교가 친근하다 보니 불교에 대한 오해 역시 굳어버린 채 널리 퍼져 있음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공에 관한 담론들은 불교에 관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추상적인 이해가 아닐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법회 시작이나 중요한 불교 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독송하는 『반야심경』의 핵심 사상은 공이다. 그래서 색(물질)도 공이요, 공이 곧 색(물질)이라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구절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뿐만 아니다. ‘무무명(無無明)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타파해야 할 무명(어리석음)도 없고, 그 무명이 다함도 없다고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집착과 그로 인한 고뇌, 그리고 그 고뇌에서 완전히 벗어남과 그 방도를 설하신 고집멸도도 ‘무’라고 한다. 그럼 뭐란 말인가? 이해하기 쉽지 않아 그 의미를 질문이라도 하려고 하면 재야 불교 도사님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허허~, 없다가 없다가 아니요, 아닌 게 아닌 게 아니다. 그게 공이니라! 그러니 공을 머리로 이해하면 안 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느니라! 암, 말로 하면 그게 어디 공인가!” 결국 공과 무는 어느 순간 어정쩡하게 한 몸이 되고 이를 질문하면 쓸데없는 사유와 분별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버린다. 여기에 공을 설하는 또 하나의 유명한 경전인 『금강경』의 한 구절을 들려주며 쐐기를 박는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하며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하니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니라(생성된 모든 것들은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이렇게 불교의 가르침은 공=무=꿈=환영=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가 되어 널리널리 퍼지게 된다.  

대승불교 사상의 기반인 공(空)은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 쑨야(śūnya)의 번역어다. 따라서 이를 공으로 번역해도 문제는 없지만 철학적 개념으로서 쑨야(공)는 복잡하다. 단, 공사상의 확립자이며 공에 대한 가장 초기 해설서인 『중론』을 쓴 나가르주나(용수보살)는 “불설의 핵심은 연기법이며 그것이 다름 아닌 공성(空性)이고 중도(中道)”라고 명확히 규정한다. 즉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고, 세상은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다는 것은 공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지 그 본질은 연기법이다. 

불교의 진리인 ‘진여(眞如)’, ‘공’이라는 개념이 중국인들에게 소개될 때 인도인의 철학이 아직은 어색했던 중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노장사상이 불교와 비슷해 보였다. 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사고 역시 『노자』의 그 유명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즉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항상된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항상된 이름이 아니라는,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논법 그대로다. 그리고 번역가들은 진여, 공을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본무(本無), 무(無)로, 깨달음인 열반을 무위(無爲)라고 번역했다. 번역이라는 어려움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렇게 불교는 ‘무’를 강력히 주장하는, 때로는 허무주의 깊게 배인 가르침의 이미지로 굳어버렸다. 

이제부터라도 불교에 관심을 가진 누군가 공이 무어냐고 물어본다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본래 없는 것임을”이라는, 불교가 아니라도 들을 수 있는 추상적 대답 대신, “공은 붓다께서 깨달으신 연기법의 다른 이름입니다”라고 해주는 것이 보다 더 명확한 답변이 되지 않을까 제안해본다.  


정상교|금강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대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금강대 불교인문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 출연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도쿄대학 불교학과-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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