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에 가면 지극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 무주 안국사|불교 핫플레이스

이 절에 가면
지극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무주 안국사

글/사진 강산
불교 유튜버(불교여행자 강산–아이고절런 운영자)


무주 적상산 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 위, 숨이 가빠질 즈음 창문을 열었다. 에어컨보다 더 깊고 맑은, 고지대의 바람이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산허리를 타고 넘은 바람은 풀잎의 향기를 머금은 채, 나를 ‘지금 이곳’으로 안내했다. 하늘 아래 단 하나뿐이라는 천일폭포를 지나며 마음이 맑아지고, 귀 안에서 ‘딱’ 하고 울리는 고막의 반응은 내가 꽤 높은 곳에 올라왔음을 알린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 고려 충렬왕 3년(1277년), 월인 화상이 창건한 고찰 안국사.

나를 맞이해준 것은 주지 능엄 스님과 이곳의 수호견처럼 느껴지는 진돗개 ‘진주’였다. 스님의 차분한 인사에 마음이 가라앉고, 진주의 느긋한 눈빛에 마음이 풀어진다.

안국사는 단순한 수행처를 넘어, 조선의 역사를 품은 사찰이다. 광해군 6년(1614), 『조선왕조실록』을 봉안하기 위해 적상산 사고가 설치되면서 이 절도 함께 확장되었다. 나라를 지키는 스님들, 수직승의 기도처였고, 이후에도 호국의 뜻을 간직한 도량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냈다. 1989년, 발전소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하자 원행 스님이 이 절을 산 정상 가까이로 옮겨 다시 지었고, 그렇게 안국사는 다시 숨을 쉬게 되었다.

안국사의 주법당인 극락전 옆에는 지장전이 나란히 서 있다.

하나는 모든 고통이 사라진 세계, 아미타부처님이 계신 극락이고 또 하나는 지옥 중생들을 향한 끝없는 자비로 머무는 지장보살님의 도량이다.

삼천대천세계라 불리는 불교의 광대한 우주 속에서, 극락은 가장 위쪽, 지옥은 가장 아래쪽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안국사에서는 두 세계가 나란히 놓여 있다.

능엄 스님은 이 배치에 대해 조용히 말씀하신다.

“우리 삶도 그래요. 마음 하나에 따라 극락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언제나 마음을 잘 살피는 게 중요합니다.”

이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높고 낮음, 선과 악, 고요와 고통을 가르는 것은 어쩌면 아주 작은 ‘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리는지가, 우리가 어느 세계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를 결정짓는 건 아닐까. 나란히 선 극락전과 지장전 사이에서,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서 있는가를 조용히 되묻게 된다.


극락전에서 고개를 들면, 하늘 높이 솟은 향적봉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수천의 불상이 모셔진 천불전에 다다른다. 스님은 이곳을 소개하며 웃으며 말한다.

“삼천배를 하고 싶은데 못 하겠다고요? 그럼 여기서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만 하세요.

그럼 삼천배가 됩니다.”

스님은 또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내가 행자일 때, 150일 동안 매일 삼천배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불편한 보살님이 조용히 오셔서 단 세 번 삼배를 올리셨는데… 그분의 절에는 내가 올린 그 모든 절을 뛰어넘는 지극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수행’이란 단어의 의미가 다시 새겨진다. ‘얼마나 많이 했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 겸손과 유머가 묻어나는 말 한마디에, 수행이 단지 몸으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안국사는 적상산 정상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 길목은 의외로 부드럽다. 흙냄새 가득한 산길이 천천히 이어지고, 능엄 스님과 진주가 앞장선 포행길은 어느새 향로봉으로 향한다. 짙은 나무 그늘과 은은한 산새 소리, 그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어우러져 마치 제주 숲길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안개가 내려앉는 날이면, 풍경은 더욱 몽환적이다. 걷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가라앉고, 마음은 어느새 고요의 호흡을 따라간다. 그 자체로 명상이 되는 길이다.


포행을 마치고 다시 안국사로 돌아오는 길, 반대편 산등성이 너머로 향적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신다.

“겨울이 되면 향적봉 아래 무주리조트 슬로프에 조명이 켜져요. 그 불빛들이 산허리를 따라 반짝이면,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여요. 종교를 넘은 축복이지요.”

세상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싶다면, 겨울의 안국사를 추천한다는 스님.

불교라는 종교를 떠나, 마음 깊은 곳에 닿는 ‘지극함’ 하나만으로도 이곳은 충분히 찾아올 이유가 된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다독여줄 조용한 숨결이 필요할 때.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 길의 끝에서 안국사는 따뜻한 등불처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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