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불교|동남아시아 불교, 그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

라오스 불교

정기선
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강사, 미얀마 불교문화연구소장

라오스 파탓루앙 사원

동남아시아 대륙부를 관통하는 메콩강의 물줄기처럼 유유히 흐르는 라오스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에는 깊고 푸른 불심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라오스 불교는 동남아시아 상좌부 불교권에서 종종 간과되거나 주변적인 위치에 놓여왔다. 미얀마의 수행불교, 스리랑카의 교학불교, 태국의 계율불교가 국제 학계와 수행 네트워크에서 각자의 고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라오스 불교는 종종 태국 불교의 변형 또는 아류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점은 라오스 불교의 고유한 측면, 즉 공동체 중심의 연간 의례 체계와 일상적 실천에 기반한 대중불교의 특징을 간과한 것이다.

라오스 불교는 주변 불교인가?
사실 라오스 불교는 지리적으로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술적 논의와 국제적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라오스의 특수성과 오랫동안 외부 세계와의 교류가 제한적이었던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라오스 불교는 주변국 불교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라오스 불교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상좌부 불교 교리와 토착 애니미즘(정령신앙)의 조화로운 융합이다. 라오스인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특정 장소에 깃든 자연과 조상, 정령(Phi)의 존재를 믿고 숭배한다. 이는 라오스 불교가 승려 중심의 학문적 또는 수행적 전통보다는 민중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의례를 중심으로 한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고유성은 라오스 불교가 단순히 태국 불교의 아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온전하고 독자적인 실천 체계를 갖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히트십프손(Hit Shipsoun)’이라는 독특한 연중 의례 체계는 불교가 라오스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과거 - 왕실 불교와 민중 의례의 병존
라오스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7~14세기 이전까지 몬족과 크메르 제국의 영향을 통해 전해진 상좌부 불교와 대승불교가 혼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라오스 불교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4세기 란쌍 왕국(Lan Xang Kingdom, 1353~1707)의 건국과 불교의 국교화이다. 파응움(Fa Ngum) 왕은 크메르로부터 스리랑카 전통의 상좌부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였고, 이를 통해 라오스는 제도화된 승가와 불교 교리를 국가 이념으로 삼아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이는 인근의 태국이나 캄보디아와 유사하게 왕실 불교가 국가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파탓루앙(Pha That Luang)과 같은 국가적 사원은 왕권의 상징이자 불교의 중심지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라오스에서 불교는 단순히 왕실 불교에만 머무르지 않고, 민중 중심의 의례와 공동체 활동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각 지역의 마을 단위 사원은 단순한 예배 장소가 아니라 교육, 의례, 그리고 공동체 결속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이는 불교가 왕실의 이념을 넘어 백성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승려들은 교육을 담당하고, 의례를 주관하며, 갈등을 중재하는 등 마을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다양한 역할들을 수행했다. 이 다양한 불교 신행 중에서도 라오스 불교의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12가지의 전통’이라는 의미를 지닌 히트십프손으로 라오스 불교의 연중행사와 사회적 규범을 함축하는 민속적이고 의례적인 의식 체계이다. 이 체계는 신년제인 분 피마이(Bun Pimai), 입안거재인 카오판사(Khao Phansa), 그리고 탁발 의식인 탐분(Thambun) 등 각 달에 해당하는 불교 수행과 공동체 행사를 포함하며,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종교적 실천이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된 통합 양식을 형성한다. 이는 인접한 상좌부 불교 국가들과 비교할 때, 라오스 불교의 민속적 특수성과 공동체적 유대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단순한 종교 의례를 넘어 라오스 사람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사회 질서를 형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기제로 작용해왔다.

새벽 탁발을 하는 루앙프라방의 승려들

현재 - 통제 속의 지속과 전환
1975년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불교는 한때 억압받기도 했다. 승려들은 강제 노동에 동원되었고, 사회주의 교육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했으며, 심지어 설법 내용에도 마르크스주의적 가치가 반영되는 등 종교 활동이 위축되었으나, 1980년대 후반 경제 개혁과 함께 점진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확대되었다. 오늘날 라오스 불교는 국가의 관리하에 있지만, 여전히 국민 대다수의 정신적 지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라오스 인구 약 740만 명 중 약 95%가 불교를 신앙하며, 전국적으로 4,900여 개소의 사원이 존재한다. 사원은 종교적 공간을 넘어 마을 공동체의 중심으로 아이들의 교육기관이자, 축제가 열리고 주민들이 모여 소통하는 장소이며, 때로는 숙식을 제공하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한편 대부분의 승려 교육은 여전히 지역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기초 불교 교육에 국한되어 있으며, 팔리어 학습과 심도 있는 교리 교육은 비엔티안과 루앙프라방에 위치한 고등불교 교육기관에서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특히 실제적인 명상 수행 체계의 취약성은 라오스 불교가 미얀마나 태국의 수행 체계와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미얀마의 위빠사나나 태국의 담마까야(Dhammakaya)와 같은 체계적인 수행 전통이나 대규모 수행 센터는 라오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라오스 불교가 지향해온 역사가 교학적 연구나 실제적 수행보다는, 공동체적 의례와 윤리적 삶에 더 방점이 찍혀 있었음을 보여준다.

미래 - 전통의 보존과 수행법의 쇄신
라오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불교 사원과 승가는 국가의 통제를 받지만, 동시에 민중의 신앙은 여전히 활발하게 유지되고 있다. 그렇지만 교리 교육의 부족, 수행 전통의 미비,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젊은 세대의 세속화와 도시 이주 현상은 라오스 불교가 직면한 주요 과제이다. 이는 전통적인 공동체의 유대감을 약화시켜 히트십프손과 같은 전통 의례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근래 일부 사원에서 태국과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 체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은 라오스 불교가 유지해온 의례 중심 불교에 수행적 요소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변화는 라오스 불교가 단순히 전통적인 의례 중심의 신행에 머무르지 않고 수행 중심의 전환을 통해 현대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인다.

이 외에도 루앙프라방과 같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도시들은 불교문화와 관광의 성공적인 융합 사례이다. 불교 관광은 지역 사찰의 재정적 안정에 기여해 사찰 유지 관리 및 문화유산 보존으로 이어진다. 또한 관광객 유입은 젊은 세대에게 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고 사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상업화의 문제와 전통의 변질이라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향후 라오스 불교의 미래는 전통 의례의 보존과 수행법의 쇄신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라오스 불교가 과거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사회의 요구에 맞춰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라오스 불교는 오랜 역사 동안 외세의 침략과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그 전통을 굳건히 지키며 라오스 국민의 정신세계를 지탱해온 핵심 동력이었다. 상좌부 불교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면서도, 크메르 제국을 통해 힌두교와 대승불교의 지류를 받아들이고, 베트남과 중국으로부터 미미하지만 끊이지 않는 잔물결의 영향을 받으며 대중과 호흡을 함께 해왔다. 현재 라오스 불교는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고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본연의 가치를 다시금 인정받으며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메콩강의 유유한 흐름처럼, 다양한 역사적 층위와 문화적 교류의 흔적을 간직한 라오스 불교는 앞으로도 그들의 삶과 함께하며 고유한 빛을 발할 것이다.


정기선|동국대학교에서 미얀마 불교를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철학 박사). 현재 동국대 미래융합교육원 강사이자 미얀마불교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주요 번역서로 『실제적인 위빠싸나 명상수행』이 있고, 「미얀마의 불교문화 양상 연구」, 「미얀마 불교의 적수의례」, 「스리랑카 불치사 공양의례 일고」, 「불교의례의 좌법 고찰- 호궤(胡跪)와 거좌(踞坐), Ukkutika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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