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마음이 쌓이면 그 소망대로 변화해간다|2025년 캠페인

기도하는
마음이 쌓이면
그 소망대로
변화해간다

한자경
이화여대 철학과 명예교수


◦ 기도, 자신의 본래 마음 자리로 나아가는 활동
무언가 간절히 소망하는 바가 생기면 사람들은 저절로 기도를 하게 된다. 내 힘으로, 내 뜻대로 성취할 수 있는 일이라면, 직접 그 일을 행하지 기도를 하진 않을 것이다. 내 힘만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

소망하는 바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대학 합격이나 취업, 사업 성공, 가족의 건강 등 갖가지를 소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기도 내용도 다를 것이다. 국가의 번영, 세계 평화, 인류의 행복을 위한 기도도 있을 수 있고, 관세음보살 친견이나 극락왕생을 바라는 기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내용으로 기도하든 우리는 현재보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하는 긍정적 마음으로 기도한다. 그리고 기도를 할 때는 누구나 자신의 기도가 효력을 가질 것이라고, 즉 원하는 바가 성취될 것이라고 믿기에 기도한다. 내 힘으로 될 수 없는 일인데도 기도를 하면 그 일이 성취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기도한다.

내 힘으로는 안 되지만 어떤 다른 사람의 힘으로는 되는 일이라고 판단하면, 그때 우리는 아마도 기도하는 대신 직접 그 사람을 찾아가서 부탁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찾아가서 누구에게 부탁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일이 성취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할 때, 그렇게 소망하는 바는 분명히 있지만 그 앞에서 내가 너무 무기력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기도한다. 누군가는 관세음보살이나 석가모니 부처님께 기도하고, 또 누군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나 옥황상제 또는 또 다른 이름의 절대자에게 기도할 것이다. 그 기도 대상자가 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고, 그래서 내 소망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믿으면서 기도한다. 말하자면 기도할 때 우리는 내게 일을 직접 성취할 힘이 없어도 그 일을 성취시켜줄 어떤 존재와 내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내가 기도를 통해 그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내가 세상과 단절된 고립된 존재가 아니고 세계 전체와 이미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게 세계 전체를 움직이는 힘과 연결됨으로써 나 또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고 느낀다.

그렇다면 기도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 마음의 본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 아닐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바가 없다고 여겨 나의 뜻과 의도와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움으로써 우리 마음의 본래 자리, 즉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나와 세계가 구분되지 않는 본래 부처의 자리, 깨달음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 아닐까. 그 자리가 바로 중생, 즉 부처이고 번뇌, 즉 보리, 생사, 즉 열반인 그 마음자리일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은 지난 업(業)에 따라 그 마음 안에 만들어진 일체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신의 본래 마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업과 습(習)과 생각으로 한계 지어진 자의식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그보다 더 크고 더 깊은 본래 마음으로 나아가고, 그 마음 안에서 우리가 서로 하나로 소통하고 공명하는 하나의 마음이라는 것, 일심(一心)이라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들이 모이고 쌓이면 결국 세계는 그 기도하는 마음들의 에너지를 따라 그 소망대로 흐름을 형성하면서 변화해갈 것이다. 그 흐름은 나의 개인적 의식 바깥에 있어 나와 무관한 것 같지만, 실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나의 식(識)으로 감지되는 흐름이다. 기도는 그 흐름을 타고 온 우주 생명과 함께 공명하면서 세계를 변화시켜가는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화엄이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심(心), 유식이 말하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식(識)은 바로 우리 마음 깊은 곳의 그 흐름을 말한다.

그러니까 기도는 자신의 본래 마음자리로 돌아가 그 마음 깊은 곳의 흐름에 참여함으로써 모두 다 함께 보다 나은 세계, 보다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힘이 된다고 본다. 그러니 기도는 어느 특정한 순간 특정한 장소에서만 할 것이 아니라, 평상시 모든 순간 마음의 기본자세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화두를 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의심 대신 소망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갑갑함 대신 간절함으로 그 마음을 계속 유지해나감으로써 평상시에도 마음을 그 본래 자리로 되돌려놓는다면, 그 마음의 소망을 따라 세계는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마음은 그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조금은 더 평안해지지 않겠는가.


한자경|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서양철학(칸트)을 공부하고,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불교철학(유식)을 공부했다.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칸트와 초월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 『유식무경: 유식불교에서의 인식과 존재』, 『불교의 무아론』, 『대승기신론 강해』, 『마음은 이미 마음을 알고 있다: 공적영지』, 『마음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일체유심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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