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다른 차원의 지능적 동물,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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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어난 지능 : 문어의 신경계는 매우 복잡하지만, 뇌에 존재하는 뉴런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고 2/3는 다리에 위치한다. |
영국의 『BBC』 방송은 유명한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와 함께 2009년 3월 22일 노르웨이 북부의 북극지방에서 <경이로운 ○○○> 시리즈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3년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물리학적으로 도전적인 장소를 방문하는 특권을 누렸다. <경이로운 태양계>는 에티오피아에 있는 에르테 알레(Erte Alle)화산의 거대한 용암 호수에서, <경이로운 우주>는 볼리비아에 있는 건조한 고평원에서, <경이로운 생명>은 필리핀 북부에 있는 사가다의 들쑥날쑥하고 덜컹거리는 풍경 속에서 촬영했다.
모두가 콕스의 기억에 남는 장소들이었다. 이러한 장소들이 선택된 이유는 제각기 중요한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며, 지리적 위치나 교통편 등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콕스는 촬영 장소에 도착해 기진맥진해 있다가도, 카메라맨이 나타나 카메라만 들이대면 자신도 모르게 신바람이 났다. 플로리다 팜비치의 따뜻하고 얕은 바다도 기억에 남는다. 블루헤론브리지 아래의 주차장에서 보이는 플로리다의 대서양 해안은 문어에게 정원이나 마찬가지다.
문어는 이상하면서도 신비로운 동물이다. 연체동물의 멤버인 그들은 당신의 정원에서 자라는 달팽이와 민달팽이의 사촌뻘이다. 내골격이 없고 부리만 빼면 거의 완전한 연체동물인 문어는 외견상 단조로워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세 개의 심장이 파랗고 구리로 가득 찬 피를 전신으로 뿜어내고, 몸이 워낙 유연해서 눈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작은 구멍을 통과한다(이건 포식백색체소화관자인 곰치에게 쫓길 때 유용한 기술이다). 포식자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 먹물을 분사하는 것은 물론, 문어는 자연계 최고의 흉내쟁이다. 형태와 색깔을 배경과 똑같이 만들어, 배경 속으로 문자 그대로 사라지니 말이다. 그렇다면 문어를 발견한다는 게 여간 힘들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문어를 찾기는 매우 쉽다. 왜냐하면 문어의 또 다른 특징은 호기심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문어는 ‘멍청한 피조물’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물속에 손을 집어넣으면, 그게 뭔가 궁금해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문어가 전혀 멍청하지 않으며, 문어의 호기심도 지능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문어가 얼마나 지능적이고, 그 지능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의 뇌(腦) 크기는 앵무새와 막상막하이며, 뉴런의 2/3가 뇌가 아니라 팔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문어의 팔이 부분적 자율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뇌는 팔에 간단한 신호를 보내 특정한 과업 수행을 명령하지만, 명령을 접수한 팔 자체가 지능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세부 사항은 스스로 알아서 결정한다. 즉 문어는 우리와 달리 분산 지능(distributed intelligence)을 갖고 있으며, 그들의 지능은 우리와 완전히 별도로 진화했다. 왜냐하면 뇌가 없을 것으로 확실시되는 우리의 공통 조상은 캄브리아기 폭발 이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외계 지능(alien intelligence)에 가장 근접할 것이다. 그럼에도 콕스는 문어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이질적인 동물을 흥미롭고, 매력적이고, 개성 있다고 생각한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손으로 만질 수 있었던 그들과의 다이빙 경험은 감동적이었다.
팔이 여덟 개 달린 조그맣고 다채로운 존재에게 다가갈 때, 콕스는 자신도 모르게 가드를 올렸다. 왜냐하면 문어가 먼저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가 내친김에 복싱 자세를 취하자, 문어는 여섯 개의 팔로 버티고 뒤로 물러서며 다른 두 팔로 그 모습을 그대로 흉내 냈다. 그건 문어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문어는 학습하고, 흉내 내고, 사람에 대한 호불호를 분명히 하기로 유명하다. 우리는 동물을 지나치게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게 이상하게 생긴 동물은 의인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콕스가 보기에, 문어는 놀기 좋아하고 탐구심이 강하고 지능이 뛰어난 게 분명한 것 같다.
이렇듯 지능적 생물의 특성인 ‘유희’를 즐길 줄 아는 문어는 그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알려져왔다. 문어의 서식지는 해조류가 자라는 암초 지대로, 주로 작은 바위틈의 돌밭이나 동굴에서 혼자 숨어 사는 줄 알았다. 짝짓기하거나 사냥할 때를 제외하곤 집 밖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문어의 학명 옥토푸스 테트리쿠스(Octopus tetricus)에서도 그들의 생활에 대한 인식을 짐작할 수 있다. 테트리쿠스(tetricus)는 우울하고 외롭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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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서로 엉겨 붙어 장난치는 문어 (오른쪽) 문어는 잠수부들의 운동을 잘 흉내 내기로 유명하다. |
그런데 2017년 9월 14일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의 생물학자 스테파니 챈슬러 박사가 ‘문어는 사회성을 갖고 집단생활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과학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그가 해저의 한 동굴에서 발견한 15마리의 문어는 힘을 모아 자신들의 영역을 지켜나갔다. 천적인 수염상어의 위협에도 만반의 대비를 했다. 놀라운 사실은 문어들이 이렇게 무리 지어 생활할 때는 수염상어 때문에 떨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누구 하나라도 다칠까 봐 서로가 서로를 방어해주며 친밀감을 보였다.
챈슬러 교수는 여러 마리의 문어가 어울려 장난치거나 싸우고 화합하는 생활 속에서 자기들만의 사회성을 쑥쑥 키워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결국 문어들이 집단생활을 하는 이유도 수염상어의 공격으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면서 살아남기 위함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문어는 더 이상 ‘외로운 동물’이 아니다. 교수 팀은 사투 끝에 사회성을 가진 문어의 집단생활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해 언론과 학계에 공개했다. 교수팀은 이 신비의 문어 공동체 장소를 ‘달콤한 옥타틀란티스(mellifluous Octatlantis)’라고 명명하고, 국제 학술지 『해양 및 담수 행동과 생리학』에 관련 논문을 게재했다. 앞으로 더 많은 동물학자의 연구를 통해 문어의 집단생활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면, 정설처럼 굳어진 문어의 ‘외톨이 생태계론’이 바뀔 것으로 보인다.
○ 참고
1. 브라이언 콕스, 『경이로운 생명』, 지오북, p. 210~211
양병찬│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진로를 바꿔 중앙대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활동하며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과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의 지식리포터 및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소개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로는 『자연의 발명』, 『매혹하는 식물의 뇌』, 『물고기는 알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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