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발자국,
생태 발자국

우리 가족은 장작 난로로 난방을 한다. 그러면 대부분 ‘요즘 세상에 장작으로 난방을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 하는 반응이다. 요즘처럼 편한 세상에 시골에서도 다들 기름으로 난방을 하는데 누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며, 왜 힘들게 나무를 패는가 의아해한다.
하지만 스페인 고산에서는 가까운 숲에서 나무를 해 장작을 때는 일이 가장 저렴하고 합리적이다. 이 고산에 나지도 않는 석유 기름을 가져와 난방을 하는 일이 터무니없는 일처럼 생각된다. 저 먼 중동의 나라에서 누군가가 땀 흘려 석유를 굴착하고 추출 정제해 송유관을 통해 여러 나라에 배분하는 일은 어마어마한 과정을 거친다. 차라리 가까운 곳에서 우리가 쓸 것은 구할 수 있는 선에서 자급자족하는 일이 더 낫겠다고 처음부터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 가족은 태양광 대체에너지로 전기를 공급하고,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하며, 나무 땔감으로 난방을 하게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다. 하지만 우리도 이 지구 생태계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기에 그 한 부분이 되어 최소한의 피해는 주지 말자고 소소한 실천을 하며 생활하게 되었다. 낯선 것도 언젠가는 익숙해지듯이 불편한 것도 적응하면 언젠가는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월동준비로 장작을 하는 일이 일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남편은 틈만 나면 근처 숲 속의 말라버린 나무를 베러 간다. 어떤 날은 아이들도 같이 가고, 어떤 날은 불쏘시개만 찾으러 숲에 들어가기도 한다. 우리가 아이들과 숲에서 보내는 시간은 자연과 함께하는 산교육의 장이며, 집안일에 동참, 분담하는 삶의 현장이기도 하다.
숲 속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나무 부딪치는 소리, 평화로운 자연의 울림에 귀 기울이는 일상이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느끼는 감정을 말하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한다. 인간이 숲에서 느끼는 감정, 그 속에서 솟아나는 아이들의 상상 세계. 잣을 먹는 잣새에서부터 낙뢰에 타버린 나무까지 아이들은 숲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가끔 이런 풍경 속에서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아이들이 숲으로 들어가면서 생기는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면서 무엇을 배울까? 숲이 있어 자라나는 아이들, 숲이 주는 위안과 삶은 미래에도 존재할까?
‘오래된 미래’의 왕국, 인도의 라다크(Ladakh)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아직도 문명의 이기가 닿지 않은 사람 풍경을 만났던 10년 전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내 생활 철학에 큰 영향을 준 한 풍경이기도 하다.
나는 이방인이 되어 그들의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때 내 눈에 참 신기하게 보였던 것은 그들의 전통 의상도 아니고, 특이한 건축 양식도 아니었다. 그저 머리 감은 라다크 여인들이 쨍쨍한 햇볕 아래 앉아 머리를 말리는 모습이었다.
분명 어디에서 본 듯한 장면인데, 전혀 내 일상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기도 했다. 신윤복의 화폭에서나 봄직한 여인네가 머리를 풀고, 한국을 떠나 먼 티베트까지 와 있는 느낌이었다. 햇볕에 치렁치렁한 머리가 반사되었고, 그 풍경 앞에는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머리카락도 평화롭게 환한 햇볕 속에 있었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경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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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의 자연에서 살아가는 ‘참나무집’ 가족은 숲에서 장작을 해 난방을 한다. 산드라, 누리아, 사라, 세 딸도 솔방울 불쏘시개를 찾는 등 집안일을 분담하며 자연에서 삶을 배우고 있다. 부모는 아이들의 삶 속에서 미래의 모습을 본다. 이 아이들이 남기는 발자국이 자신들에게서 이어져갔다는 생각으로 지구 환경에 대해 깊이 걱정하게 되고, 작은 실천까지 하게 되었다.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물려주기 위해 매년 나무를 심는다. 작고 소소한 실천이지만 큰 나비 효과로 아이들에게 되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
오늘은 장소가 전혀 다른 스페인 고산에서 난 그 라다크 여인처럼 머리를 풀고 태양 아래에 앉아 아이들과 젖은 머리를 말린다. 헤어드라이어에 익숙한 도시 생활은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이 현대 문명인 헤어드라이어의 에너지 소비량이 우리 집 태양광 축전지에서 만들어지는 에너지 양보다 많다. 어떤 헤어드라이어는 종류에 따라 3,000W까지도 간다. 헤어드라이어가 열풍을 만들어내는 데는 엄청난 전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무에서 유를 창조할 때 소비되는 에너지는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현대에 필수라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무리한 방법이기는 하나, 내 머리 하나 말리는 것에 그런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래를 향한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옴 마니 파드메 훔(Om Mani Padme Hum)!”
기도의 깃발인 ‘다르촉’의 만다라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바람의 말, ‘룽따(風馬)’! 그래서 그럴까, 이 에너지 불변 법칙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라다크 여인의 머리 말리기와 태양, 그녀의 만다라, 내 머리카락이 같은 공간에서 바람에 실려 다른 이에게 전해지는 듯도 하다. 나는 스페인 고산의 ‘오래된 미래’를 살고 있는 기분이다.
현대인은 에너지에 대해 무감각하다. 이제는 도시나 시골이나 도회지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전기에너지는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어떻게 우리에게 오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요술 램프의 지니처럼 소원을 이루게 하는 마술인 듯 당연하게 에너지를 다룬다. 이 에너지가 석탄층을 깨고 화력발전으로 만들어졌는지, 험한 산의 거대한 댐에서 나온 수력발전인지, 버섯구름을 상상하게 하는 원자력발전인지, 우린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매달 전기료만 내면 된다고 생각할 뿐이다.
인류 역사상 막강한 전기에너지가 만들어지면서 생활이 급속도로 변했다. 그만큼 지구 환경도 많이 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온난화는 말할 것도 없고, 밤과 낮이 바뀌는 생체 리듬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동물들의 순환에도 알게 모르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장작 땔감도 그다지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듯도 하다. 하지만 ‘인과응보’의 원리에 따라 우리가 쓴 자연 일부를 돌려주고자 쓴 만큼 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연에 채워놓자고 실천하며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불쏘시개인 솔방울을 찾아 한 걸음씩 발자국을 남기는 모습에서 미래의 이들에게 전해줘야 할 지속 가능한 세상에 대해 생각해본다. 자연에 산다는 의미는 세상과의 고립이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의 이기를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동참하는 의미로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중해 쓴다면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나무를 심는다. 어쩌면 숲에서 얻은 장작 덕분에 미안하고도 고마운 마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과정이 좋다. 인위적이랄 수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이 세상과 마무리할 때 엄청나게 큰 빚을 진 것 같기도 하다. 나무도 그런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이 평생 마신 이산화탄소를 탄소로 저장해 불에 태워질 때 다 내보낸다고. 질량 불변의 법칙과도 같은….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은 인간이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의식주 등을 제공하기 위한 자원의 생산과 폐기에 드는 비용을 토지로 환산한 지수를 말한다고 한다. 인간이 자연에 남긴 영향을 발자국으로 표현했는데, 우리가 쓴 만큼 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환산해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위해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지표이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 가족은 가끔 이런 균형적인 자연 상태를 위해 나무를 심는다. 어떻게 보면 너무 소소한 방식일 수도 있지만, 내가 오늘 자동차를 탔으면, 내일은 자전거를 타고, 내가 오늘 나무를 베었다면 내일은 나무를 심는 지속성으로 이를 유지하려는 우리만의 실천이다.
현대는 문명적 이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필연성으로 유지되고 있다. 편리하고도 좋은 시스템을 사용하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각자 있는 자리에서 한 번은 작은 실천을 하며 미래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지구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플라스틱 용품을 적게 사용하고, 재활용 가능한 물건을 우선시하며, 일회용은 거부하고, 소(小)포장보다는 대(大)포장을, 전기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밤에는 소등해 야생동물의 세계를 침해하지 않는 그런 배려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미래의 아이들도 숲에서 세상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아이들이 남기는 발자국, 우리 어른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것, 한 번쯤 깊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김산들│스페인에서 언어와 도자기를 공부했다. 스페인 관련 블로그(www.spainmusa.com)를 운영하면서 여러 방송 매체에 스페인 정보를 제공, KBS 다큐 [공감], [인간극장], EBS 세계견문록 [스페인 맛에 빠지다] 등에 출연했다. 현재 해발 1,200m 스페인 고산평야에서 친자연적인 삶을 살면서 한국과 스페인의 일상과 문화를 글로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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