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과 열정이 만든 터닝포인트|나의 불교 이야기

좌절과 열정이 만든
터닝포인트

박웅철
한의사


부처님과 나의 여정
부처님의 삶은 단순한 전환점이 아니라, 한 인간이 진리와 해탈을 향해 나아간 위대한 서사였다. 그는 왕자로서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지만, 생로병사의 고통을 직면한 후 출가를 결심했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중생을 위한 실천적 선언이었다.

나의 터닝포인트는 붓다의 그것과 같지 않았다. 나는 위대한 결단을 내린 것도, 세상을 떠나 진리를 구한 것도 아니었다. 나의 시작은 삶의 절망 속에서 움튼 조용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내게 출가는 단번의 거대한 전환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서서히 조율되고 확장된 길이었다. 그 길은 항상 명확하거나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다. 결국, 그 작은 걸음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불교와의 만남
1978년 3월 18일, 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강원도 태백산 덕원사에서 무장 스님을 만났을 때, 나는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스님께서는 나에게 ‘청우(靑宇)’라는 법명을 내려주시며,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셨다.

당시의 나는 출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불교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덕원사에서 수행을 시작하면서 이 길이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과정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후 상주 원적사에서 서암 종정을 모시고 본격적인 행자 생활을 시작했고, 1979년 부산 범어사에서 사미계를 받으며 ‘혜강(慧剛)’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 법명은 앞으로의 길이 단순한 수행이 아니라, 단단한 내면을 요구하는 길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수행의 시간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본질을 바라보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과정이었다. 백일기도를 마친 후,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왔다. 은사 성진 스님이 환속하시면서, 나는 새로운 스승을 찾아야 했다.

1980년, 정암사 주지였던 등각 스님의 소개로 쌍계사의 고산 스님을 은사로 모셨고, ‘현능(玄能)’이라는 새로운 법명을 받았다. 이후 쌍계사와 혜원정사에서 경전을 읽고, 참선을 수행하며, 사찰의 일상을 함께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삶을 살았다.

수행과 학문의 길
1981년, 해인사 강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승(學僧)의 길을 걸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기도하고, 수십 번 경전을 외우고, 수행을 반복하는 혹독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반복 속에서, 나는 점차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갔다.

1983년, 또 다른 전환점이 찾아왔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선학과에 입학하면서, 나는 학문과 실천을 병행하는 길을 선택했다. 대학 시절, 한국 사회는 격동의 시기였다. 나는 학생운동을 경험하며, 불교가 단순한 개인 수행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가르침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사천왕사에서의 도전
사천왕사는 나에게 또 다른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6년간 어린이와 대중을 위한 포교 활동에 매진했다. 특히 세 곳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운영하며 450여 명의 원생을 돌보았고, 화엄불교학교를 열어 12기까지 배출했다.

이 시기는 불법을 대중과 함께 나누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이때, 불교란 단지 개인의 수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호흡하고 대중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새로운 도전
1995년,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의 삶은 또 다른 수행과 같았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과 대면해야 했다. 미국 사회는 자본주의적 가치와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곳이었지만, 나는 이곳에서도 생활불교, 인간불교, 대중불교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며, 시대에 맞는 실천적 불자의 길을 모색했다.

환속 후, 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했다. 여러 직업을 경험하던 중, 동양의학과 불교를 접목하는 연구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나는 불교의 전통적인 심신 건강 개념과 동양의학의 치료 원리를 통합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불교의 명상과 기공 수련이 인체의 에너지 흐름, 경락 체계, 그리고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며, 불교 수행이 어떻게 한의학적 치료와 융합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2009년 뉴욕주에서 한의사 면허를 취득했고, 2016년에는 한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불교와 동양의학을 융합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현재 나는 New York College of Health Professions에서 부학장으로 일하며, 불교적 가치를 의료와 교육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여정
나는 이 모든 여정을 통해 한 가지 확신하게 되었다. 불교는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새롭게 발견되고 실천되는 가르침이라는 점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불교는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되고 실천될 필요가 있다.

해인사에서의 수행, 동국대 시절의 학문적 탐구, 사천왕사에서의 포교, 그리고 미국에서의 새로운 도전까지,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나는 매번 새로운 통찰을 얻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불교가 단순히 출가자의 수행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깨달음은 나를 자연스럽게 불교와 의학의 융합이라는 연구로 이끌었다. 나는 불교의 수행법, 특히 명상과 호흡법이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치유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전통적인 불교의 개념인 교학체계와 수행의 조화를 동양의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는 곧 몸과 마음의 균형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는 원리와 맞닿아 있다.

나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현대 의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정신적·심리적 질환, 만성 통증, 스트레스성 장애 등에 대해 불교적 수행과 동양의학이 함께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나의 목표는 단순히 치료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조율하며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나는 불교적 가치와 수행법을 보다 현대적인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단순한 이론적 강의가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불교의 지혜를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삶은 단 한 번의 위대한 결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매 순간의 선택과 실천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매일 새로운 터닝포인트를 맞이하며, 더욱 깊이 배우고 나아갈 것이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길 위에서 나는 계속 걸어갈 것이고,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며, 나누고 베풀며 살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더 나은 불자, 더 나은 인간, 그리고 더 나은 치유자로 성장하기 위해 나는 끝없이 정진할 것이다.


박웅철|의학과 영성을 아우르는 풍부한 전문 지식을 갖춘 뛰어난 교육자. 면허를 소지한 침구사이자 법사(法師)로, 해당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건강 전문가다. 뉴욕시 Tri-State College of Acupuncture에서 침구 및 한약학 석사 학위를,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Pacific College of Health and Science에서 중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New York College of Health Professions 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 맨해튼에서 Acupuncture Park Center를 운영하고 있다. 『A Clinical Manual of Herbal Medicine』, 『Classical Asian Herbal Therapy: Therapeutics for Conditions & Disorders』, 『Herbal Medicine Notebook』, 『Acupuncture Notebook』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댓글 쓰기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