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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구상나무, 93×59cm, 한지에 수묵담채, 2011 |
금년에 지리산 산청은 산불로 깊은 상처를 낳았고, 여름 홍수로 이재민은 아픔으로 남았다. 유사 이래 이러한 산불이 있었던가? 문헌상 신기록으로 남게 된 큰 재앙이었다.
근 한 달에 걸친 산불 진화로 수많은 인력과 장비가 밤낮으로 분주했으니 전쟁과 다름없었다. 나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붓을 드는 일로 <생사의 노래-불과 꽃>을 절박한 마음으로 그리고 화폭에 썼다.
다 타는 것이냐, 저 산이 품은 세월이
추억도 한순간, 백 년 숲이 재와 연기로
땅이 울부짖고 하늘도 붉게 흐느끼나니
눈물 속에 핀 꽃이여, 봄날이라고 말하지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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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연(蓮), 69×139cm, 한지에 수묵담채, 2014 |
이러구러 어느덧 망각의 시간이 흐른 것인가. 살아남은 나무는 단풍 들어 시들고, 거친 산에 잔설이 내린다. 저 검게 탄 나무에 폭설이 내리면 상처가 덮어질까. 새봄이 오면 새순이 나지 않을까 하며 위무와 기대를 저버릴 수 없다.
수년 전 지리산 천왕봉을 허위허위 오르다가 만난 구상나무는 한 줄기에 두 가지가 솟았는데 한 가지는 죽었으니 마치 ‘생사(生死)의 만남’으로 보였다. 또한 고사(枯死)한 고목 속에서 꽃이 피고 새와 곤충들의 둥지를 보며 ‘생사의 노래’를 들었다. 결국 생명은 죽음과 연결되고, 죽음은 또 새로운 생명의 터전을 보여주니 안팎이 하나인 것이다.
뜨락엔 한여름 무성한 잎을 드리우던 연꽃이 사라졌다. 씨방만 남은 터에 말라 꺾어진 연꽃대가 어지럽다. 하지만 마치 음표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생명을 다한 소멸의 노래가 주검을 위한 오케스트라처럼 장엄한 진혼곡으로 들려온다. 모든 것은 변하니 또 새날을 기약하라는 무언(無言)의 설법 같다. 자연의 순리요, 섭리임을 알아차리게 한다.
산다는 것은 죽음의 이치를 받아들일 때 모든 존재가 인연임을 믿는다. 저 뼈아픈 나무의 상처도, 무너져 내린 산의 형해(形骸)도 생사의 노래 속에 잠든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깨어나리라. 이른바 찬란하고 장엄한 매장(埋藏)문화도 죽음이 있기에 그날의 이야기가 전해오는 까닭이다.
『열반경』에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고(生者必滅)’, ‘만남은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會者定離)’이라고 한다. 생전의 법정 스님은 역설적으로 ‘죽음이 받쳐주어야 삶이 빛나는 법’이라고 했다. 이 모두 진리의 말씀이다.
뭇 생명과 삶의 완성은 목숨과 죽음의 미학 속에 존재한다. 다만 사라지는 것과 잊히지 않는 이야기가 남을 뿐이다. 이 모든 것에 분별없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이다.
이호신|화가. 자연생태와 문화유산을 생활산수로 그리고 있다. 개인전 30회를 개최했고, 여러 화문집을 냈으며, 영국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이화여대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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