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보다 안거
지난 긴 추석 연휴에 평창에서 진행된 티베트 불교 리트리트를 다녀왔다. 시작 당일까지도 바쁜 일에 매달려 마무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7박 8일 동안 일에서 해방되어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기뻤다. 우리가 머문 장소는 휘닉스 파크의 한 리조트였는데 넓은 홀과 채식 식당이 있어 함께 수련하기도 좋고 태기산의 자연 풍경은 산란한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가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리트리트는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자연 속에서 편안히 쉬면서 심신을 회복하겠다는 의도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예전 인도 다람살라나 미얀마 파욱센터에서 머물렀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와 명상을 하고 경전을 보면서 지낸 시간들이 힘들기도 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번 생에 이런 기회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때도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지 않았던가? 전 세계에서 수행을 위해 모여든 사람들과 일종의 연대감도 생겼고 수련하는 동안 평상시 알지 못했던 기쁨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번 평창에서도 마음이 조금씩 추슬러지고 단단한 기반 위에서 명상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조건 없는 무한한 마음
인간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때는 한없이 작아져 발 디딜 틈이 없고 또 어떤 때에는 행복에 넘쳐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어릴 적에 이 세상에 잘못 태어났다는 생각에 빠진 적이 있다. 난 어딘가 완벽한 곳에 있다가 뭔가를 잃어버리고 지구로 떨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최근 유행했던 노래 가사처럼 별이 아니라 반딧불처럼 추락해버린 것이다. 시골의 어른들은 전부 일하러 밖에 나가고 없고 어린 나는 골목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오래된 우물가에 앉아서 슬픔에 빠져 있었다. 죽을 때까지 일하고 목숨을 부지하며 사는 일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일까? 이런 존재에 대한 물음은 대학 시절 불교나 요가 공부로 이어졌다. 한 줄기 빛이 나를 인도하기를 바라면서 스승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국내외를 돌아다니면서 각자의 길을 가는 도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련을 반복하면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인간이 원래 가지고 있는 무량한 마음이다. 이성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인데 우리에게는 엄청난 행운일 것이다. 바로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하는 자(慈), 비(悲), 희(喜), 사(捨)가 그것이다. 모든 생명을 위해 행복과 연민과 기쁨 그리고 평정심을 기원하는 것은 개인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린 살아가면서 이런 보물을 점점 잃어버리고 내 속에 갇혀 고통을 배가시킨다. 이번 리트리트 동안 매번 사무량심의 첫 구절인 “일체중생…” 이런 말이 나오면 마음이 울컥했다.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와 산책하면서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이제껏 보던 모습과는 다르게 그들이 행복을 간절히 원하며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서 그들 속에 있는 무량한 마음이 세상에 활짝 드러나기를 기도했다.
산책과 명상
수행이란 꽉 짜인 마음에 틈을 내어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나 미래의 생각에 갇혀 살다 보면 창이 없는 감옥처럼 살아가게 된다. 불교 수행에서는 탈출구를 위한 여러 방편이 있다. 그중 하나는 ‘마음을 바꾸는 네 가지 생각’이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귀중한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음으로 불법을 공부할 수 있고 무상과 인연을 사유할 수 있고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면서도 동시에 기쁨을 주는 일이다.
수행처에 있을 때 산책하거나 가끔 뛰어보는 것이 훨씬 명상 효과를 높이는 것 같았다. 한국 사찰에서 명상할 때도 주변 산이나 호수를 산책하고 난 후에는 훨씬 유연한 마음으로 좌선을 할 수 있었다. 틱낫한 스님이나 남방불교에서도 ‘걷기 명상’을 자주 하는 것을 보았는데 인도의 고대 유적을 걷다 보면 낯선 사물이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았다. ‘삶에서 중요한 건 지금 바라고 있는 그것이 아니야. 지금 너무 세상을 한쪽으로만 보는 거 같은데 마음을 내려놓고 쉬는 게 어때?’라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이다. 두 발로 천천히 걸을 때는 열린 마음 상태가 되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불현듯 떠올리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과도 마주치면서 나누는 눈인사나 대화도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었다.
평창의 태기산에도 산책하기에 다양한 코스가 있어서 아침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걸었다. 비가 오든 상관없이 산줄기에 나 있는 산책 코스나 한적한 도로를 걸었는데 굉장한 활력을 주었다. 인도의 어느 마을에서는 수행자가 나타나면 주민들이 나와 꽃을 뿌리고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나도 함께 초대되었는데 야자수 잎에 싼 밥과 짜파티, 라씨(우유 요구르트)를 먹었다. 신기하게도 배탈이 씻은 듯 나았는데, 마을분들의 정성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기산 중턱에는 자작나무와 낙엽송이나 버섯 군락지가 있어서 홀로 가을을 만끽하며 성찰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때론 비탈길을 달리면서 리트리트 스케줄에 맞췄다.
마음 되찾기
지금은 예전의 불교 수행과 다르게 애써 멀리 가서 구하지 않으려고 한다. 평창 리트리트 마지막 날에 티베트 스님이 ‘우리는 이미 도달하고자 하는 그 자리에 있다’라고 하셨다. 우린 이미 그 자리에 있는데 단지 우리가 무지로 인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늘 함께하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짬이 없어 놓치기 쉽거나 때로는 너무 애를 쓰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명상을 반복하면 훨씬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 지금 여기에 안주할 수 있을 때 생각의 경계를 뛰어넘어 행복하고 평정한 마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마음 되찾기는 현실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은 도시계획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팀 작업이 많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수행의 힘이 발휘되는 것 같다. 기존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대처할 때 이전보다 어려운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었다. 사무량심(四無量心) 기도는 명상 수행의 출발점이자 마음을 되돌리는 강력한 힘이다. 인생에서 좋은 것이 있다면 여태 살아가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보고 미처 알지 못한 나를 만나는 것이다.
노병덕|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다(도시공학 박사). 대학 시절 불교를 접한 후 2000년 이후 요가와 불교 수행에 매진하다 현재는 일하면서 일상에서 명상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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