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효과적 이타주의가 고통에 응답하는 방식 『피터 싱어, 불교와 만나다』|이 책을 소개합니다

대원불교학술총서 『피터 싱어, 불교와 만나다』

자비와 효과적 이타주의가
고통에 응답하는 방식

정환희
『피터 싱어, 불교와 만나다』 번역자, 서원대학교 윤리교육과 조교수


피터 싱어·스자오후이 지음, 정환희 옮김, 도서출판 운주사 刊, 2025년


피터 싱어와 스자오후이 스님이 5년간 이메일로 나눈 

‘고통’이라는 보편적 주제에 대한 윤리적 대화

철학자와 비구니 스님, 공리주의와 불교, 이성과 자비. 얼핏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것처럼 보이는 두 전통의 만남이 가능할까? 『피터 싱어, 불교와 만나다』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서양의 대표적인 윤리 철학자 피터 싱어와 대만의 비구니이자 사회운동가인 스자오후이 스님이 5년간 이메일로 나눈 윤리적 대화를 담고 있다. 둘은 2016년 대만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처음 만나, 이후 철학과 신앙, 실천과 관점의 차이를 넘는 깊은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칫 철학적 논쟁이나 종교적 설득의 장으로 흐를 수도 있었지만, 이 책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윤리적 성찰을 가능케 한다. 중심에는 ‘고통’이라는 보편적인 주제가 있다. 고통은 특정 교리나 사상에 국한되지 않고, 살아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문제다. 그리고 싱어와 스자오후이는 각자의 전통에서 출발해, 이 고통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묻는다.

피터 싱어는 현대 공리주의의 대표자답게, 고통의 양을 줄이는 것을 윤리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그는 이성과 계산, 그리고 가능한 한 많은 존재의 행복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도덕을 사고한다.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도덕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효율적 이타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실질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기부와 사회적 참여를 강조한다. 그의 윤리는 차갑고 이성적이지만, 그 끝은 지극히 따뜻하다. 그것은 머리로 시작해, 결국 손과 발, 일상적 실천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반면 스자오후이 스님의 입장은 불교 전통의 자비와 연기, 업 사상에 기반한다. 그녀는 고통을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로 바라본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단순한 감정이나 연민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상호연관성을 바탕으로 타자의 고통에 반응하고, 불평등과 차별, 위계와 억압을 직시하는 실천적 감수성이다. 수행자라면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이처럼 싱어는 철저히 계산적이고 실용적인 윤리에서, 스자오후이는 관계적이고 수행 중심의 윤리에서 출발하지만, 두 사람은 놀라운 접점을 만들어낸다. 그 접점은 바로 ‘고통에 대한 응답’이라는 윤리적 요청이다. 싱어는 고통을 감지할 수 있는 존재라면 인간이든 동물이든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통해 종차별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인간의 이익을 중심으로 한 동물 착취 구조를 지적하고, 윤리적 공동체의 경계를 인간 바깥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자오후이 스님 역시 이 점에 깊이 공감하며, 불교의 자비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 안에서 인간과 동물, 생명과 자연은 본래 분리되지 않은 존재이며, 자비는 반드시 비인간 존재에게도 미쳐야 한다. 

이 책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두 사상가가 단순히 동의하는 부분만을 강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컨대 임신중절이나 배아 연구 같은 생명윤리 이슈에 대해 두 사람은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싱어는 배아가 일정 시점 이전에는 고통을 감지할 수 있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 생명을 중단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된다고 본다. 반면 스자오후이는 모든 생명은 연기의 흐름 안에 있으며, 존재 자체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불교적 관점에서 그 입장을 반대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상대를 무모하게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서로의 입장을 성실히 경청하고, 그 사유의 뿌리를 이해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중국어로는 『마음의 만남』, 영어로는 『불교도와 윤리학자』였다. 두 지성인의 수평적 대화를 강조한 명명이다. 그러나 국내 출판 현실을 고려해, 다소 일방적인 뉘앙스를 지닌 『피터 싱어, 불교와 만나다』라는 제목을 택하게 되었다. 많은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피터 싱어의 이름으로 처음 접하겠지만, 이 글을 읽는 『불교문화』 독자들만큼은 스자오후이 스님이 들려주는 윤리적 자비의 실천에 주목해주시길 바란다. 그녀의 목소리는,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불교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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