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나를 반기는 얼굴,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영월암|기도하기 좋은 절

언제나
나를 반기는 얼굴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 영월암


 


부처님의 몸은 온 세상에 다 함께하고 있고(佛身普遍十方中)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다 같이 묶여서 돌아간다(三世如來一切同) 

- 이천 영월암 대웅전 주련 중에서 


합장한 은행나무가 목격한 영월암의 시련  


녹음이 사그라들기 전, 햇빛을 한껏 머금고 피어나는 가을 꽃–단풍의 계절이 흘러간다. 

한 해를 잘 살았나 뒤돌아보기도 하고,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계획하기도 하는 12월에 기도하기 좋은 절로 소개하고자 하는 사찰은 경기도 이천시 설봉산의 영월암이다. 

천년고찰 영월암은 고즈넉하다. 조용히 묵언하며 암자를 지키는 650년 은행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고종 황제가 폐위되었을 때 고종 황제의 군대 일부가 설봉산으로 숨어들자 일본군 4개 대대가 쳐들어와 영월암과 주위의 민가들을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 아픔과 슬픔을 모두 바라보았을 은행나무. 고려 말 큰스님이었던 나옹선사가 절을 떠나며 꽂은 지팡이가 은행나무가 되었다는데, 비단 구한말뿐이랴. 600여 년 세월, 이 나라에 닥쳤던 수많은 파란을 목도하며 묵묵히 영월암을 지키는 자연이 만든 금강역사의 얼굴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련 속에 피어난 꽃은 더 아름답고, 향기롭다. 


 

묵언 속에 피어나는 돌부처님들의 미소  


불자들과 스님들의 불심으로 다시 중수하고, 오늘에 이르는 영월암. 이곳에 이천 사람들에게는 소원을 들어주는 얼굴들이 있다. 적광전에는 돌을 깎아 만든 석불 비로자나불, 화불전 지붕 아래에는 석불 석가모니불이 있다. 

특히 화불전(化佛殿) 한자가 눈에 들어온다.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는 전각. 영월암에 발 디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으니 함께 피안으로 가자는 자비의 마음이 느껴진다. 부처님들의 응원을 받으며 영월암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소원을 빌 때 잊지 말고 만나야 할 돌부처님이 한 분 더 계시다. 


 

고려 시대의 돌부처 – 영월암 마애여래입상 전설  


대웅전 뒤편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자연 암석 위에 부처님이 앉아계신다. 보물 제822호 영월암 마애여래입상이다. 높이 9.6m, 폭 3m 자연 암석 전체를 꽉 채워 다듬고 조각한 고려 시대 돌부처다. 손으로는 초전법륜을 상징하는 선법인을 하고, 얼굴은 두툼한 입술에, 넓적~한 코, 투박하면서도 익살스럽다. 어찌 보면 마음 좋은 옆집 아저씨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엄한 큰스님 같기도 하다. 이 마애여래입상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600여 년 전, 나옹선사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이곳에서 천도재를 지냈는데 구천에서 떠돌던 어머니가 49일 만에 극락왕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애여래불 앞에서 나옹선사는 큰스님이 아니라,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한 명의 자식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그 어머니는 극락에 닿았다. 

영월암 마애불 아래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면, 부처님의 자비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 

소박한 함박미소 영월암 마애여래불은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시치미 뚝 떼듯 익살스레 이천 시내를 한눈에 담고 있다.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언제든 반겨주마, 기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털어놓아도 좋다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원하옵나니 저희들이 세세생생 태어날 때에(願我世世生生處)

어느 때나 지혜에서 물러서지 않으며(常於般若不退轉)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같이 용맹스러운 지혜를 얻게 하시고(如彼本師勇猛智)

노사나 부처님같이 큰 깨달음의 과보를 얻게 하시고(如彼舍那大覺果)

문수보살같이 큰 지혜를 얻게 하시고(如彼文殊大智慧)

보현보살같이 넓고 큰 실천의 원력을 갖게 하시고(如彼普賢廣大行)

지장보살같이 중생구제를 위해 끝없이 몸을 나투게 하시고(如彼地藏無邊身)

관음보살같이 중생의 원을 따라 몸을 나투게 하시고(如彼觀音三二應)

시방세계 곳곳마다 몸을 나투지 않음이 없어(十方世界無不現)

모든 중생이 위없는 깨달음에 들게 하소서(普令衆生入無爲)

- 나옹선사(1320~1376) 발원문 중에서  



글|정진희 

방송작가, KBS <다큐온>, <다큐공감>, <체인지업 도시탈출>, EBS <요리비전>, <하나뿐인 지구>, <희망풍경>, MBC <다큐프라임>, JTBC <다큐플러스> 등에서 일했고, 책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을 출간했다. 

사진|마인드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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