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것의 기쁨|사유와 성찰

감사하는 것의 기쁨

제이 L. 가필드
스미스 칼리지 철학과 석좌교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무수한 인과 연에 의존해 발생
연기법은 불교의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교리이자, 부처님께서 다섯 제자들에게 설하신 첫 번째 법문에서 강조하신 가르침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무수한 인과 연에 의존해 발생한다. 질병이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거나, 탄소 배출이 지구 온난화를 일으킨다고 하거나, 돌이 날아와 창문을 깨뜨렸다고 할 경우 연기의 법칙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일견 명백한 사실들에 대해 논하며, 연기법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우리는 미혹되어 있다. 바이러스가 질병의 여러 원인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우리의 약해진 면역 체계, 바이러스 감염 경로였던 파티에 가기로 한 과거의 결정, 그리고 우리가 그 바이러스에 취약해지도록 만든 진화의 오랜 과정 또한 그 원인이다. 탄소 배출은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긴 하나, 탄소 연료 사용을 장려하고 보상하는 경제 체계, 이를 규제하기 어렵게 만드는 정치 체계, 그리고 미미하더라도 조금씩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개개인의 선택 역시도 그 원인이다. 심지어 돌조차도 스스로 날아온 것이 아니다. 깨지기 쉬운 유리의 성질, 돌을 던진 소년의 팔, 그리고 돌을 던지라고 부추긴 소년의 친구 등도 모두 원인이다.

우리는 원인 없이, 혹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불가피한 착각 속에서 행동
부처님의 요지는 인과 연의 그물망이 광대하고 복잡하며,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 원인과 비물리적 원인을 비롯해, 과거뿐만 아니라 현시점의 원인도 포함한다. 비록 어떤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인과 연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그 무한한 그물망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음을 상기하며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연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으니, 바로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자신과 여타 인간들이 자유롭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른 모든 동물이나 무정물과 마찬가지로 인과 연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원인 없이, 혹은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불가피한 착각 속에서 행동하곤 한다. 우리가 대부분의 경우 그렇듯이,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의 행동을 이런 식으로 이해할 때 연기의 법칙을 간과하게 된다.

연기의 법칙을 망각하면 우리는 스스로의 성과에 지나치게 도취될 수 있어
이때 우리 행동이 의도로부터 비롯되고, 그 의도는 다시 우리의 믿음과 욕망, 지각과 감정 상태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잊는다. 이것들 역시 우리가 읽은 책, 우리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 우리를 지도한 선생님들, 우리가 먹은 음식, 우리가 지각한 사물들, 우리가 느낀 고통 등을 원인으로 삼으며, 그것들 또한 무수한 다른 인과 연을 원인으로 삼는다.

이 점을 직시한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란 없다는 사실에 낙담하게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유익할 수도, 큰 기쁨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중심적인 감정인 자만심을 감사함이라는 건강한 감정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연기의 법칙을 망각하면 우리는 스스로의 성과에 지나치게 도취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시합에서 이겼다,’ ‘내가 어려운 시험 문제의 답을 알았다,’ ‘내가 그 집을 지었다,’ 혹은 ‘내가 그 책을 썼다’와 같이 생각할 때, 그 자부심은 일시적으로 기분 좋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를 이기적으로 보이게 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절시키고, 결국 사회적 관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해준 모든 것들을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들어, 타인의 친절을 인지함으로써 오는 행복을 차단해버린다.

우리 스스로 이루었다고 믿는 모든 것에는
사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어
내가 시합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더라도, 이는 나를 훈련장에 데려다준 부모님, 달리기를 가르쳐준 코치들, 격려해준 동료들, 만난 적조차 없지만 내 신발을 디자인한 기술자들, 머나먼 공장에서 그 신발을 제작한 인부들, 그리고 나를 건강하게 해준 음식을 기른 농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두가 힘을 합쳐 함께 시합에서 이긴 것이다. 내가 어려운 문제의 정답을 맞혔다 하더라도, 이는 그것을 가르쳐준 선생님과 내가 읽었던 책들 덕분이며, 그 책들은 또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배우고 다른 책들을 쓴 사람들이 집필한 것이다. 내 지식은 수많은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세운 학교에서 얻은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은 한때 나무였고, 그 종이를 생산하는 데에는 고된 노력이 들어갔다. 우리가 지은 집, 우리가 쓴 책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이루었다고 믿는 모든 것에는 사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심지어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녕에 기여하는 존재들에게까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우리를 타인과 단절시키지 않고 오히려 하나가 되게끔 한다. 다른 이들이 우리의 삶과 기쁨에 기여한 바를 인정하면, 인간관계와 상호 의존의 가치를 깨닫고 타인의 성취도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되어 행복의 원천이 더욱 풍성해진다. 이러한 행복은 이기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사회적이며,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지속 가능한 행복이다.

그러니 연기법을 결코 잊지 말고, 자신의 성취에 깃든 다른 이들의 공로를 인정하게 되면 자신의 공로만을 내세우는 것보다 훨씬 행복해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는 부처님의 가장 깊은 가르침 중 하나로서, 늘 염두에 두기는 어려우나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번역|조연우, 권건우


제이 L. 가필드(Jay L. Garfield)|피츠버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스미스 칼리지 철학과 석좌교수로 있다. 이 외에도 하버드 신학대학원 불교철학 객원교수, 멜버른대학교 철학과 교수, 인도 고등티베트연구 중앙연구소(Central Institute of Higher Tibetan Studies) 철학과 겸임교수, 본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Buddhist Ethics: A Philosophical Exploratio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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