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적게 먹을 때
더 잘 작동한다
정재훈 약사

적게 먹어야 건강하다
무엇을 먹어야 건강에 좋을까. 우리는 매일 이런 질문을 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답은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먹느냐’에 있다. 음식의 종류가 아니라 양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우리 몸은 적게 먹을 때 더 잘 작동한다.
소식은 건강에 중요하다. 르네상스 시대 부와 명성을 쌓았지만 건강을 잃을 뻔했던 알비제 코르나로는 소식의 효과를 몸소 체험하고 자신의 건강 비결에 대한 책을 썼다. 당시 효과적인 치료 약이 없었던 당뇨병에 걸린 코르나로는 칼로리를 제한하는 식으로 생활 습관을 바꾸는 데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적게 먹어야 건강하다는 사실을 설파했다. 최근에는 위고비와 같은 다이어트 신약을 통해 소식의 중요성이 더 확실히 밝혀지고 있다.
과식으로 에너지가 넘쳐나면 우리 몸은 이런 상황을 주체하지 못한다. 염증은 늘어나고 통증에는 예민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와 달리 소식은 인체에 긍정적 신호를 준다. 들어오는 에너지가 모자라니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기존에 만들어낸 세포 내 구조물 중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부수고 재활용해 쓸모있는 것으로 바꾼다. 이른바 자가포식(autophagy)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운동을 하면 처음에는 몸 여기저기가 아프고 더 힘들지만 운동으로 적당한 자극을 받은 몸이 회복하면서 더 건강해지는 것처럼 소식도 우리 몸을 자극해 더 건강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일상에서 소식하려면 저탄수화물의 아침 식단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적게 먹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적게 먹으면서도 포만감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가야 일상생활에서 불편 없이 소식하는 습관을 유지할 수 있다. 무작정 굶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이미 치료 약을 복용하는 사람은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다. 이런 주의 사항을 염두에 두고 일상에서 소식하려면 아침 식단이 중요하다. 아침을 거르는 것보다는 단백질, 지방 위주로 소량을 먹는 게 좋다. 아침 식사를 아예 건너뛰면 공복이 길어지면서 점심 식후에 혈당이 불안정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내 경우는 매일 아침 그릭 요구르트 30g, 올리브유 한 스푼을 먹는다. 그릭 요구르트 대신 삶은 달걀 2개 또는 두부 반 모를 먹기도 한다. 아침에는 간에 저장해둔 탄수화물이 거의 소진된 상태이므로 이렇게 단백질, 지방 위주로 소량을 먹고 나서도 인체가 사용할 당이 부족하다. 이에 적응하려면 몸은 저장해둔 지방을 꺼내 쓰게 된다. 실제로 2023년 7월 캐나다 연구에서 121명의 2형 당뇨병 여성을 대상으로 12주 동안 저탄수화물(탄수화물 8g, 지방 37g)과 저지방 식단(탄수화물 56g, 지방 15g)을 비교한 결과 아침에 저탄수화물 식단을 유지한 쪽이 하루 중 혈당 변화의 폭이 작고 정상 범위에 드는 시간이 더 길었다. 단백질은 저탄수화물 식단 25g, 저지방 식단 20g으로 비슷한 수준이었고 총열량도 거의 동일했다. 이 연구는 설문 조사 방식 대신 참가자들에게 24시간 연속 당 측정기를 착용하는 식으로 진행한 것이어서 신빙성이 크다. 아침에는 두부에 간장과 들기름을 약간 더해 먹는 게 평상시처럼 밥과 반찬을 먹는 것보다 포만감을 늘리고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단 얘기다. 점심, 저녁에는 골고루 먹되 과식하지 않는 정도로도 충분하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 단백질, 지방이 풍부한 견과류, 생선, 육류, 두부와 같은 음식을 곡물 음식보다 식사 앞부분에 먼저 먹는 것도 포만감을 더 길게 하면서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좋다.
적은 양이지만 균형 잡힌 식사로 만족하면서 몸을 더 움직이자
일상에서 소식을 실천하는 것은 나의 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구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지구는 70억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신음하고 있다. 지구 온실가스의 30%가 식품 생산으로 인해 발생한다. 사람이 먹기 위한 가축을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그중 절반을 차지한다. 뭘 더 먹으면 나에게 좋을까 욕심낼 때가 아니다. 과식을 피하고 적은 양이지만 균형 잡힌 식사로 만족하면서 몸을 더 움직이자. 간단하지만 건강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일도 없다.
정재훈|약사, 푸드라이터. 글, 방송을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며 건강에 대한 잘못된 속설이나 오해를 파헤치고 진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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