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여행에서
지금으로 돌아오기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시간 여행, 생각 여행에서 돌아오라
시간이라는 환상에 끌려가지 말라. 시간은 오로지 생각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다. 생각이 없으면 시간이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할 수 있는가? 없다.
당신이 지금 여기라는 온전한 실재에 있을 때, 거기에 시간은 없다. 생각도 없다. 그러나 생각하고 있을 때, 그때 당신은 시간 속에서 헤매고 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 순간, 여기가 아닌 어떤 다른 공간 속을 헤매느라 ‘지금 여기’라는 유일한 진실을 놓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현주소다. 우리가 매 순간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시간 여행! 생각 여행!
어떻게 하면 될까? 바로 지금 여기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임을 기억하라. 다른 시공은 필요할 때만 잠깐씩 가져다 쓸 뿐, 힘이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매 순간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를 기웃거리느라 지금 여기를 놓치지 말라.
지금 여기에 굳건히 선 채, 꼭 필요할 때만 가볍게 과거나 미래를 가져다 쓰고, 쓴 뒤에는 다시금 지금 여기로 돌아오라. 지금 여기라는 중심에서 잠깐씩 생각과 시간을 써먹기만 하라. 바로 그때, 당신은 진실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지금에 서서 과거와 미래를 여행할 뿐
정해진 ‘나’라는 것은 없다. 다만 인연 따라 내 몸도 마음도, 이 몸과 마음이 겪는 다양한 일들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실체가 없다. 무아(無我)다. 그럼에도 생각과 기억은 시간을 더듬으며, 지나온 모든 과거의 경험들을 모아놓고 그것이 바로 ‘나’라고 여긴다. 나의 정체성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아상이고 에고다.
그런 사람은 과거에 자신이 잘한 것을 떠올리며,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혹은 과거에 잘못한 것을 떠올리며 자신을 죄인이라고 여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곧장 나라는 거짓된 허상, 아상, 에고, 정체성에 갇히게 된다. 헛된 망상에 구속되는 것이다.
그 과거는 ‘나’도 아니고, ‘내 것’도 아니다. 지난 과거의 잘못이나 잘한 일을 ‘내 것’이라고 여길 때, 우리는 시간과 기억이라는 허망한 생각에 휘둘리면서 허상을 좇는 것이 된다. 그 지난 과거를 ‘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 과거의 잘못이나 잘한 일은 그저 기억일 뿐이고, 생각일 뿐이다. 시간이라는 환상이 가져다주는 가짜에 속고 있는 것이다.
참된 나는 그 과거를 살고 있지 않으며, 다만 지금 이렇게 있을 뿐이다. 지금 여기는 그때의 거기가 아니다. 과거의 그곳이나, 그곳에서 일어난 일 따위는 ‘지금의 여기’가 아니다. 진실, 실재, 참된 실상은 오로지 기억이나 생각, 과거나 죄의식이 아닌, 오로지 지금 이것일 뿐이다. 그러니 지금 여기라는 진실에 뿌리내린 채, 필요할 때만 잠깐씩 과거를 써먹을 뿐, 과거에게 ‘나’의 주인 자리를 내주지는 말라. 그 과거는 나가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참된 나다. 이것도 군더더기 말이지만.
만약에 당신이 지난 과거의 실수, 잘못을 돌이켜보면서, 지금이라는 현재에는 더 이상 실수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며, 과거의 실수를 통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과거를 필요에 따라 잠깐 써먹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된 행동에 죄책감을 여전히 지금도 느끼면서, 죄의 과보를 받을 것이라는 괴로움에 시달릴 때, 당신은 과거를 ‘나’라고 여기면서, 과거에 지배당하게 된다.
이것을 기억하라. 과거는 진실이 아니니, 필요할 때만 잠깐 써먹으면 그뿐이다. 과거, 생각, 기억이 아닌 ‘지금’만이 온전한 진실이다.
지금이라는 베이스캠프
시간 속에 빠져 있는 한 당신은 진실과 멀어져 있다. 과거의 어느 때를 떠올리거나, 미래의 어느 순간을 추구하거나, 혹은 생각 속에 빠져 있는 동안 당신은 진정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진짜의 삶이 아닌, 시간과 생각이 만들어낸 거짓된 삶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도 환상이고, 과거도 미래도 환상이며, 생각도 환상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각한 뒤에는, 그 허망한 환상에 머물지 않고, 당장에 지금 여기라는 진실에 머무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다. 끊임없이 생각은 온갖 이야기를 펼쳐낼 것이며, 생각은 과거나 미래로 떠나는 여행을 좀처럼 멈추지 못할 것이다. 사실 그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생각이 허망하다는 자각을 한 뒤에, 필요에 따라 잠깐씩 그 생각의 여행을 써먹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진실만 놓치지 말라. 과거나 미래, 생각은 허상이며, 참된 실상, 참된 진실은 오로지 지금 여기라는 점. 이 사실을 자각한다면, 당신은 점점 더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생각하는 시간이 아닌, 잠시 생각을 멈추고, 지금 여기 이 아무것도 아닌, 아무 느낌 없는 존재의 자각으로 자주 돌아오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만이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만이 존재이며, 지금만이 전부이다. 아니, 지금을 빼고 그 어떤 것이 진실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삶이란 아주 단순하다. 자주자주 진실과 접촉하라. 더 자주 거짓을 확인하고, 진실과 친밀해지라는 것이다. 지금에 존재하라. 그것은 너무 단순하다. 그냥 이렇게 있으면 되니까. 그저 이렇게 이대로 존재해주면 된다.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느낌과 함께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으라. 어떤 소리든 그 소리의 내용물에는 집착하지 않고, 그저 그 소리를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들으며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이것과 함께 그저 가만히 있어주면 된다.
지금으로 자주 여행을 떠나오라. 아니 사실은 지금에 멈춰 서서, 가끔씩 필요할 때만 생각으로의 여행,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을 의식적으로 잠깐씩 다녀오기만 하면 된다. 다만 과거나 미래에, 생각 속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믿지 않고, 속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환상임을 깨달으면 된다.
법상 스님|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다가 문득 발심해 불심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20여 년 군승으로 재직했으며, 온라인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www.moktaksori.kr)’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유튜브 ‘법상스님의 목탁소리’를 통해 16만 명의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고, 헬로붓다TV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상주 대원정사 주지, 목탁소리 지도법사를 맡고 있으며, 저서로 『보현행원품과 마음공부』, 『육조단경과 마음공부』, 『수심결과 마음공부』, 『도표로 읽는 불교교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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