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아름다움|정여울 작가의 이럴 땐 이 책을!

고통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아름다움

원영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장영희 『삶은 작은 것들로』, 박완서 『한 말씀만 하소서』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원영 지음, 불광출판사 刊, 2023


◦ 인간의 욕망을 날카롭게 풍자한 불교 속 이야기,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

수많은 고통의 늪을 통과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지만, 고통의 한가운데서도 빛을 찾는 것이 인생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나를 구원하는 빛’이 아니라 ‘나를 파괴하는 빛’에 일희일비하기도 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도 한다. 원영 스님의 『이제서야 이해되는 불교』를 읽으며 나는 이토록 인간의 욕망을 날카롭게 풍자한 이야기가 불교 속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한 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걷고 있다. 그런데 뒤에서 미친 코끼리가 나타나 그를 무섭게 쫓아온다. 정신없이 달아난다. 한참 뛰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어 등나무 덩굴을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간다. 우물 밑에는 독룡이 입을 딱 벌리고 있다. 등나무 덩굴을 붙잡고 버텨보려 하나 팔이 아파 죽을 것만 같다. 게다가 흰 쥐와 검은 쥐가 나타나 등나무 덩굴을 갉아먹고 있다. 팔은 아프고 덩굴은 간당간당하고 독룡은 입을 쩍 벌리고 있는데, 갑자기 달콤한 꿀 한 방울이 입 안으로 들어온다. 등나무 위 벌집에서 꿀이 떨어진 것이다. 이 사람은 절체절명의 처지를 잊고 꿀이 선물하는 황홀경에 빠져버린다.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잊어버린 채. 부처님은 인간의 일생을 이렇게 바라본 것이다.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인 줄도 모르고 자기 입 안에 떨어지는 꿀에 정신이 팔려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를 깨닫지 못하는 우리들. 그 유명한 『아함경』 속에 나오는 이야기다. 오래전 이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나는 절대 이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지’라고 결심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나도 이런 어른이 되어버리고야 말았구나’라는 깨달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이다. 쾌락에 눈멀지 말자. 작은 쾌락에 눈멀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절체절명의 과제를 잊어버리지 말자.


장영희 지음, 샘터 刊, 2024년


◦ 삶에서 무엇이 진짜 중한 것인지 깨닫게 하는 책,
『삶은 작은 것들로』

장영희의 『삶은 작은 것들로』를 읽으면 삶에서 무엇이 진짜 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장영희 선생의 글을 읽으면 ‘사랑’과 ‘희망’ 같은 평범한 단어들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찬란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다. 그녀의 글 속에서 ‘사랑’과 ‘희망’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기도 힘겨운 삶과 글쓰기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축이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순간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이유였고, 희망은 살아 있는 한 버려서는 안 될 삶의 자세였다. (…) 문학 작품 속 수많은 주인공의 승리와 투쟁을 배우고 가르치고 글로 써낸 선생의 글 속에서 우리는 오늘을 다시 살아낼 용기를, 끝내 슬픔과 고통을 이겨낼 강인한 의지를 배운다. 나는 그녀의 글쓰기를 통해 눈물은 세상의 슬픔을 정복할 수 없지만, 사랑은 세상의 슬픔을 끝내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박완서 지음, 세계사 刊, 2024년


◦ ‘삶’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분투했던 한 사람의 뼈아픈 기록,
『한 말씀만 하소서』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는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이 닥쳐올 때마다 꺼내 읽게 되는 책이다. 사랑하는 아들이 스물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매일매일 통곡을 삼키며 어떻게든 ‘삶’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분투했던 한 사람의 뼈아픈 기록이 마음을 울린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마음속에 드는 가장 괴로운 질문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왜 나일까? 왜 하필이면 나일까? 난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는데, 왜 이런 나에게 왜 이런 불행이 닥쳐왔을까라는 질문이 가슴을 할퀸다.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는 스물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바로 그 뼈아픈 질문과 사투를 벌이는 한 사람의 투쟁을 그려낸다. 이 책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아픔의 똑같음’ 때문이다.

수많은 명작과 베스트셀러를 탄생시킨 뛰어난 작가였지만, 슬퍼할 때는 우리 모두와 똑같이 으스러지고 부서지는 마음이 된다는 것을, 박완서 작가는 숨기지 않는다.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뛰어난 작가였지만 그런 사실도 아들의 죽음 앞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꾸밈없는 진솔함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딜 수 있겠느냐고. 박완서 작가는 그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도움의 손길을 느낀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감동한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인다. 아들의 죽음 뒤에 작가님은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내려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물론 남을 해친 적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모르고 잘못한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가 신에게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하필 변기 앞에 무릎 꿇은 자세로, 나는 그 정답에 머리 숙여 승복했다. 나중에 나의 간지(奸智)가 또다시 빠져나갈 구멍을 찾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은 그건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그리고 구원이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깊은 슬픔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주는 절절한 고백과 치유의 목소리가 오늘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도 결코 그 사람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삶을 생생하게 글로 기록하고 그의 모든 아름다움을 간직하려 하는 한. 사랑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떠나간 그 사람과 살아남은 우리를 연결하는 사랑과 기억의 고리는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하며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들과 함께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정여울|작가.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KBS <정여울의 도서관> 및 EBS <클래스e>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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