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에서 보는 욕망
정준영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욕망(欲望), 이것은 무엇을 하거나 가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욕망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마음일까 버려야 할 마음일까?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을 욕망이라 한다는 사전적 의미를 두고, 욕망의 다양성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초기 경전(Pāli-Nikāya)에서 붓다는 욕망이라는 의미로 다양한 빠알리(Pāli)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10여 가지가 넘는다. 초기 경전 안에서 욕망이라는 의미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은 ‘까마(kāma)’, ‘찬다(chanda)’, ‘라가(rāga, lobha)’, 그리고 ‘딴하(taṇhā)’이다. 본고는 이들 네 가지 용어에 집중해 욕망이라는 의미를 지닌 용어들이 불교 수행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 부정적으로 작용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불교 안에서 부정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는 ‘욕망(欲望)’이라는 단어가, 붓다가 담고자 했던 욕망의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기에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까마(kāma)라는 욕망
‘까마(kāma)’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 욕망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까마는 ‘바라다’라는 의미를 지닌 ‘kam’에서 파생된 명사로1) ‘바람’, ‘욕망’, ‘쾌락’, ‘탐욕’, ‘애욕’ 그리고 ‘성교(性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까마는 인간의 감각(感覺, sense)을 기본으로 하는 욕망을 대표한다. 『숫타니빠타(Sutta-nipāta)』의 「까마 숫따(Kāma sutta, 욕망경)」를 보면, ‘땅’, ‘금’, ‘소’, ‘말’, ‘노예’, ‘여자’ 등 ‘감각적 기쁨의 대상’을 욕망의 대상으로 설명한다.2) 이들은 대부분 매혹적이고, 유혹적이며, 마음을 이끌게 하는 외적 대상들이다. 물론 욕망은 인간 내면에 나타나는 심리적 상태를 말하며, 초기 불교는 외적 대상 혹은 이들로 인한 내면의 심리적 상태를 다루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욕망은 대부분이 윤리 등을 벗어나는 부정적 마음 상태로 이해한다. 이처럼 욕망이 해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내려놓거나 포기하기는 쉽지 않다.3) 욕망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괴로움을 멀리하고자 하는 경우에도 발생한다.
특히 감각적 욕망(kāma)은 불교 수행의 성장에 방해되는 ‘장애(障碍, nīvaraṇa)’와 ‘속박(Samyojana, 족쇄, 分結)’으로 나타난다. 장애는 사마타 수행(Samatha-bhāvanā, 止)을 통해 선정(禪定, jhāna)을 성취하는 데 방해가 되는 오장애(감각적 욕망, 혼침, 게으름, 들뜸과 후회, 의심)의 하나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고, 속박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Vipassanā-bhāvanā, 內觀)을 통해 성인(聖人, ariya-puggala)이 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수행자는 까마를 제거해야 선정에 들 수 있고, 까마로부터 완전히 풀려나야 성인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초기 불교 안에서 까마는 긍정적 의미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까마라는 감각적 욕망은 수행의 동력이 아닌 괴로움의 원인으로 제거해야만 한다.
찬다(chanda)라는 욕구
‘찬다(chanda)’4)는 ‘chanda/chad’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 ‘의욕’, ‘자극’, ‘의도’, ‘의지’, ‘욕망’, ‘집착’ 등의 의미를 지닌다. 찬다는 ‘행위를 하기 위한 의지’나 ‘행위를 하기 위한 욕구’ 등으로, 대상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또한 초기 경전에서 ‘까마’와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며, 함께 합성어를 만들어 장애의 요소로[kāma+chanda, 貪欲蓋]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까마는 욕망, 쾌락, 애욕 등을 나타내고, 찬다는 행위를 하기 위한 의욕이나 욕구를 나타낸다. 여기서 ‘의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욕망(kāma)’이나 뒤에 설명할 ‘탐욕(lobha, rāga)’과 구분되어야 한다. 초기 불교 안에서 ‘욕망’이나 ‘탐욕’은 이것저것에 집착해 매달리는 모든 것을 말하기에 언제나 불선하고 해롭지만 ‘의욕’은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의욕은 그 결과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상관없이 단지 하고자 하는 마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궁사가 활시위를 당겼을 때 무엇을 정확히 맞추고자 하는 욕구가 찬다이다. 만약 이 욕구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라면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불선한 의욕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정당한 스포츠 경기에서라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선한 의욕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욕은 다양한 변화가 가능하다. 다섯 가지 장애(五蓋)에서 나타나는 의욕은 까마(욕망)와 함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욕구를 말한다. 더 먹고, 더 즐기고, 더 소유하고 싶은 욕구인 것이다. 하지만 찬다는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찬다가 어떤 맥락에서 함께하느냐에 따라 선(kusala, 善)하게도 불선(akusala, 不善)하게도 진행될 수 있다. 찬다는 행위를 하고자 하는 의지의 특징을 지니고, 대상을 자세히 살피는 기능이 있으며, 대상을 필요로 할 때 힘을 가해 나타난다. 따라서 찬다를 선한 쪽으로 계발하고 발전시키면 불선한 것을 억누르고 제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5) 이것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한 의도(kusala chanda)이고 선한 것을 위한 의욕(dhammacchando)이다. 「짱기 숫따(Caṅkī sutta)」는 찬다를 통한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6) 수행자가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주의해 잘 들으면, 법(dhamma)을 마음에 지니고, 그 의미를 고찰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법을 좋아하고 찬다로 행하면, 노력해 진리를 성취하게 된다(saccānupatti). 이때의 찬다는 집중과 함께 ‘사여의족(四如意足, iddhi-pādā)’의 첫 번째 역할을 한다.7) 사여의족은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 bodhipakkhiya dhamma)’의 구성 요소로 깨달음으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8) 또한 찬다는 수행 과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앙굿따라니까야』는 모든 현상(法)의 근본이 되는 찬다(chanda, 의욕)를 기반으로 바른 수행이 진행된다고 설명한다.9) 수행자는 찬다를 시작으로 관찰 대상을 향해 ‘마나시까라(manasikāra, 作意)’라고 하는 ‘주의 기울임’을 실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시작으로 수행자는 ‘느낌(受)’을 응시할 수 있고, 느낌이 갈애(渴愛)로 발전하는 것을 방지하며, 또한 존재가 고통스럽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된다.10) 이처럼 선한 찬다로 시작된 수행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찬다라는 의욕(chanda)이 나타나지 않으면 노력을 만들어내기 어렵게 된다. 이처럼 찬다는 긍정적인 경우와 부정적인 경우 모두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찬다라는 욕구는 수행의 중요한 동력이 될 수도 있고 괴로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라가(rāga.lobha)라는 탐욕
라가(rāga)는 ‘채색하다’는 의미를 지닌 ‘raj’에서 파생된 명사로 ‘탐욕’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11) 라가는 로바(lobha)와 함께 동의어로 탐욕(貪)이라는 좀 더 강한 의미로 사용된다. 즉 강한 욕망으로 열망, 갈망, 집착, 이기적 욕망 등을 나타낸다. 동시에 라가(貪)는 성냄(dosa, 嗔), 어리석음(moha, 癡)과 더불어 세 가지의 번뇌인 삼독심(三毒心) 중의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앞서 설명한 찬다(chanda)와 라가(rāga)는 경전의 여러 곳에서 동의어처럼 사용되기도 하나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굳이 이들을 구분한다면 찬다(욕구)는 약한 집착을 지닌 상태를 말하고, 라가(탐욕)는 보다 격렬해진 욕망의 상태를 말한다.12) 그리고 찬다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욕망이라면 라가는 이미 소유한 것에 대한 집착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라가(탐욕)는 매우 강해 완전히 제거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라가를 포함하는 삼독심이 제거된 상태는 불교 수행의 최종점인 열반의 상태로 묘사되기도 한다. 붓다는 『상윳따니까야』를 통해 탐욕의 제거는 수행자를 열반으로 이끈다고 설명한다. “벗이여, 탐욕(rāga)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제거된 것을 열반(涅槃, nibbāna)이라고 부릅니다.”13) 즉 라가를 제거하는 것은 윤회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길이다.14)
이러한 라가의 제거를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 『앙굿따라니까야』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satta sambojjhaga)’를 갖춰 수행하는 것이 탐욕(lobha)을 정복하는 길이라고 설명한다.15) 라가(rāga, lobha)는 수행을 통해 제거해야 할 괴로움의 원인이다. 특히 수행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禪定]에 만약 라가가 붙는다면 이들도 제거해야만 한다. 이처럼 초기 불교 안에서 라가의 긍정적인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라가라는 탐욕은 수행의 동력이 아닌 괴로움의 원인으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딴하(taṇhā)라는 갈애
딴하(taṇhā, craving)는 ‘목마름’의 의미를 지닌 ‘tṛṣ’에서 파생된 명사로 ‘갈망’, ‘갈애’, ‘욕망’, ‘집착’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16) 또한 라가(rāga, 탐욕)와도 매우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초기 불교 안에서 갈애는 괴로움의 가장 커다란 원인 중에 하나이면서 동시에 윤회를 반복하게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연기법(paṭccasamuppāda)의 설명에 따르면, 접촉(觸, phassa)에 연해 느낌(受, vedanā)이 일어나고, 느낌에 연해 갈애(愛, taṇhā)가 일어나며, 갈애에 연해 취착(取, upādāna)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초기 불교는 윤회의 조건이 되는 딴하의 발생을 막고, 혹시 발생했다면 집착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딴하는 연기의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초기 불교 안에서 딴하는 기본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다.
붓다는 사성제(四聖諦)를 통해 진리를 설했다. 사성제의 집성제(集聖諦)는 고성제의 원인으로, 크게 세 가지 딴하를 설명한다. 이들은 1) [감각적] 욕망에 대한 딴하(欲愛, kāma taṇhā), 2) 생존에 대한 딴하(有愛, bhava taṇhā), 그리고 삶이 끝나길 바라는 3) 비존재의 딴하(無有愛, vibhava taṇhā)이다. 딴하가 없다면 괴로움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는 딴하의 제거를 통해 모든 괴로움을 정복하게 된다고 설명한다.17) 이처럼 딴하는 윤회를 지속하게 만들고, 괴로움의 원인이므로 제거되어야 한다. 하지만 『앙굿따라니까야』는 지금까지의 설명과는 또 다른 딴하의 역할을 설명한다.
“그는 딴하(갈애)에 의지해 딴하를 극복합니다. 이 몸은 딴하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딴하에 의지해 딴하를 극복해야만 합니다.”18)
상기 경전은 딴하(갈애)로 딴하를 제거한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 딴하는 딴하를 없애고 싶어 하는 수행자의 의욕이나 욕망을 나타낸다. 그리고 두 번째 딴하는 괴로움과 윤회의 원인이 되는 딴하이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딴하라는 욕망으로 보다 근원적인 딴하라는 욕망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마치 선(禪) 수행에서 ‘독으로 독을 제거한다’는 가르침처럼 딴하는 그 역할에 따라 긍정적 기능을 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딴하라는 갈애는 불교 안에서 제거해야 할 대상인 동시에, 제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동력이 된다.
초기 불교는 모든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각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욕망의 특성을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19)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업전선에서,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복지의 차원에서 그리고 불교 수행의 목표인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 욕망은 서원이나 노력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초기 불교는 욕망을 다양한 용어로 구분해 사용한다. 수행의 동력이 되는 욕망과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욕망은 다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욕망의 의미와 특징을 구분하기에 앞서, 그저 욕망을 부정적 의미로만 받아들이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욕망은 우리가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서원이나 노력이 될 수도 집착이 될 수도 있다.
<참고>
● 본 내용은 정준영의 『욕망, 삶의 동력인가 괴로움의 뿌리인가』, 『욕망의 다양한 의미』 운주사 2008의 내용을 축약 및 수정한 것이다.
1) PED : T. W. Rhys Davids and William, Stede. Pali-English Dictionary. Delhi : Motilal Banarsidass Pub, 1986. p.203.
2) Sn. v.768f. 3) Sn. v.772f. 4) PED. p.274. 5) MN II, p.11. 6) MN II, p.174.
7) DN III, p.77 ; MN II, p.11. 8) DN III, p.106. 9) AN IV, p.339. 10) Sn. v. 865.
11) PED. p.567. 12) SN V, p.92, p.127 ; SA III, p.263. 13) SN IV, p.251.
14) SN I, p.16 ; Sn. v.706 ; AN V, p.261. 15) AN I, p.64 ; SN V, p.87. 16) PED. p.294.
17) Dhp v.354. 18) AN II, p.146. 19) Sn. v.152 ; Dhp. v.359.
정준영|스리랑카 국립 켈라니아대학교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주제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명상학 전공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 다른 명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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