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에서 보는 욕망
- 진흙이 없으면 연꽃도 없다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과 교수
따스한 봄바람 막힘없어 (春風無隔意)
붉은 꽃 하얀 꽃 도처에 피어난다 (紅白各隨生)
이 이치를 누가 능히 알겠는가 (此理誰能知)
이 도리 안다면 도는 더욱 밝으리 (答來是道明)
- 만암 스님(1876~1957)
그대가 지혜와 자비를 갖춘 선의 스승이 되면 봄바람처럼 만나는 모든 이들을 깨달음으로 이끌고 꽃처럼 피어나게 할 것이다. 만약에 그대가 봄바람을 기다리는 나무가 된다면 그 마음은 어떠할까?
초기 불교 논사들은 왜 마음을 해체해 연구했을까?
『대승기신론』에는 ‘불교의 근원은 중생심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중생의 욕망이나 번뇌와 망상이 없으면 당연히 부처님의 가르침도 필요가 없다. 중생심이 있기에 팔만사천 법문과 많은 수행법이 있는 것이다.
욕망을 비롯한 번뇌심은 이미 2,600년 전 아비달마 불교의 스승들이 마음을 해체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명했다. 초기 불교 대표 논서인 『담마상가니』에 의하면 욕계, 색계, 무색계의 각각의 유익한 마음, 무익한 마음, 유익하지도 않고 무익하지도 않는 마음을 분석해 세세하게 분류했다. 큰 줄기로는 89가지 마음으로, 세밀하게는 21만 2,000가지 마음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마음은 찰나생, 찰나멸한다. 마음은 물질의 변화보다 16배나 빠르게 변화한다. 물질의 변화 1찰나가 75분의 1초라면 마음은 1초에 1만 2,000번이나 생멸한다는 것이다. 초기 불교 논사들은 왜 이렇게 마음을 해체해 연구했을까? 결론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후학들이 더 이상 쓸데없는 데에 천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도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깊게 분석적으로 재정립하는 불교학적으로 유의미한 부분이 많지만 철학적 사유에 치우쳐 현학적이게 되고, 수행과 대중과는 멀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0’인 마음을 챙기는 것이 선이며 그 마음을 챙기려면 훈련 필요
선의 교과서인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서는 ‘업은 어두운 무명이고, 참선은 밝은 지혜’라고 밝히고 있다. 업은 중생심이다. 중생심은 6근(안,이,비,설,신,의)이 6경(색,성,향,미,촉,법)을 만나 6식(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분별 작용을 한다. 예를 들어 눈이 대상을 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하는 마음을 내면, 대상에 대한 차별심이 일어나고, 그 차별심은 욕심으로 연결되며,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갖가지 번뇌심을 일으킨다. 결국 6식에서 일으키는 모든 생각들은 밝은 지혜가 아닌 어두운 무명 속에서 공전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7식의 말라식인 자의식에서 일어나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의 분별 의식들도 그러하고, 8식의 아뢰야식에 저장된 알음알이들 또한 분별 의식을 조장한다. 이 모든 분별심이 중생심이고 이 중생심은 어두운 무명으로 끝없는 12연기의 반복적 상황을 초래한다. 또한 이 분별 의식들의 크기는 서로 비례하고 반드시 어려움이나 고통을 불러온다. 좋아하는 마음을 +8만큼 일으키면, 싫어하는 마음도 –8만큼 생겨난다. 기뻐하는 마음을 +3만큼 일으키면, 슬픔이 –3만큼 생겨난다. 가장 작은 단위의 +0.1만큼이라도 생겨나면 –0.1이 반드시 생겨난다. 분별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전의 숫자 ‘0’인 제로(zero)의 마음이라야 욕심과 감정과 고집스러운 알음알이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0’인 그 마음이 나의 본심이며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행복하고, 자유로운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 늘 깨어 있는 삶이며 중도(中道)의 삶이다. 이 ‘0’인 마음을 챙기는 것이 선(禪)이다. 그 마음을 챙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마음 수행의 방법도 시대마다 끊임없이 발전
현대 물리학에서도 물질을 분석해 증명한 이론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를 하는 것처럼 대승불교의 출현으로 마음 수행의 방법도 시대마다 끊임없이 발전되었다.
철학은 사유를 중심으로 발전하지만 종교는 신심과 수증(修證)으로 발달한다. 수행은 신심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깊어진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선의 수행으로 들어가는 전제 조건으로 네 가지 신심을 들고 있다. 첫째는 진여가 세상의 근본이라는 믿음이다. 이 진여의 믿음은 조사선에서는 성(性, 불성, 자성, 본성)과 심(心)과 진인(眞人)으로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부처에게는 무한한 공덕이 있다는 믿음이다. 세 번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다. 네 번째는 승단은 스스로와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며 올바른 수행 방법을 알고 실천한다는 믿음이다.
이 자성에 대한 믿음과 불·법·승 삼보에 대한 믿음이 갖추어지면 비로소 수행의 문인 다섯 가지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 다섯 개의 문은 자신을 향상시키는 기본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시문(施門)이라 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정신적 자산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널리 베푸는 일이다. 베푸는 마음이 수행의 문에 들어가는 첫째의 문인 것이다. 두 번째는 계문(戒門)이다. 생명을 함부로 헤치지 말며, 도둑질하지 말며, 음란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여러 계율이다. 사람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덕율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인문(忍門)이다. 수행자는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당장 보복할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의 얽히는 인연을 짓지 않기 위해서이다. 네 번째는 진문(進門)이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옳은 일을 위해 결단과 용기를 발휘해야 하며, 끊어짐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의 네 가지 수행의 문은 다섯 번째 선(禪)의 문으로 들기 위한 예비의 문과도 같다. 선문(禪門)은 상념에 지각되는 일체의 특징(境界相)을 정지시키고, 원인과 계기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계의 변화(因緣生滅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본질의 통찰이다. 그침과 살핌의 방법으로 진여본성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쓸 때 지혜와 자비가 깃든다.
혜능과 마조, 임제·대혜 선사의 가르침 속 선의 핵심
선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혜능과 마조, 임제 선사 그리고 대혜 선사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육조혜능(638~713) 이전에는 진성(眞性)이 망상(妄想)에 가려져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조사선은 이미 깨달음은 갖추어져 있다는 시각에서부터 출발한다. 혜능 선사는 자성(自性)은 만법을 포함하고 있어서 모두 자성으로부터 생기고, 자성 속에서 만법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모든 존재는 자성 가운데 있고, 지혜 그 자체는 항상 밝기 때문에 바른 선지식을 만나 미망을 물리쳐버리면 자성 가운데 모든 존재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는 가르침이다. 혜능 선사는 성품(自性, 眞性, 佛性)을 보면 부처를 이룬다는 조사선의 길을 제시했다. 그 가르침은 마조 선사에 의해 심(心)으로 표현되어졌고, 그 심은 인연에 따라 변화하는 마음 그 자체로 ‘마음이 부처이다’, ‘평상심이 도(道)이다’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의 조사선이 성립되었다. ‘각자 자신의 마음이 부처임을 믿도록 하라.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법을 구하는 자라면 응당 구하는 것이 없어야 하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으며,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삼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며, 삼라만상이 한 법에서 나온 것이다. 도는 닦는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말라. 평상심이 도이다. 무엇을 평상심이라고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고, 단상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다.’
임제 선사는 그 평상심을 무위진인(無位眞人)의 도로 완성했다. 불성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살아 움직이고 지각하고 인식하는 우리 안에 있다. 임제선은 지금 바로 눈앞에서 법문을 듣고 있는, 듣고 말할 줄 아는 바로 그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다시 말해서 부처란 바로 면전에서 법을 듣는 이 사람이고, 깨달음이란 바로 이 사람을 깨닫는 것이다. 근원자인 마음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설법을 듣고 있는 참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선은 인간 그 자체를 부처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욕망을 가진 인간이 영위하는 우리의 삶 그 자체가 부처의 삶이며,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 그 자체가 불국토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선이란 도를 만들어가는 일이 아니라 중생의 전도된 견해를 교정하는 일이다.
대혜 선사의 간화선은 조사선의 핵심 가르침을 잘 간직하고 있다. 수행자 스스로가 본래 부처임을 확인하기 위해 선문답을 통해 깨달음의 증득 과정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즉 ‘화두를 간(看)해 본래 성품 자리를 바로 보는 선법’이다. 조사들 마음의 본래면목을 바로 보였던 생각 이전의 말씀을 화두라는 형태로 잘 정형화해서 이 화두를 통해 지금 이 자리에서 마음을 깨치게 하는 수행법이다.
2,600년 전 사람들의 욕망이나 현대인들의 욕망의 근원은 같지만 욕망이 과학을 만나 극대화되었다. 그로 인한 환경 파괴와 인간성 파괴와 전쟁의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인류는 모든 분야에서 위기의 시대가 되었다. 회복의 길은 인간 본성의 참된 성품을 회복하는 참선 수행의 밝은 길이다. 선불교에서 소환한 깨달음의 일성을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기이하고 기이하구나.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여래와 같은 지혜와 덕성이 있건만
분별 망상과 집착으로 인해 알지 못하고 있구나.
(奇哉奇哉, 普觀一切衆生 具有如來智慧德相)
- 『화엄경』 「정행품」
금강 스님|대흥사 지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중앙승가대학교, 백양사 운문선원에서 공부했고, 원광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황사 주지를 맡아 ‘세상과 호흡하는 산중 사찰의 전형’을 만들었다. 현재 중앙승가대 불교학과 교수,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위원장, 고불총림연구원 원장으로 있으며 안성 참선마을에서 수행 지도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물 흐르고 꽃은 피네』, 『참사람의 향기 운영 매뉴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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