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시대, 불교는?
정상교
금강대학교 불교인문학과 교수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한 예상,
‘14세기에 하는 미래의 교통사고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보아야
인간이 창조한, 인간과 닮은 피조물에 대한 상상은 고대로부터 시작되어 16세기 연금술사 파라켈수스는 모태(母胎) 없이도 호문쿨루스라는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러한 상상력은 현재 사이버 펑크 장르의 소설이나 영화에 의해 구현되고 있다. 필립 K. 딕(1928~1982)의 SF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로 구현되어 이 분야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작품에 등장하는 복제 인간은 자신들이 인간과 동일한 지각 능력을 가졌음을 자각한 후 인류의 노예임을 거부하고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안드로이드 사냥꾼이 투입되어 추적하는 과정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기본 구조이다. 결국 작가와 감독은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어려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챗GPT, 소라(Sora) 등 인간이 창조한 지능인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보면 이제 이러한 물음이 더 이상 연금술사의 마법이나 소설과 영화 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곧 현실 세계로 다가올 것 같다. 2025년을 배경으로 인간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다는 영화 <허(her)>의 내용도 왠지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만 같다.
이와 같이 정보처리 능력이 인간의 지각 능력과 같은 (것처럼 보이는) 인공지능이 출현한다면 그들의 능력이 인간과 같은지 다른지는 어떻게 검증할 수 있을까? 존 설이 제안한 ‘중국어 방 논증’은 이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사고 실험이다. ‘나’는 중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중국어를 알 수 있게 하는 충분한 자료들이 구비된 방에 있다. 작은 구멍을 통해 중국인이 중국어로 작성된 질문지를 나에게 전달하면 나는 방 안 자료들을 통해 그 질문의 뜻을 알고 답을 쓴다. 이를 받아본 방 밖의 중국인은 나의 중국어가 완벽하다고 결론 내릴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중국어는 기호이며 상징일 뿐, 중국어를 알지 못한다! 여기서 ‘나’는 인공지능을 가리킴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시스템 답변’, ‘한국어 방 논증’ 등이 반론으로 제시되어 인공지능의 정보처리 결과는 그들이 진짜 그 내용을 이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쪽이 더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은 인지 능력과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복잡하다.
인공지능 시대,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어떻게 욕망의 불꽃을 소멸시킬 것인가 고민해야
뉴욕대학교의 게리 마커스에 의하면, 인공지능의 선구자인 마빈 민스키(1927~2016)는 1967년에 인공지능의 문제들은 한 세대 안에 해결될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또한 2002년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29년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 그의 예견에 절대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지는 의문이다. 2016년 IBM은 퀴즈쇼에서 우승한 인공지능 의사 ‘왓슨’이 의료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하고 그 후 약 2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자했지만 실패하고 그 사업을 정리했다. 2015년 페이스북이 내놓은 챗봇 프로젝트 ‘M’ 역시 3년 뒤 조용히 폐기되었다. 그뿐만 아니다. 2017년, 자율주행차를 연구해온 구글 자회사 웨이모 역시 자율주행의 시대가 바로 열릴 것으로 내다봤지만 앞으로 최소 10년, 혹은 더 먼 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이 ‘곧’ 출현할 것이란 담론이 확대 재생산되는 이유에 대해 마커스 교수는, 바둑판이라는 ‘닫힌계’에서 작동하는 알파고라는 인공지능을 예측 불가능한 이벤트가 발생하는 도로 위의 ‘열린계’에까지 적용한 결과이며, 기업의 관련 성과를 과장 보도하는 언론의 합작품이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인간과 같은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한 예상은 언제나 ‘언젠가’ 상태이고, 이는 흡사 14세기에 미래에 일어날 교통사고를 걱정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따라서 14세기에는 공중위생에 신경 쓰는 편이 더 가치 있지 않았을까 하며 『2029 기계가 멈추는 날』에서 풍자한다. 또한 듀크대학교의 미겔 니코렐리스 교수 역시 뇌의 생화학적 기제를 프로그래밍한다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 『뇌와 세계』에서 분석한다.
물론 이들의 지적이 세상의 변화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에 그 목적이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인공지능의 마음’, ‘인공지능의 불성(佛性) 찾기’ 등으로 회자되는 불교적 고찰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혹시 ‘14세기에 하는 미래의 교통사고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닌지도 늘 살펴보아야 한다.
부처님 재세 시나 ‘14세기’나 인공지능 시대에도 변함없이 인간의 욕망은 타오르고 있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어떻게 욕망의 불꽃을 현명하게 소멸시킬 것인가를 확립하는 것이 시대와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정상교|금강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 대학원 인도철학-불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금강대 불교인문학부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 『도쿄대학 불교학과-소설보다 재미있는 불교 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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