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불교의 관점에서 보는
사회참여에 대한 해석
이병욱
중앙승가대학교 강사,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불교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언가 적극적 이미지보다는 소극적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불교에 대한 일반적 인상은 적극적인 이미지, 곧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 자기 목소리를 낸다는 쪽보다는 조금 소극적 이미지, 곧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세상에 은둔하고 한가롭게 지낸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처럼 불교가 소극적인 인상을 갖게 된 것은 불교사상의 전반적 기조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불교에서 사회참여적 요소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동안 불교문화에서 적극적인 면이 적게 나타난 것은 그 시대적 배경과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 전제적 왕권 시대에 활발한 사회참여는 결국 정치에 참여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고, 이 경우 중앙 왕실에 좋지 않게 보이면 불교 교단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활발한 사회참여보다는 개인적 차원의 여러 실천행이 중심적 과제로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이므로 사회적 참여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은 상당히 줄어들었고, 오히려 사회적 참여를 긍정적 가치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때에 불교계에서도 불교 경전의 내용을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해서 사회적 차원의 여러 운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내용은 두 단락으로 나누어서 전개한다. 첫째, 보살의 자비 정신과 중생에 대한 존중 정신이고, 둘째 「보현행원품」에 나타난 사회참여적 측면이다.
보살의 자비 정신과 중생에 대한 존중(尊重 )정신
보살(菩薩)은 대승불교의 이상(理想)을 잘 나타내는 인간상이다. 보살은 자신을 구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부터 구원한다는 자비(慈悲)의 서원을 세워서 열반에 태어나지 않고, 생사의 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존재이다.
이 보살의 자비 정신을 잘 나타내는 것 가운데 하나가 『유마경』이다. 이 『유마경』에서는 ‘중생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보살도 아프다’라는 취지로 말한다. 중생이 무명(無明)으로 인해 애착(愛著)을 일으켜서 생사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병(病)이 있는 것이고, 그에 따라 보살에게도 병(病)이 생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해서 생사의 세계에 들어가서 중생과 함께 아파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비의 정신은 중생(사람)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중생에 대한 존중을 잘 드러낸 것 가운데 하나가 『법화경』의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다.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공경한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중생)이 미래에는 다 부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공경을 실천하는 상불경보살은 여러 사람에게 핍박을 받지만, 이에 전혀 굴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공경하는 실천행을 이어간다. 이러한 상불경보살의 행위에서 중생에 대한 존중 의식이 잘 드러난다.
「보현행원품」에 나타난 사회참여적 측면
앞에서 보살의 자비 정신과 중생 존중 정신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여기서는 한 걸음 더 나가서 보살 정신 속에서 사회참여적 측면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화엄경』 40권본 「보현행원품」에서는 보현보살의 십대원(十大願)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십대원 가운데 보살의 사회참여적 측면을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는 그 가운데 두 가지 대원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보현보살의 세 번째 대원(大願): 부처님에게 널리 공양을 드리는 것
보현보살의 십대원 가운데 세 번째 대원에서 사회참여적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을 자비의 마음으로 보호하는[攝受] 공양’,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이라는 표현이다.
먼저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봉사 활동)’은 개인적 차원에서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의미를 사회적 차원으로도 확장할 수 있다. 이제까지는 불교 경전을 주로 개인적 관점에서만 해석해왔다. 그것은 과거의 사회적 환경과 연결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전제적 왕권 시대에는 불교사상을 사회적 실천의 맥락으로까지 연결해서 해석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불교 경전을 개인적 관점에서만 국한해서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경향이 강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제약 요소가 많이 사라진 시대, 곧 국민의 주권이 강조되는 민주주의 시대이므로 경전을 해석할 때 과거의 전통에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을 해석한다면, 사회적 차원의 여러 활동도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에 포함될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차원에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서 사회적 구조를 개선하고 사회적 제도를 정비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확장된 관점은 ‘중생을 자비의 마음으로 보호하는 공양’, ‘중생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와 관련된 『화엄경』 「보현행원품」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선남자여!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최고이다. 말하자면,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공양,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중생을 섭수(攝受: 자비심으로 살피고 보호하는 것)하는 공양, 중생의 고통을 대신해주는 공양, 선근(善根)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 보살의 업(業)을 버리지 않는 공양, 보리심에서 벗어나지 않는 공양이다.(「보현행원품」)
2) 보현보살의 십대원 가운데 아홉 번째 대원: 중생을 항상 따르는 것
보현보살의 십대원 가운데 아홉 번째 대원, 곧 중생을 항상 따르는 것[隨順]도 사회참여적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여기서는 보살은 중생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보며 중생을 모두 이롭게 한다고 말하는데, 그 가운데 “여러 병환(病患)의 고통에 대해서는 좋은 의사가 되고” 또 “빈궁한 사람에게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도록 한다”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러 병환의 고통에 대해서는 좋은 의사가 되고”라는 표현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파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중생 병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 의사 또는 간호사 등이 되는 것만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이 의사 또는 간호사 등이 되어서 중생 병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 차원에서 개인 병환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시를 든다면,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의료보장제도를 잘 갖추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여러 병환의 고통에 대해서는 좋은 의사가 되고”라는 경전 표현의 의미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빈궁한 사람에게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게 한다”라는 말에도 앞에 소개한 관점이 적용될 수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빈궁한 사람에게 자신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던 보물을 알게 해서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차원으로 더 폭넓게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제도의 측면에서 소득보장제도를 잘 마련하고 다듬어서 빈궁한 사람이 몰랐던 보물, 곧 소득보장제도가 제공하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시 선남자여! 중생을 항상 따른다는 것[隨順]은 전체 우주와 허공계와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 (…) 곧 여러 종류의 중생에 대해 내가 모두 수순(隨順)해서 여러 가지 받드는 일과 여러 가지 공양을 전개한다. 이러한 공양을 실천할 때, 부처님을 공양하듯이 하고, 스승과 어른을 받드는 것처럼 한다. (…) 여러 병환의 고통에 대해서는 좋은 의사가 되고, 도(道)를 잃어버린 사람에게는 그 바른길을 보여주며, 어두운 밤에는 광명이 되어주고, 빈궁한 사람에게는 감추어진 보물을 얻게 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평등하게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한다.(「보현행원품」)
이상 살펴본 것처럼, 보살의 정신은 자비의 정신이고 중생을 존중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사회참여적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보현행원품」에서 제시하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 등이 개인적 차원으로만 해석될 필요는 없고, 사회적 차원으로 관점이 확장되어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경전의 내용을 현대의 관점에서 창조적으로 해석해나갈 때 불교의 현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병욱|한양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승가대 강사이면서 보조사상연구원 원장으로 있다. 저서로 『고려시대의 불교사상』, 『불교사회사상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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