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아님 너머로의
생성 변화’로 나아가는 길
김규칠
언론인
자연은 이용 대상물인가? 생명인가?
자연을 그저 주어진 이용 대상물로 보는가? 아니면 우리 생명처럼 보는가? 역사의 무대에서는 이용 대상물로 보는 사람들이 주역처럼 행동해왔다. 그 주류 행세를 해온 종교 그리고 보수와 진보, 좌우 이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은 힘 있는 인간이 다스리도록 주어져 있는 대상물’이라는 생각이었다. 토지, 광물과 동식물은 능력 있는 인간에게 그저 주어진 사물이란 것이다. 먼저 차지하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즉 자연은 인간의 노력과 노동이 있기 전에는 사회적으로는 ‘가치=제로(0)’라는 관념이었다. 지구 자연을 다스린다는 생각, 오직 인간의 개입에 의해서만 사용가치든 교환가치든 가치를 발생시킨다는 사고, 이것은 옳은 것인가? 무언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자연의 물화와 대상화, 지배와 침탈과 남획, 생산 극대화는
어느 지배 구조든 변함없어
대지의 자손이고 대지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그 대지와 대지가 낳은 수많은 중생의 존재를 무시하고 지배하겠다는 태도에서부터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원래 대지 자연은 모든 생명의 어머니요 길러주는 원천적 힘이며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터전이고 나중에는 돌아가야 할 품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이 인위적 상상과 조작의 관념에 의한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환상적 발상과 더불어 변질되기 시작했다. 신을 자기 종족만의 수호신으로 받들며 세력 확장적 종교 집단화의 물결이 휩쓸자, 대지에 대한 선점적 지배와 인위적 가공에 의한 이용 대상화의 사고는 정치·경제·사회적 필요성에 의한 조직화의 진행과 함께 추구한 권력에의 의지와 표리관계를 이루었다. 그 방식은 ‘대지 = 생명의 몸과 마음, 즉 뫔’이라는 순수한 야생의 사고를 부정하는 방향이었다. 그것이 신 중심의 종교적 세계관으로, 신의 대리인 - 신의 대리 통치자 체제 정립의 방향으로 전개되어갔다. 이 체제 정립은 정치적으로는 전제군주국가에서 입헌군주국, 나아가 근대적 입헌민주국가로 발전되어왔으나, 그 기본 가치관에서는 초기 전개 방식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을 인간의 이용 대상물로 보고 지배하는 관점에서 변함이 없었다. 이와는 방향을 달리해 고대 그리스의 질료주의적 사물 본질론을 비롯해 유물론적 세계관이 나왔으나 그것은 자연의 사물화 대상화 관념을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한동안 비주류 또는 이단으로 취급받으며 이어오던 이 사고가 근대의 유물론적 사상으로 다시 부상해 유물론적 변증법과 노동가치설 등의 모습을 띠고 체제에 대립하는 반체제 이념으로서 발전했다. 이 사상은 기본 관념에 있어서는 자연을 인간의 이용 대상물로 보고 지배하는 점에서 더 철저했다. 이리하여 물질적 생산력의 발전과 더불어 계급적 이해 대립과 주도권 싸움을 벌인 체제와 반체제 모두 자연에 대한 포획과 억압, 지배의 가치관을 공통적 사고 기반으로 심화해왔던 것이다.
불교는 소수의 새로움-되기 행동 윤리 중시
지구 자연과의 관계에서 보면 그들 둘의 세계관은 자연의 물화와 대상화, 그리하여 지배와 침탈과 남획, 그에 기반한 생산 극대화라는 점에서는 완전히 동일한 세계관이었다. 말하자면 두 시스템 모두 다 대지의 자연스러운 생성 원리에 반하는 인위적 침탈과 생산 편향 체제란 것이다. 이 인위적 체제는 사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 관계와 구조를 은폐한 작업에서 시작해 점차 그 기반을 다지고 강화되어왔던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는 선진(先秦)을 비롯해 동양에서도 전제 왕조 시대에서부터 오랜 기간 마찬가지였다. 연기법과 제법무아, 무위자연사상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유사한 세계관과 가치관 위에 세운 ‘종교·정치·경제 결합체’를 지향하며 국가를 건설하고 유지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세계관과 지배 구조에 기반을 둔 체제들 간, 그리고 나아가 체제와 반체제 국가들 간의 적대적 공생 또는 협조 관계가 형성되었으며, 그것이 전략적 대세의 힘을 발휘해왔다. 그리고 오늘의 병적 징후로 가득한 문명과 지구 환경 위기 및 대량 살상 무기 위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전근대와 근대, 좌우, 진보와 보수의 공통 사고방식은 ‘자연의 사물화와 이용 극대화 그리고 그를 위한 효율 최대화의 사회제도 실현’이라는 관념인바, 그 차원에서의 절충이나 실용주의 등은 어떤 것이 되었든 ‘권력에 의한 생산 중심 체제의 지배’라는 본질은 바뀔 수 없었다. 오직 자연을 뭇 생명과의 연기적 관계에서 ‘둘 아님’으로 받아들이는 차원에서만이 좌우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
『금강경』과 『심경』의 가르침에 의한 불교의 연기적 공(空)적 생성 변화 존재론에 의하면 자연과 생명, 대지와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사물의 관계는 ‘둘도 하나도 아니며 끊임없이 그 너머로 생성 변화’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동일성 중심의 조직화로 세를 불려가려는 지배 지향의 흐름과 이런 성향을 벗어나 미세한 분자적 소수의 움직임들이 새로움-되기로 생성 변이하려는 성향이 함께 진행하는 복합적 생성 과정이다. 불교는 이 소수의 새로움-되기 행동 윤리를 중시한다.
생성·선순환 프로세스와 지배적 생산 권력 주도 시스템 사이의
원초적 부조화와 모순이 위기 초래
지난 인류사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보면 출발에서부터 근본 문제가 있었다. 즉 지구의 생성·선순환 프로세스와 지배적 생산 권력 주도 시스템 사이의 원초적 부조화와 모순이 있었다. 이는 동서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심화된 현상이었다. 원래 생성·선순환 프로세스는 대지와 생명의 순리에 따른 잠재력 발휘, 즉 자연과 인간 공동의 건강성을 바탕으로 서로를 살려나가는 지속 가능한 활생의 과정이었다. 반면 생산 권력 편향 시스템의 동력은 자연을 다스림의 대상으로 삼고 포획해 인위적 물질력과 권력을 가능한 한 최대로 생산하고 행사하는 전략이었다. 그리하여 그 전략의 효율적 실행을 위해 인간의 사회마저도 ‘서열화해 다스리는 피라미드식 분류화 체계’로 구조화했던 것이다. 홍적세 후기 동식물 대학살과 신석기 농업 및 정주 도시화 혁명을 비롯해 몇 단계의 산업혁명을 거치며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이런 재생산과 증식의 최대화 일로의 귀결은 인간을 포함한 대지와 생태계의 생명성 고갈과 억압과 황폐화 과정이었다. 지금 그 극대화의 임계점에서 생산 위주의 편집증적 시스템과 그를 기반으로 한 문명의 지배력이 대지와 무력한 인간을 압도하며 세계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대지와 생명의 원천적 연관 관계에 대한 각성과 사회적 실천 통해
‘둘 아님 너머로의 생성 변화’로 나아가야 할 때
현재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지와 생명의 원천적 연관 관계에 대한 각성과 그 사회적 실천을 통할 수밖에 없다. 현대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은 ‘대지의 자연 순환 원리와 생명성의 역동적 둘 아님 관계’를 재출발선으로 삼아 과학기술의 발전을 선용하며 계속 ‘둘 아님 너머로의 생성 변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 첫째 과제는 대지(온 생명 포함)의 자생력 회복을 위한, 지구 자체의 개방적 선순환 및 생성 과정의 되살림이다. 즉 소비 결과 남은 물질 전부의 원천 환원 및 재투입(선순환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첨단 과학기술을 잘 활용하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계속 둘째 과제로 전진해야 한다. 무기력한 중생의 생명성과 진정한 인간 자유의 회복을 위해 자유경쟁 세계에 공익적 공공성 경쟁의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현대적 의미의 대승적 민풍(民風) 운동’이 필요하다. 이것은 대지의 지고적(至高的) 가치관에 기초한 홍익인간 이념의 현대화이다.(이와 관련한 상세는 대한불교진흥원 대원총서 『활생문명으로 가는 길』 제3부 등 참조 바람) 그 출발은 현행의 직접적 자유경쟁 시장 제도를 그 역사성과 법적 안전성의 현실적 결과로 인정한 기반 위에서 ‘공적 가치 자유경쟁 시장’을 신설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장의 입체적 복합화를 이룩하는 방식으로 재(再)제도화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대지와 온 생명의 지고적 가치를 종국적 목적으로 삼는 공익적 목적 가치들에 기여하도록 하는, 과학기술과 재화력(財貨力)의 선순환화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이 공적 가치 시장의 가치 목록(value list)을 국민의 직접 토론의 활성화와 의사표시에 의해 결정하도록 제도화할 수 있다면 현재 의회민주주의의 위기 돌파도 가능할 것이다. 공적 가치 시장에의 참여 방식을 비롯한 시장의 생성과 운용에 관해 국민의 의사가 최대한 발휘되고 보장되는 시장의 현대화 작업을 불교인이 선도하고 과업으로 삼을 수 있다면 현대적 의미의 불교적 행동학이 될 것이다. 이것은 지구온난화 문제 등 생태계 위기의 돌파를 포함해 보살도적 가치의 고양화로 향하는 획기적 조치가 될 수 있다. 이를 국제적 차원에서 추진하기 어렵다면 국내에서부터 시도할 수 있다. 이 길은 생태주의 또는 환경주의에 국한될 일이 아니다. 그런 노력들과 더불어 뜻을 모아서 AI 시대의 현대 기술 사회를 활생의 대지 위에서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다면 이 시대에 활로를 개척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불교적 법고창신의 정신을 발견해 불교의 현대화의 목표를 더욱 확실히 정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대적 의미에서 새로운 불교 진흥의 취지를 함께 지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
• 이번 호를 끝으로 <생태 위기의 문명과 불교사회인의 길> 연재를 마칩니다.
김규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동 대학 신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비엔나대학과 와세다대학에서 연수를 마쳤다. 외무고시에 합격해 18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했다. 『BBS불교방송』 사장,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과 이사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불교가 필요하다』, 『활생문명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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