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는 왜 인도에 가는가?
각전 스님
『인도 네팔 순례기』 저자
멀고 불편한 곳이라도 기꺼이 가려는 순례자의 마음
한국에서 부처님의 성지는 멀다. 그곳이 인도이기 때문이다. 비행기로 8시간이 소요된다. 그곳에 도착해도 문화와 인종이 다르고, 기후와 음식도 너무 다르다. 더욱이 인도 대륙 내에서도 불교 성지는 대부분 시골 마을들이다. 교통과 숙박 시설도 불편하다. 최근에는 도시 간 4차선 도로가 개통되어 그나마 도로 사정이 대폭 개선되었지만 이동 간 거리는 여전히 멀고, 여행의 하루하루는 불편으로 가득 차 있다.
그렇게 멀고 불편한 곳이라도 가려는 마음을 일으킬 때 순례자는 순례하는 의미의 반을 이미 달성한 것이다. 존재란 쉽고 편함을 좋아하는 것이 순리인데 이를 역행하니 순례자의 마음은 이미 저 언덕을 거닐고 있다.
4대 성지 순례
부처님께서도 사대 성지를 순례하라고 하셨다. 사대 성지는 여래께서 태어나신 곳, 깨달으신 곳, 첫 설법을 하신 곳, 열반하신 곳이다. 그곳을 참배하는 이는 죽은 뒤에 천상에 태어날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사대 성지순례를 권하신 것은 더욱 깊은 의미가 있다. 부처님께서는 이 네 곳이 절박함을 일으켜야 하는 장소라고 하셨다. 무엇이 절박하단 말인가? 죽음의 마왕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 절박하다는 말이다.
최근 인간의 수명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수명이 늘어난들 노·병·사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수명이 늘어난 만큼 오히려 노·병의 기간이 길어져 더욱 고달픈 인생이 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한량없는 세월 이전부터 태어남과 죽음의 고통을 인식하고 이것을 뛰어넘기 위해 정진하셨고 그 결과물을 우리에게 전해주셨다. 사대 성지를 방문할 때 우리는 부처님의 정진과 그 결과를 깊이 느끼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사대 성지를 순례하라고 하신 근본 이유이다.
탄생지 룸비니는 네팔에 있다. 네팔은 석가모니불뿐만 아니라 과거 7불 중 4불과 5불인 구류손불과 구나함모니불의 탄생지가 있는 곳이다.
부처님의 가까운 전생을 보면, 부처님의 바로 앞 전생은 마호사다 현자와 벳산타라왕이다. 마호사다 현자일 때 온갖 지혜가 무르익었으며, 벳산타라왕일 때 추방당하면서 행한 7백 대보시와 부인과 자식 보시로 보시바라밀을 완성하셨다.
그 후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면서 천인들이 탄생을 권하자 수명, 대륙, 지방, 가계, 생모의 다섯 가지를 살피셨다. 그때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정했는데 부인은 아살라 칠석제 기간에 보시를 크게 하고 몸과 마음이 깨끗했다고 한다. 이러한 탄생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업력에 의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태어남을 결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룸비니 사원은 그곳에 세워진 아소카왕 석주에 새겨진 비문에 의해 탄생지로 확정되었다. 사원 안의 탄생 지점에 탄생 부조와 불족적이 모셔져 있다. 건물 밖에 마야부인이 목욕했다는 연못이 있다.
보드가야에 있는 마하보디 대탑 |
◦ 보드가야
성도지 보드가야는 전 세계 불자들의 로망이다. 부처님의 성도 내용은 마왕 항복과 오도송에 잘 표현되어 있다. 부처님은 벳산타라왕의 생에서 행한 보시의 공덕으로 마왕의 공격을 최종적으로 격퇴한다. 이는 보시와 공덕이 원만한 깨달음을 위해 필요하다는 증거이다. 오도송 마지막 구절은 모든 갈애를 파괴했다고 선언해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한다.
현재의 보드가야 불탑은 5세기 이후 지어진 고탑형 불탑이다.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불탑 뒤의 보리수는 크게 자라 이 아래에 앉아 부처님께서 성도하셨다고 고함치고 있다. 주변에 7처 선정처가 있어 부처님의 깨달음을 더욱 자세히 알게 한다.
◦ 사르나트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는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비구를 만난 영불탑, 부처님께서 주석하셨던 여래향실과 많은 탑지가 있고, 아직 거대한 몸집을 남기고 있는 다메크 불탑을 볼 수 있다. 근처의 사르나트 박물관에 소장된 불상들이 아름답다.
이곳은 최초의 경전인 『초전법륜경』이 설해진 곳이며, 여섯 아라한이 최초로 등장한 곳이다. 오비구 중 교진여 존자가 깨달았을 때 부처님은 얼마나 기뻤을까? 자신 외에 최초로 누군가 자신과 동일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쿠시나가르 열반사(열반당)에 모셔진 열반상. 가사 불사하기에 좋다. |
◦ 쿠시나가르
쿠시나가르는 궁벽한 촌이지만 정감 있는 곳이다. 3개월 전 반열반을 선언한 데다 수많은 왕들과 귀족들을 제자로 두셔서 성대한 다비식을 할 수 있었으련만, 부처님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일 년 동안 노구를 이끌고 마지막 정리를 하시면서 자기 자신과 법에 의지하라는 자등명 법등명, 수행인은 스스로의 신심에 비추어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법경 법문을 설하시고, 많은 제자들에게 수기를 주셨다. 마지막 순간에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불방일 법문을 하셨다. 제자들의 앞날을 염려하는 대자비가 아닐 수 없다. 쿠시나가르에는 아소카왕이 세운 열반탑이 있고 그 앞에 굽타 시대의 열반당, 인근(1.5㎞)의 다비장에 라마바르탑이 있다. 열반당은 부처님이 누워계셔서 가사를 덮어드리기에 적합하다.
8대 성지 순례와 주요 성지
위의 4대 성지에 부처님이 이적을 보인 네 곳을 더한 8대 성지는 인도 순례의 기본이다. 그 네 곳은 데바닷타가 술을 먹여 부처님께 돌진시킨 코끼리를 항복받은 취상조복(醉象調伏)의 라즈기르, 원숭이 왕이 수많은 발우 중 부처님의 발우를 찾아내어 꿀을 가득 담아 공양 올린 원후봉밀(猿猴蜂蜜)의 바이샬리, 먹고 남은 망고 씨를 심자 망고나무가 즉시 자라나 망고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천불을 출현시킨 대신변(大神變)의 쉬라바스티, 천상의 어머니께 법문하고 하강하신 삼도보계(三道寶階)의 상카시아이다.
8대 성지는 보드가야를 제외하고는 유적이 많이 훼손되어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유적지의 오래된 벽돌 한 조각에도 성지의 역사가 깃들어 있음을 생각하면 옛 선인들이 살다갔을 그 장소에 발을 딛는 것만으로도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그 옛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동시에 성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인근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므로 박물관을 방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박물관들은 유적지에서 거리가 멀지 않고 규모도 크지 않아 관람하기에 용이하다.
8대 성지 외에 보드가야 남서쪽 54km 지점의 계족산(쿡쿠타파다기리)은 마하가섭 존자와 아상가(무착) 스님의 일화가 깃든 곳이다. 인도 서남부에는 마하라슈트라스주에 위치한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을 위시한 900여 개의 석굴들이 있다. 중인도에서는 불상 발상지인 마투라, 산치 대탑, 코삼비 등의 유적지를 만날 수 있고, 남인도에는 용수보살 유적지인 나가르주나콘다, 남인도 불교예술의 한 갈래를 이룬 아마라바티, 선을 중국에 전한 달마대사를 모신 첸나이의 달마사 등이 있다. 최근에 티베트 스님들이 집단 망명한 다람살라, 후블리 등 티베트 스님들의 거주처들이 형성되어 있다. 인더스강 상류의 간다라 지방을 방문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정화하게 되는 성스러운 성지순례
불교 성지는 불편하건만 인도에 다녀왔다고 하면 부러워하는 불자들이 많다. 왜일까? 그것은 여래의 향기를 맡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머무시던 방을 근본여래향실(물라간다쿠티)이라 하고, 법에서 향기가 난다고 해 법향(法香)이라 한다. 꽃의 향기는 바람을 타고 흐를 뿐이지만, 법향은 바람을 거슬러 퍼져 나간다. 성지에 가면 바로 이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그 향기에 취할 수 있다. 이 향기는 코로 맡아지는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온몸에 스며들어 내게서도 그 향기가 피어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향기에 취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매번 아쉽기만 할 뿐이다.
또한 순례 기간 내내 성지에 계셨던 부처님과 그 위대한 제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그것을 생각하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정신을 향상하게 하고 부처님과 그 위대한 제자들에게 가까이 가게 해준다.
성지에 계셨던 성인들을 생각하고 그분들의 향기에 취하는 동안 순례자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정화한다. 그 감동과 정화가 성지에서 돌아오고 난 뒤에도 다시 성지에 가고 싶은 마음을 재촉한다.
각전 스님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39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해양수산부에 근무하다가 궁극적 진리에 대한 갈망으로 출가했다. 현재 전국 선원에서 수행 정진 중이다. 저서에 『인도 네팔 순례기』, 『자카타로 읽는 불교』 등이 있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