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타고난 유전자가 아니다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내 삶은 유전자나 타고난 환경이 아니라
노력과 의지로 바꿀 수 있다
정말 좋은 유전자는 타고나는 것일까. 그런 물음은 우리 인류가 지닌 저마다의 개인적 콤플렉스를 건드린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모두 각자의 콤플렉스가 있고, 그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 유전자’와 깊은 관계가 있다. 피부색, 키와 몸무게, 이목구비의 모양 등과 관련한 수많은 유전적 형질들이 우리 고유의 콤플렉스와 연관이 된다. ‘엄마 닮아서 머리가 좋다’든지, ‘아빠 닮아서 키가 크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유전자 결정론이 뿌리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후성유전학은 ‘타고난 유전자’가 아니라 ‘후천적 경험과 노력’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후성유전학은 새로운 경험의 가치, 노력과 의지의 가치, 교육의 가치를 인정하기에 더욱 매력적인 학문이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반지성주의나 가짜 뉴스가 힘을 얻고,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다’는 믿음이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경험과 노력, 배움과 의지의 가치가 끊임없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바로 이렇게 ‘내 삶의 모습은 유전자나 타고난 환경이 아니라 나의 노력과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에 더욱 매력적이다.
후성유전학의 핵심적 메시지는 우리가 처한 환경과 맥락이 유전자 자체는 바꾸지 않으면서 유전자를 활성화하거나 침묵시킴으로써 우리 몸과 마음의 기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유전자에 새겨진 경험이 후대로 대물림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후천적 노력이 내 자손의 유전자 형질까지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로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는 일란성 쌍둥이는 나이가 들수록 신체 발달이나 성격 등 모든 측면에서 차이가 더욱 현저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우울증, 기억과 학습 능력, 하루 주기 리듬, 비만과 당뇨병, 자폐, 중독, 노화, 운동 및 영양, 환경 독소 등 인류가 처한 거의 모든 신체적 문제가 후성유전학을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인간의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후천적인 노력과 의지적 체험을 통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언어적 경험은 유전자 결정론의 암울한 전망을 극복할 수 있다
『Words Can Change Your Brain(말이 뇌를 바꿀 수 있다)』는 책을 쓴 앤드류 뉴버그는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평화” 또는 “사랑”과 같은 특정 긍정적 단어는 실제로 뇌와 신체 전반의 유전자 발현을 변화시켜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루 종일 경험하는 신체적, 정서적 스트레스의 양을 낮추는 방식으로 유전자를 켜고 끄는 힘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언어적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자리에 있든, 어떤 직업이나 환경에 노출되었는가와 상관없이, 유전자 결정론의 암울한 전망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 믿는다. 익숙한 모국어라 할지라도 매일 더 새롭고 아름다운 언어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책을 읽고, 외국어를 배우며,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하는 삶을 가꾼다면, 뛰어난 유전자를 타고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멋진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끊임없이 좋은 책을 찾아 헤매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단지 작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내 안에 ‘새로운 경험’이 쌓이고, 아름다운 언어의 방이 늘어나며, 삶을 용감하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진지한 사람들의 노력, 신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열정, 소문과 스캔들의 힘이 아니라 지성과 문화와 예술의 힘을 믿는 사람들의 연대가 절실한 요즘,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을 돌보는 풍요로운 언어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오늘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매일 질문하는 삶이야말로 변화의 희망이다
당신은 오늘 어떤 음식을 먹었는가. 오늘 어떤 책을 읽었는가. 어떤 뉴스를 보았고, 어떤 문자메시지를 읽고 썼는가. 이 모든 경험들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고, 그 모든 경험들 하나하나가 쌓여 우리 삶의 청사진을 변화시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유전자가 아니라 경험과 지식, 노력과 의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인류는 교육과 문화와 예술의 힘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유전자를 따지는 삶이 아니라 ‘오늘 내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매일 질문하는 삶이야말로 변화의 희망이 있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질 것이다. 그리하여 바로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가 매 순간 소중하고 중요하다.
정여울
KBS라디오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드뮤즈> 연재.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진행자.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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