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명상으로 실천하는 건강한 삶 | 최고의 건강관리, 불교에 답 있다

자비 명상으로 실천하는 건강한 삶
마음 하나로 세상 전체를 바꾼다

법상 스님
목탁소리 지도법사, 상주 대원정사 주지


온 세상이 나를 먹이고 입히고 키운다,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
자비심은 자심(慈心)과 비심(悲心)의 복합어이다. 자심은 자애심, 비심은 연민심이라고도 한다. 자심은 팔리어로 메따(metta), ‘일체중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비심은 팔리어로 까루나(karuna), ‘일체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심은 자심보다 더욱 적극성을 띤다. 괴로움을 겪고 있는 중생의 곁에서 함께 아파하고 치유를 위해 이타적 실천으로 이어진다. 그런 연유로 대승불교에서는 비심을 더욱 강조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자리이타(自利利他), 사회봉사 등의 용어는 비심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티베트 불교의 통렌(tonglen) 명상은 비심 수행의 극치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세상의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내 속에 받아들인다. 자신을 법신(法身)이라 여기고 그 고통을 무한한 연민심으로 승화시킨 다음 숨을 내쉬면서 친절, 기쁨, 자비심을 세상으로 내보낸다. 호흡지간(呼吸之間)에 나와 세계가, 중생과 부처가, 지혜와 자비가 둘이 아니게 함께한다. 나와 중생이 둘이 아니기에 일체중생을 치유하겠다는 원을 세운다. ‘내가 곧 부처’이며 ‘일체가 곧 법’이라는 불이(不二)의 자각에서 참된 명상은 드러난다.

세상은 인연법으로 이어져 있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연결되어 나를 돕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온 세상이 나를 먹이고 입히고 키운다. 이 세상이 있으므로 내가 있고 내가 있으므로 이 세상이 있다. 이렇게 연기법 세계에서는 무수한 존재가 공존, 공생하는 관계에 있고 너와 나는 둘이 아닌 하나이다. 우주 전체에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펼쳐져 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본질임을 인식해야 한다.

자비 명상은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는 것에서 출발
수행을 통해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지혜를 얻게 되면 세상이 자비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자비심이 저절로 우러나 지혜가 곧 자비가 되는 것이다. 자비는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분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진정한 자비심이 발현된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크게 실망할 일은 아니다. 보통 사람도 부단한 노력으로 자비심을 연습하면 내 마음속에 자비가 넘쳐흐르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비 명상은 아주 효과적인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자비 명상은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온갖 고난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어루만져준다. 과거 잘못을 모두 용서하고 자신이 흠결이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인다. 자신을 무한한 자비로 축원하고 자신이 자비 그 자체임을 인식한다. 자비 명상은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소나무가 참나무를 부러워하지 않듯이 누구나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두 번째로 사랑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행복을 축원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대상이 되는 가족, 친척, 친구, 지인들에게 자비심을 방사하는 단계이다. 다음으로는 일체중생과 우주 법계에 내가 일으킨 자비심을 널리 뿜어내는 연습을 한다.

가장 어려운 단계는 미워하는 사람에 대한 자비 명상이다. 고로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수행한다. 처음에는 미워하는 대상이 많을 수 있으나 수행이 깊어지다 보면 그 대상이 점차 줄어든다. 결국 그 명단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인생이 달라진다. 세상이 나를 사랑하고 있고 나를 돕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불이(不二)와 연기법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내가 곧 세상이고 세상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산속에만 머물러 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불교 수행은 세상일을 하나씩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 하나를 바꿈으로써 세상 전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비 명상 다음은 자비행과 보시행
경전에 보면 자비 명상을 수행하면 여러 가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첫째, 편안히 잠들 수 있고 악몽을 꾸지 않으며 아침에 즐겁고 가볍게 깨어날 수 있다.

둘째, 내 주변을 밝히고 사람들의 아낌을 받을 수 있다. 자비심으로 넘치는 에너지를 타인에게 방사하면 그들도 나를 돕고 배려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관여하는 모임이나 단체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고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게 된다.

셋째, 천신, 동물까지 나를 보호하게 된다. 자비심을 낼 때 마음이 파장을 일으킨다고 한다.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 생명체는 당연히 그 파장의 영향을 받는다.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던 수행자들이 곰, 뱀, 쥐 등 동물의 도움을 받은 사례는 무수히 전해진다. 심지어 식물에도 영향을 준다. 과학 실험에서 식물에 검류계를 장착하고 그 옆에서 자비 명상을 한 결과 검류계의 바늘이 심하게 떨리는 현상을 관찰한 바 있다.

넷째, 물, 불, 무기, 독물 등 무생물로부터도 해를 입지 않는다. 생물과 무생물도 둘이 아닌 하나로 파동친다. 전쟁터에 나가도 죽을 인연이 아니면 총알이 나를 피해 간다. 반대로 안전한 곳에 있다 하더라도 죽을 인연이 오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할 수 있다. 내가 사랑의 파동으로 물결치면 우주 법계가 사랑의 파동으로 응답한다.

다섯째, 마음이 쉽게 고요해지고 선정에 들게 된다. 수행은 저절로 뒤따라온다. 번뇌와 망상은 욕망과 집착에서 비롯된다. 시기, 질투에서 벗어나 타인의 행복을 진정으로 기뻐하게 되면 그 공덕은 내게로 돌아온다. 우주 법계에서는 너와 나가 둘이 아닌 하나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은 물론 생각까지도 내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은 남의 생각을 조합해 만들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 화초 잎이 시들어도 잎에 물을 주지 말고 뿌리에 물을 주어야 하는 이치와 같다.

여섯째, 죽을 때 평화롭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몸이 죽는 게 내가 죽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천의 세계에 이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자비 명상은 둘이 아닌 자기와 세상을 일시에 밝히는 공부이다.

자비 명상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자비행, 보시행으로 나아가야 한다. 화룡점정(畵龍點睛) 행위에 비유할 수 있다. 최근 불교 단체의 사회봉사 활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사회봉사 활동은 성취감을 느끼고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정신적 건강, 규칙적인 운동을 통한 신체적 건강, 공동체 의식과 소속감을 강화하는 사회적 건강 모두를 담보한다. 불자들이 앞장서서 작은 것부터 자신에게 맞는 봉사 활동을 찾아 함께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법상 스님
도문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99년부터 군승으로 재직하며 장병들에게 마음공부를 전했고, 인터넷 마음공부 모임 ‘목탁소리’를 이끌고 있다. 현재는 예편하고 목탁소리 근본도량 상주 대원정사 주지로 있으며 유튜브 ‘법상 스님의 목탁소리’로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저서로는 『붓다수업』, 『육조단경과 마음공부』, 『도표로 읽는 불교 교리』, 『수심결과 마음공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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