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 번뇌를 알아차리는 것이 번뇌를 다루는 가장 좋은 길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번뇌는 마음을 얽어매어 가두는 것
번뇌는 불교 고유의 가르침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을 모두 번뇌라고 하는데, 경전에서는 다양한 이름으로 번뇌를 부르고 있다. 번뇌는 ‘마음을 얽어매는 것’,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 또는 ‘(마음)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등으로 불린다. 마음을 얽어맨다[纏]는 것은 우리가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게 번뇌에 빠지게 된다는 뜻을 전달하고 있다.
고통을 일으키는 번뇌의 행동은 처음에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일이다.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 점점 고통스러운 것으로 변하고 급기야 빠져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번뇌는 마음을 얽어매어 가둔다고 말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즐거움을 주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 두 가지 번뇌가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 번뇌는 그 대상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나에게 즐거움 주는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같은 모습으로 있을 거야’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빠진다. 이것을 미망(迷妄)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번뇌는 즐거움을 주는 그 대상(사람 또는 사물)과 또 만나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은 갈망이다. 불교에서는 이 두 가지를 가장 근본적인 번뇌라고 말한다.
번뇌를 다스리는 기본 중의 기본, 감각 기관 지켜 자신의 감각 청정하게 해야
초기 불교에서는 이러한 어리석음과 갈망을 다루기 위해 수행자 스스로 감각을 단속하라고 가르쳤다. 수행자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고, 생각하는 여섯 가지 행위에서 너무 즐거워하거나 너무 싫어하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감각 기관을 ‘청정하게’ 지키는 것이다. “수행자가 사물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인식할 때, 보이는 것은 다만 보이는 것일 뿐이며, 들리는 것은 다만 들리는 것일 뿐이라고 여겨야 한다”라고 경전에서는 가르친다. 감각 기관을 지키지 않으면, 이를 통해 들어오는 외부 정보를 단순히 받아들이고, 알고, 그대로 사용하는 일에 만족하기 어렵게 된다. 예를 들어 만일 눈으로 형태를 볼 때, 감각 기관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세하게 살피려고 애쓰거나 그 모습에 반해 마음이 황홀해진다면, 번뇌가 안으로 흘러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매스미디어와 소셜미디어에 의존하는 현대인은 감각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만끽하며 살고 있다. 감각적 정보를 만끽한다는 것은 감각 정보에 관여하고 그것에서 쾌감을 얻거나 불쾌감을 느끼거나 근심하게 되거나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과 같은 감정적인 반응을 실컷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좋은 것에는 욕구를 느끼게 되고 싫은 것에는 혐오감을 가지게 되며 미래의 모습을 기대하고 야망을 품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각적 경험을 신뢰하게 되면서 머릿속에는 다양한 이론이 전개되고, 그 생각들과 자기 자신을 연결해 생각이 곧 자신이 되어버리는 함정에 빠진다. 만일 외부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집착하는 생각을 고수할 수가 없게 되면 허영심이 무너지고 좌절감이 뒤따르게 된다.
초기 경전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번뇌를 다스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자신의 감각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즉 감각적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을 주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일 엄청난 양의 감각적 정보에 노출된 현대인이 꼭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이다.
명상 통해 번뇌의 미세한 작용 알아차리는 연습 중요…
안식처 위한 명상에 머문다면 번뇌에 다시 사로잡힐 수 있어
다음으로 번뇌를 다스리는 좋은 방법은 명상을 통해 번뇌의 미세한 작용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마음의 번뇌는 매우 미세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그것이 미세하게 활동할 때 알아차리기 매우 어렵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실제로 명상을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마음의 고통을 더 키우게 된다.
여기 명상을 즐기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스트레스가 많은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조용한 장소를 찾아 명상의 자세를 취하고 호흡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나는 명상을 좋아합니다. 명상은 스트레스와 짜증, 분노와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마음에서 나올 수 있게 도와줍니다. 나는 잠시나마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지요.”
그는 명상에서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얻는다고 말한다. 휴식과 재충전으로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일시적으로 고요한 안식처를 찾을 수 있지만, 불교의 시각으로 보면 여전히 번뇌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안식처를 위한 명상에 머물고 만다면, 그는 다시 번뇌에 사로잡힐 수 있다.
휴식을 주는 명상이 무슨 문제인가 반문하고 싶지만, 번뇌를 다루는 수행자에게는 이런 식의 명상이 실제로는 해를 끼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힘든 상황에서 술이나 담배 또는 영화관을 찾는 것처럼 잠시 자신의 상황을 보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른 활동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그가 명상에서 나와서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의 정신적인 습관에서 나오는 번뇌를 다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전 행동을 기반으로 현실을 이해하고 주변의 세계를 만든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습관적인 에너지(vasana)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의식적인 습관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의식의 저변에서 반복하면서 영향을 끼친다. 의식적인 습관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바로 윤회이다.
명상을 통해서 마음이 어떻게 습관적으로 반복되고 있는지 알아차려서 그것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상에 능숙하지 못한 것이다. 명상에 능숙하다는 것은 단지 숨을 관찰하면서 호흡에 집중하라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 마음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번뇌의 작용을 살펴보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이 번뇌(akusala)를 능숙한 명상(kusala)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얼굴을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만일 얼굴에 더러운 것이 묻어 있으면 그것을 닦아내어 얼굴을 깨끗이 유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자신의 마음에 번뇌가 묻어 있지 않은지 항상 살피고 있어야 한다.”
“나는 탐욕을 품는가, 아닌가? 악의를 품은 생각을 하는가? 나태와 졸음을 극복하는가? 불안한가, 아닌가? 불확실함을 넘어섰는가? 화를 내는가, 아닌가? 더러운 생각인가, 아닌가? 내 몸이 각성해 있는가, 아니면 정신이 없는 것인가? 나태한가 아니면 끈기 있는 것인가? 집중력이 없는 것인가 집중이 없는 것인가? 항상 살펴야 한다.”
일단 번뇌가 일어나게 되면, 그 번뇌를 바른 마음으로 대치하지 않는 한, 그 자체의 본성에 의해 부정한 영향력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게 되고, 결국 괴로운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번뇌의 속성을 잘 이해해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적절히 다스려서 바른 마음으로 대치하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아무리 감각적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을지라도 번뇌에 얽히게 되는 일을 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항상 마음을 살펴서 번뇌를 알아차리는 것이 번뇌를 다루는 가장 좋은 길이다.
문진건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통합심리대 철학 및 종교연구소에서 석사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명상심리상담학과 책임교수를 거쳐 현재는 동방문화대학원대 불교문예학과 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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