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삼화사
자장율사의 원력과
세 여신이 화합 발심해
창건한 절
백원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두타산 자락에 위치한 삼화사는 영동 남부 지역의 중심 사찰
동해의 두타산(1,351m) 무릉계곡은 호랑이가 건너뛰다 빠져 죽은 소(沼)라는 전설이 있는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이르는 약 4km에 달하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두타산을 배경으로 한 별천지 무릉계곡에서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집필했고, 많은 시인묵객들이 기념 각명(刻銘)을 무릉반석에 새겼다. 두타산 자락에 위치한 삼화사는 영동 남부 지역의 중심 사찰이다. 두타(頭陀)라는 말은 ‘dhuta’를 소리 나는 대로 음역한 것으로 속세의 모든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 삼화사에는 다음과 같은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세 여신과 자장율사에 얽힌 삼화사 창건 설화
신라 서라벌에 진골 출신의 아름다운 세 처녀가 있었다. 이들은 집안 어른들끼리 왕래가 잦고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으므로 절친하게 지냈다. 혼기를 맞은 그녀들이 신랑감을 고를 무렵, 신라와 백제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 청년 장수 김재량은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왔다. 왕궁에서는 김재량을 위해 축하연을 열었는데 공교롭게도 세 처녀가 모두 이 자리에 참석했다.
김재량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세 처녀를 본 그날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처녀들 또한 김재량을 사모하는 마음이 걷잡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각자의 시녀를 통해 연정을 전했다. 김재량은 뛸 듯이 기뻐하며, 하나도 아닌 세 처녀를 번갈아가며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소문은 파다해졌고, 세 처녀는 좋은 친구 사이에서 서로 질투하고 적대시하는 사이로 변했다.
그러던 중 신라는 고구려와 전쟁을 하게 되어 김재량은 다시 전쟁터로 나가 많은 공을 세우고 돌아오다 그만 고구려군 첩자에게 암살되고 말았다. 김재량을 너무도 사랑한 세 처녀는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모두 두타산으로 들어가 두타고행을 해 마침내 여신이 되었다.
나림 여신, 혈례 여신, 골화 여신이 된 그들은 도를 얻고 신력을 갖추고서도 진실을 깨닫지 못했는지 김재량의 죽음을 서로의 잘못으로 미루며 저주했다. 또한 그곳 주민들이 산에 치성을 드리기를 원했고 복종치 않으면 노여워하며 재앙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오대산에 성지를 개산하고 동해안으로 내려오던 자장율사는 두타산의 산세에 감격, 그곳으로 향했다. 이때 자장율사를 본 나림 여신은 자신의 도를 시험하는 한편 스님이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해 스님을 유혹했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이 산의 산세가 하도 좋아 절을 창건할 인연을 찾으러 왔소.”
“참으로 거룩하십니다. 저도 따라가고 싶사오니 허락해주십시오.”
“산길이 험하고 힘들 것이니 훗날 절이 창건되거든 오시지요.”
여인의 동행을 거절한 자장율사는 초가을 달빛이 교교히 흐르는 산길을 삼경이 가깝도록 걸었다. 문득 인기척이 나는 듯싶어 뒤를 돌아본 율사는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먼발치에 여인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율사는 따라오는 여인에게 사연을 듣고 싶었으나 모르는 척 걸음을 재촉했다. 골화전에 이르러 율사는 외딴 주막집을 발견, 하룻밤 유숙하기로 했다. 어느새 따라 들어온 여인은 스님이 계신 방에 주안상을 들고 들어왔다.
“목이 컬컬하실 텐데 우선 한 잔 드시지요.” 잠시 대답이 없던 스님이 말문을 열었다.
“여인이여, 당신은 지금 신력을 얻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유혹하는군요. 자신의 몸뚱이가 더러운 물건을 싸가지고 다니는 것인 줄 모른다면 이는 전도된 인생입니다. 그 정도의 신력을 얻었으면 좀 더 공부해 열반의 세계에 안주토록 하시지요!”
나림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스님! 제 죄를 용서해주시고 앞으로 깊은 불법을 일러주십시오.”
“나림 여신이여! 참으로 장한 발심입니다.”
“어떻게 제 이름을…?”
“내가 잠시 선정에 들어 관해 보았지요.”
나림은 그만 감동해 스님에게 귀의했다. 처소로 돌아와 혈례와 골화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함께 귀의할 것을 권했으나 두 여신은 비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까짓 스님 하나 유혹하지 못하고 오히려 매수당하다니 우리 여신들의 체통이 말이 아니다. 우리 둘이 함께 가서 혼을 내주고 이곳에 절을 창건치 못하게 하자. 만약 절을 세우면 주민들이 우리에게 공양을 올리지 않을 테니까.”
“그 참 좋은 생각이구나.”
혈례와 골화는 즉시 호랑이로 변신해 자장율사 앞에 나타나 길을 막았다.
“이런 무례한 노릇이 있나. 아무리 축생이기로서니 스님의 길을 막다니, 어서 썩 물러가거라.”
“어흐흥….” 호랑이들이 으르렁거리며 달려들 기세를 보이자 스님은 금강 삼매에 들어 몸을 금강석같이 굳혔다. 호랑이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한 마리는 발톱으로 스님을 내리쳤고, 또 한 마리는 스님의 옆구리를 물었다. 그러나 사납게 달려든 호랑이는 발톱과 이빨만 다치고 말았다. 호랑이는 더욱 화가 나서 맹렬히 달려들다가 결국은 꼬리를 사리면서 도망치고 말았다. 이때 자장율사가 주문을 외우니 큰 칼을 든 금강역사가 나타나 도망치는 호랑이를 한 손으로 잡아왔다.
“자, 이제 너희들의 본색을 드러내거라.”
어쩔 수 없이 본모습으로 돌아온 여신들은 눈물을 흘리며 진정 잘못을 뉘우치며 자신들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잘못을 알았으면 두 번 다시 그런 죄를 범치 말도록 하시오. 미움과 시기, 질투는 모두 욕심에서 비롯되니 오늘부터 욕망의 불을 끄는 공부를 해 이미 얻은 신력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시오.”
이때 언제 왔는지 나림 여신이 와 있었다.
“스님, 스님의 원력으로 우리 모두 발심하게 되었음을 깊이 감사드리며 제가 앞장서서 금당 자리를 안내하고 스님을 도와 사찰 창건에 동참하겠습니다.”
자장율사가 나림 여신이 인도한 장소에 불사를 시작하니 세 여신은 장사로 변해 무거운 짐을 나르고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절을 쉽게 세웠다. 그 후 세 여신이 화합 발심해 창건한 절이라고 해 이 절을 삼화사(三和寺)라 명했고, 마을 이름도 삼화동(三和洞)이라 불리고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건국 과정에서 희생된 영혼을 위무하고, 고려 유민과 친고려 성향의 세력들을 달래어 민심을 수습하고 백성과 소통 화합하기 위해 삼화사에서 왕실 주관으로 ‘국행수륙대재’를 봉행했다. 전통 문화유산으로 보존·계승되어온 국행수륙대재는 2013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5호에 지정되어 국민 소통과 통합을 지향하는 상생의 지역 문화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백원기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방문화대학원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평생교육원장을 맡고 있다. 『불교설화와 마음치유』, 『명상은 언어를 내려놓는 일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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