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살았든?
사천 다솔사
인플루언서 황금공작편백나무의 고백
“나는 안심료가 부럽다”
나는 84세 된 편백나무다. 편백 중에서도 잎이 더 납작하고 황금빛 난다는 ‘황금편백나무’다. 나무는 인간하고 다른 건지, 사람들은 칠순이 넘으면 노쇠하더라만, 나무는 임계점을 넘으면서 능력이 무한해지는 것인지 여든이 넘으니 더 왕성하게 맑은 공기를 뿜어내게 되었다.
게다가 나와 형제들에겐 ‘만해 한용운 선생의 회갑 기념 나무’라는 별명이 있어, 나무치고는 명패도 있고, 이름도 있고, 기사나 방송도 여러 번 탔을 만큼 아는 이들에겐 꽤 이름난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나는 사람을,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 쭉쭉 뻗은 여러 갈래 나뭇가지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갈 때, 내 머리 위로 구름이 떠갈 때, 내 푸른 편백잎 위에 가볍게 앉아 새들이 종알댈 때, 그래서 나는 약 50m 정도 흙 마당을 공유하고 있는 안심료를 바라보며 늘 부러워했다. 천년 고찰 다솔사의 오래된 사랑방이자, 손님들의 요사채 ‘안심료’. 나는 저 툇마루가 되고 싶었다. 안심료를 찾는 이들이 온기 서린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만져주는 툇마루라도 되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람 손길 닿는 곳마다 반질반질해져서 기분 좋을 때마다 편백 향을 뿜어주며 살고 싶었다.
한용운, 김범부, 김동리, 최범술…
안심료에 머물렀던 사람들
독립운동가 겸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 선생은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고, 3년 징역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대쪽 같은 만해 선생의 3.1운동 당시 독립기념서 초안이 다솔사 안심료에서 탄생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17년부터 1918년까지 다솔사 안심료에 머물렀는데, 당시 안심료를 드나든 이들은 만해 선생만큼이나 대쪽 같고 고집스럽고 멋있는 사람들이었다.
경주 출신의 동양 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범부 선생이 큰형 같은 한용운 선생을 만나러 드나들었고, 그의 열여섯 살 터울 막냇동생 김동리는 나중에 안심료에서 형들에게 듣던 불교 이야기를 소재로 1961년 11월 종합 월간지 『사상계』 에 단편소설 「등신불」을 발표하기도 했다. 다솔사 뒷산의 야생 차밭에서 만든 차를 안심료에서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마시며 한국 근현대 다도의 문을 열었다고 칭송받는 ‘효당 최범술’ 선생도 독립운동가 겸 승려이자 정치인으로 살면서 늘 안심료를 그리워했다.
그들은 사천 땅을 밟기 위해 길을 나설 때부터, 또는 ‘다솔사로 가야겠다’ 마음먹을 때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안심료 툇마루에 누워 멀리 떠가는 구름을 바라볼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졌다. 그래서 ‘안심료’였던 걸까.
누군가의 그리운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싶어 나는 늘 안심료가 부러웠다.
안심료의 고백
“나는 다솔사 황금공작편백이 부럽다”
마당 건너 서 있는 저 황금공작편백나무는 벌써 84년째 자라고 있다. 하늘을 향해 키가 크고, 여러 개의 팔을 벌려 더 많은 가지를 뻗고, 매일 맑은 공기를 내뿜는다. 유명한 이들이 안심료, 내 품에 들어와 토론하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쉬었다 가는 것은 행복하지만 만해 한용운 선생의 환갑에 수많은 이들이 축복한 저 황금공작편백 삼 형제만 할까.
황금공작편백은 이미 84세라는 나이와 한계 없이 푸르른 풍모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황금공작편백으로 인정받고 있다. (출처: 2021. 『숲과 문화』 제30권, 이천용, 한국산지복원연구소장)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모든 이들을 토닥이는 다솔사
다솔사 적멸보궁 유리창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진신사리탑이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아름답구나. 너희는 서로를 부럽다 말하지만,
그 속에는 중생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서로를 이어주고 있단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니…
너희가 꿈꾸는 것을 꿈꾸고, 상상하렴. 너희의 진동이 너희를 그렇게 만들어줄 거야.”
오늘도 사천 다솔사에는 꿈꾸는 안심료와 황금공작편백나무가 살고 있다.
글|정진희
방송작가, KBS <다큐온>, <다큐공감>, <체인지업 도시탈출>, EBS <요리비전>, <하나뿐인 지구>, <희망풍경>, MBC <다큐프라임>, JTBC <다큐플러스> 등에서 일했고, 책 『대한민국 동네 빵집의 비밀』을 출간했다.
사진|마인드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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