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연기법과 공(空)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생명현상 | 화요 열린 강좌

연기와 공,
생명과학의 난제를 극복하다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

유선경 홍창성 지음, 운주사 刊, 2020년

생명과학 연구에 연기와 공의 시각을 도입하려는 이유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는 생명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불교의 ‘연기(緣起)’와 ‘공(空)’의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생명과학 연구의 갱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방법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생명과학 연구에 연기와 공의 시각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생명현상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고, 생명체와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그 현상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기는 모든 현상이 생기(生起)·소멸(消滅)하는 법칙으로 모든 현상의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상호 관계해 성립하고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음을 의미한다. 즉 사물은 조건에 의존해서(緣) 생겨나게(起) 된다. 이러한 연기법은 서구의 본질주의를 철학적 토대로 삼고 있는 생명과학이 직면한 난제에 해결의 시각을 제시한다. 본질주의는 고정불변한 ‘본질’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만물 하나하나가 수많은 조건이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생멸하고, 이 수많은 조건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변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고정불변한 본질’이라는 견해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에 필자들은 연기법과 연기법에서 도출된 불교의 가르침이 생명현상을 꿰뚫는 가르침이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생명현상 역시 존재 세계의 일부이며 연기법은 존재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향상이나 발전이 아닌 순수한 변화의 과정
‘진화’는 생명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생명과학을 납득하게 하는 관점이다. 필자들은 ‘진화’라는 단어의 역사적 변화를 검토하면서 그 의미를 “향상이나 발전이 아닌 순수한 변화의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진화가 정해진 자연법칙에 따라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된다는 ‘결정론’과 특정한 법칙이나 방향성 없이 순전히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과정이라는 ‘비결정론’이 가진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진화의 과정은 결정론적이지도 비결정론적이지도 않은 연기의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연기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된다.

노화가 질병에 걸릴 확률을 높이지만 자연적인 변화 현상
이 책이 공과 연기의 관점에서 ‘노화’에 대해 논하는 부분은 불교적 생명과학이 주는 통찰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필자들은 ‘노화’에 대한 불교적 이해에서 출발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실존적 문제를 생명과학 안에서 파악하고자 시도한다. 특히 질병을 얻게 되는 것이 노화의 필연적 현상이 아니라는 지적은 착각과 오인으로 유발된 불필요한 심리적 갈등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듯 생명현상을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논하는 이 책은 현재 생명과학이 처한 난제들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동시에 실존적인 문제도 다루고 있다.

10월의 <화요 열린 강좌>에서는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의 저자인 유선경 교수를 초청해 서구 생명과학의 한계를 짚어보고, 연기와 공을 통해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시각에 대해 들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김선우|화요 열린 강좌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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