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나라 미국에서 불자가 된다는 것 | 특집, 미국 불교

미국의 이민 불교

윤성하(선중) 교무
세인트올라프대학교 아시아·종교학과 교수


“이민 불교”의 실상 이해가 필요한 미국 불교
미국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미국 불교를 이해한다. 하나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불교”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계 미국인 개종자들의 불교”이다. 그러나 최근 불교 학자들은 이러한 두 가지 범주가 다양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미국 불교의 연구가 백인 엘리트 중심의 불교에 집중되면서 그것이 미국 불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소개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이 두 범주는 미국 내 다른 문화, 사회, 정치적 요인들과 결합해 “유럽계 엘리트 백인 미국인의 명상 수행을 중심으로 한 불교”와 “문화적 관습에 기반한 아시아인의 비이성적이고 미신적인 불교”라는 잘못된 인종주의적 인식을 확대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불교 연구는 미국 내 “이민 불교”의 실상을 더욱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150여 년 동안 미국에는 아시아의 여러 다른 역사적 맥락에서 발전한 불교 전통이 이민자들과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은 이민자들이 처한 다양한 미국 내 환경에 따라 독특한 변형과 발전을 거쳐왔다. 이 글에서는 이민 불교 현상을 전반적으로 다루기보다는 미국 내 한국계 이민자들의 불교 수용과 확산에 초점을 맞추어 조명해본다.

초기 한국 이민 사회는 불교의 부재와 기독교 우세
1900년대 초 하와이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초기 한인 불교도들은 불자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1931년에 한국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하와이로 이주한 도진호 스님의 개신교로의 개종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도진호 스님은 지속적으로 미국 정부로부터 일본의 스파이로 의심받았는데, 이는 그의 불교 신분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자 사회에서 불교는 일본인의 민족 종교로 인식되었다. 나라의 주권을 잃은 상황에서 한인 이주민에게 기독교는 민족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는 종교로서 더 큰 의미를 지녔다. 따라서 초기 이주 한국인은 기독교로 개종함으로써 선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얻을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주적인 한국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또한 한인들의 미국 이주 초기 정착 과정에서 기독교 선교사들의 적극적인 역할은 한인들의 대규모 개종과 미국 이민 불교에서 한인 불교의 약세를 가져오게 했다. 중국과 일본의 이민자들이 기본적인 생존과 적응을 위해 대부분 불교 사원에서 실질적인 도움과 정신적 위안을 얻었던 반면, 한인들은 개신 교회에서 그러한 도움을 얻었다. 해방 이후 기독교는 더 이상 이주 한국인들에게 정체성의 보루 역할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내 초기 이주 한인들에게 기독교화는 선진화, 그리고 미국화를 의미했다. 결국 이러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 이민 사회에서 불교의 부재 또는 약세, 그리고 기독교 우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 불교 지도자에 의한 포교 성과와 한계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미국에 합법적으로 아시아인들이 이민을 올 수 있게 되면서 미국 땅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 불교를 포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경보 스님(1964), 삼우 스님(1969), 고성 스님(1970), 숭산 스님(1972), 대원 스님과 도안 스님(1975) 등이 미국에 입국하면서 미국 내 한인들을 위한 이민 불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스님들은 하와이 무량사, 로스앤젤레스 달마사, 뉴욕 백림사, 워싱턴 타코마 서래사, 캘리포니아 테하차피 태고사, 캘리포니아 배닝 금강선원 등 전통 한국식 사찰을 건립해 미국 내에서 한국 불교의 중요한 초석을 다졌다. 또한 이들은 한국 불교학과 한국 문화를 활성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특히 미국 주요 도시에서 한국 불교의 선 센터를 열고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린 숭산 스님의 업적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미국 내 많은 한국 사찰들은 아직 한인 2세들을 위한 영어 교재나 프로그램을 마련하지 못하고 비아시안계 미국인들을 위한 법회를 개설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인 법회와 영어권 법회를 병행하고 있는 원불교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원불교의 미국 전파는 1972년 시작되어 언어, 문화, 경제적인 장벽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교단 차원에서 정식 대학원을 2002년 펜실베이니아주 글렌사이드에 개설해 미국 내 원불교 포교에 적합한 전문 인력을 양성해오고 있다. 현재 미주선학대학원은 원불교학뿐만 아니라 침구학과, 한약학과 석박사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한국 사찰과 원불교 교당은 여전히 “하우스 사찰 혹은 교당”으로서 규모나 시설이 열악한 상태이다.

기독교의 나라 미국에서 불자가 된다는 것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초기 미국 이민 역사에서 한인들은 기독교인이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가장 개화된 서구인, 즉 미국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현상은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한인 이민자들 중에 70~80% 이상이 기독교인이며, 이 중 40%가 미국 이민과 동시에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샤론 서 교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있는 한국 사찰의 불자들을 대상으로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미국에서 한인이 불교 수행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민족지학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서 교수는 미국에서 불교인이 되는 것은 사회적으로 소수자의 위치를 자임하는 것임을 지적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불교를 주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고단한 이민 생활에서 일상의 어려움을 보다 원만하게 해결하고 있으며, 한국인으로서 자아 정체성과 주체성을 더 명확히 확립하고 있고, 높은 자존감을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최근 첸싱 한의 연구는 80여 건의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숨어 있던 아시아계 미국인 불교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종교 공동체를 찾고 있는 4세대 일본계 미국인 정토 진종(浄土真宗) 불교도의 이야기, 이민자 부모가 문화적으로 불교를 대대로 전수한 아시아계 미국인 2세의 이야기, 다른 종교에서 성장해 불교로 개종한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첸싱 한은 이들이 갖고 있는 아시아계 불교도로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어 하는 관심이 범민족적, 범종교적 아시아계 미국인 불교 정체성의 가능성을 탐구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입 불교,’ ‘수출 불교,’ ‘수하물 불교’로 거론되는 미국 불교
잰 나티에르(Jan Nattier) 교수는 서두에서 언급한 이분법적 이해의 틀을 보완하기 위해 불교가 미국에 전래된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인들이 직접 아시아에 가서 배워 들여온 ‘수입 불교,’ 아시아 불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전파되는 ‘수출 불교,’ 그리고 이민자들의 보따리 속에 함께 들어온 ‘수하물 불교’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미국 불교를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는 한국 이민 불교의 형태가 ‘수하물’과 ‘수출’의 방식에 의해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 불교 전통의 발전과 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여기에서 다룬 한인 이민 불교의 모습 또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한국 불교 포교자들은 한국 불교의 전통을 미국 사회에 잘 뿌리내리고 모든 세대가 보편적으로 관심을 갖고 수행할 수 있는 불교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고민한다. 비아시안계 미국인들은 불교를 미국 문화와 토양에 맞추어 보다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형태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불교를 미국화해나가고 있다. 이민자들의 수하물로 들여온 불교는 역사적 상황들과 긴밀한 관계 속에서 발전해왔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국 이민자들이 불교의 신앙과 수행에 의지해 이민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삶을 개척해가는 그 모습 자체가 이민 불교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윤성하(선중) 교무
원불교 교무로 출가해, 샌프란시스코 교당과 밸리 교당에서 근무했다. 출가 후에 UC 버클리대학교에서 석사를, UCLA에서 불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미네소타주에 있는 세인트올라프대 종교학·아시아 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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