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고행에도 미소를 짓다 | 자현 스님의 비하인드 팔상도

설산수도상도(雪山修道相圖)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설산수도상도(雪山修道相圖)

붓다가 얼마나 처절하고 위대한 수행자였는지 보여주는 팔상도의 출가수행 장면
붓다는 화려한 왕성의 동쪽 문을 나가서 위대한 삶의 전환, 진정한 대자유인 출가를 단행한다. 왕궁과 출가는 ‘풍요’와 ‘결핍’이라는 극단적 대비의 아름다움을 내포한다. 여기에서 붓다는 안락한 허상을 버리고 소박한 본질의 굳건함을 선택한다.

팔상도 여덟 장면 중 하나에 출가수행을 배치한 것은 붓다가 얼마나 처절하고 위대한 수행자였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실제로 붓다는 스스로 “과거와 미래에 나처럼 혹독한 수행을 한 사람은 없다”고 회상했을 정도로 치열한 수행에 돌입했다.

그러나 팔상도의 제목처럼 그것이 설산수도, 즉 히말라야에서의 수행은 아니다. 붓다가 수행한 장소는 마가다국 왕사성 인근의 우루벨라촌이었다. 여기에서 북쪽의 히말라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히말라야는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웅장하고 장대한 만년설의 고향이다. 이 때문에 설산, 즉 눈 덮인 산으로 불리는 것이다.

구글 지도가 일반화된 오늘날, 히말라야에 신비의 베일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인도인들에게 히말라야는 하늘과 통하는 우주의 축이자, 모든 수행의 메카라는 마법이 존재는 성산이었다.

요가를 만든 시바 신은 히말라야의 카일라스산(향산, 향취산)에서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아 수행한다. 또 마나사로바(아뇩달지)는 가장 성스러운 호수로 갠지스강 등 큰 강의 발원지가 된다.

히말라야에 대한 환상은 1933년,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을 통해서 최근까지 유전된다. 이 책에는 히말라야에 존재하는 샹그릴라라는 늙지도 죽지도 않는 세계가 묘사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에 의해, 당시 서구에서는 히말라야와 티베트에 대한 광풍이 불어닥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리산과 계룡산이 도사들의 단골 메뉴라면, 히말라야는 모든 인도 수행자의 맛집이라고 하겠다. 이런 영향이 불교로 유입된 것이 바로 설산수도상이라는 명칭이다.

혹독한 6년 고행과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에 빙그레 미소 짓게 되는
통도사 <설산수도상도>
통도사 <설산수도상도>는 ① 좌측 아래에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출가한 붓다가 자기 머리카락을 차고 있던 보검으로 절단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이는 출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남방불교에는 이를 형상화한 도상이 많다. 그러나 조선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인식, 즉 최익현이 단발령에 항거해 ‘머리는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는 관점이 존재한다. 이로 인해 머리카락을 자르는 도상은 매우 희유하게 된다. 법주사 팔상전에 이를 표현한 불상이 있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하겠다.

머리칼을 자르는 붓다의 좌측에는 활을 든 인물이 서 있다. 붓다는 출가 직후에 가사를 입은 사냥꾼을 만나게 된다. 당시 동물들은 가사를 입은 수행자를 위협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가사를 착용한 수행자는 폭력적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역이용해서 사냥꾼이 위장복으로 가사를 착용하는 사례가 존재하게 된다.

붓다는 이 사냥꾼의 가사를 당신의 최고급 옷과 맞바꾼다. 자비와 구원의 길을 걷게 된 붓다가 생명을 죽이는 사냥꾼과 옷을 바꾸는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내포하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림의 ② 중간과 우측에는 붓다의 출가를 안 정반왕이 음식 등의 이바지를 보내고, 신하들을 파견해 돌아올 것을 회유하는 내용이다. 물론 붓다는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③ 우측 위에는 흰색으로 표현된 설산을 배경으로 붓다가 6년 고행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당시 붓다의 고행 내용으로 그림에는 “하루에 삼씨 한 알과 쌀 한 톨을 먹으니, 몸이 고목처럼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단정하게 선정인(禪定印), 즉 참선하는 자세로 앉은 붓다의 머리 위로 둥지를 튼 새가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붓다가 깊은 명상에 잠겼다 깨어나자, 새가 머리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반영한 것이다. 붓다는 자비심으로 움직이지 못했고, 다시금 깊고 오랜 명상에 잠겼다 깨어나니 새는 다 자라서 날아가고 빈 둥지만 남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적은 음식을 먹은 고행과 함께 붓다가 얼마나 깊은 명상을 했는지를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설명이다. ③은 바로 이를 표현하고 있다.

<설산수도상도>의 마지막은 ④ 좌측 위에 묘사되어 있다. 이곳에는 6년 고행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자각한 붓다가 니련선하에서 목욕하는 내용이 펼쳐진다. 강을 표현하기 위해서, 물고기들이 솟구치는 모습을 그린 묘사가 재미있다.

붓다는 고행 과정에서 기력이 소진되어 당시 물에 휩쓸려 떠내려갈 뻔했다. 이때 물의 신(阿斯那)이 강변의 버드나무 가지를 숙여 이를 잡고 나오게 조치한다.

무더운 인도에서 목욕이란 쾌락을 의미한다. 즉 고행의 포기에 대한 상징인 것이다. 이후 붓다는 목장주 딸인 수쟈타(善生女)가 공양한 우유죽을 받으며 점차 체력을 회복한다. 그런데 이 붓다의 자세가 이례적이게도 과감한 노출에 등을 닦는 모습이다. 이건 요즘의 목욕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익숙한 풍경이 아닌가!
붓다의 고행상(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 소장)

더구나 이제 고행을 마친 붓다의 두둑한 아랫배 표현은 이게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진기하기 짝이 없다. 마른 것보다 후덕한 것을 좋아하는 조선 시대의 미감이 발휘된 것이다. 실제로 그림 전체에는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의 <고행상>(사진)과 같은 바짝 마른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없다. 혹독한 6년 고행과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에 빙그레 미소 짓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자현 스님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율장), 동국대 미술사학과(건축), 고려대 철학과(선불교), 동국대 역사교육학과(한국 고대사), 동국대 국어교육학과(불교 교육), 동국대 미술학과(불화), 동국대 부디스트 비즈니스학과에서 총 일곱 개의 박사 학위를 받았다. 60여 권의 저서와 180여 편의 학술진흥재단 등재지 논문을 수록했다. 현재 문화재청 동산분과 전문위원, 조계종 성보보존회 성보위원, 사)인문학과 명상연구소 이사장, 월정사 교무국장, 그리고 중앙승가대 불교학부 교수 등을 맡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헬로붓다TV’에서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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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댓글

  1. 요즘
    불교문화
    교리,건축에 대해서
    찾아서 보고 듣고 읽고 하고 있는데
    이리도 자세히 잘 말씀해 주셔서
    두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는 이시대 선지식인으로
    저희들한테 많은 불교미술,문화,건축,좋은 글,말씀등을 전달해 주심에 제가 후반기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각과 정신,마음
    근육들로 잘 지탱하고 버틸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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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의 눈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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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설산수도상도
    동화구연 듣는 느낌처럼 재미나고 편안하게 설명해 주셔서 그림에 더욱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스님 말씀처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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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자상하신 설명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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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더운 인도에서 목욕이 수행포기의 상징 이라니 놀랍습니다 그것도 쾌락에 속한다니. 좀 씻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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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자현스님의 잼난 해설이 공부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그냥 스쳐지나칠 불화가 눈에 들어오는 잔기함..
    오늘도 잼난 공부했습니다. 21세기 최고 선지식..자현스님과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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