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 법정 스님 법문

당신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법정 스님(1932~2010)

점안식은 부처님 눈동자에 점을 찍는 의식을 말합니다. 전통 의식에서는 법사 스님들이 붓을 가지고 부처님 눈동자에 점을 찍는 시늉을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같이 진짜 점안식을 하려고 합니다. 저를 따라 해주십시오.

먼저 관세음보살 눈을 똑바로 보세요. 앉은 자리에서 합장하시고 외우는 대로 따라 하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손 내리십시오. 이제 되었습니다.

이게 진짜 점안식이에요. 여기 오신 분들께서 관세음보살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눈 맞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자기 짝을 찾을 때 눈을 맞추잖아요. 영국의 한 시인은 ‘술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온다’라고 읊었어요. 이처럼 눈으로 사랑이 시작됩니다.

여기 있는 관세음보살상의 눈을 통해서 여기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각자의 눈에 점안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여기 오신 분들이 오늘 이 시간부터 관세음보살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관세음보살은 특정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누구나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어요.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재난을 덜어주고 구제해주는 관세음보살
대자대비 구고구난(大慈大悲 救苦救難)

대자대비. 자비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쁨을 베풀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대자대비예요. 자비에는 ‘기쁨을 주다’와 ‘고통을 덜어주다’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원래 자비라는 말은 카루나(karuna)라는 범어에서 왔습니다. 카루나는 여성 명사예요. 하지만 보살은 성이 없습니다. 여성도 될 수 있고, 남성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자대비한 자비의 화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보살을 어머니상으로 나타내는 겁니다.

여기 성북동에 수녀원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 수녀님들이 여기 와서 관세음보살상을 보고는 “아이구, 성모 마리아상이네?”라고 했대요. 제 눈에는 백제 유물인 미륵반가사유상의 큰 모습으로 보여요. 좋은 상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관세음보살상이 될 수 있고 성모 마리아상이 될 수도 있는 거예요. 관세음보살과 성모 마리아는 같은 뜻이에요.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표현만 다를 뿐이지 둘 다 대지의 어머니를 뜻합니다. 이 땅의 모든 고통과 재난을 덜어주고 구제해주는 대지의 어머니예요.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일명 ‘관음경’이라고도 하는데, 『관음경』에 보면 중생의 소원에 따라 관세음보살이 여러 가지 몸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는 남자한테는 남자 몸으로, 여자한테는 여자 몸으로, 각자 기량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대로 소원을 들어줍니다.

구고구난. 관세음보살은 이 세상 모든 고통과 재난을 구제해주는 그런 분이에요. 관세음보살상을 보면 머리에 관이 있습니다. 연꽃으로 만든 화관이에요. 이 화관은 보살의 덕을 꽃으로 상징하는 겁니다. 또 왼손에는 항아리 같은 것을 들고 계시죠? 이게 감로수를 담은 병인데, 정병(淨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 시민이 천만이나 되니까 조그만 병으로는 안 되어서 항아리를 이렇게 안고 있는 거예요. 또 오른손을 펼쳐 보이는 것은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징들을 띠고 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을 보는 이마다 염원을 하게 됩니다.

관음재일은 관세음보살을 기리고 공양하는 날
오늘 관세음보살과 눈을 맞추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되었어요. 각자의 원을 스스로 이루도록 정진하십시오. 그저 관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이 관세음보살이라는 생각으로 원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또 관세음보살로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생각하십시오. 대자대비하고 구고구난한 관세음보살이기에 나 자신이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겁니다. 어머니, 아버지, 직장인 할 것 없이 일상 사람들이 모두 관세음보살의 화신입니다.

오늘이 관음재일입니다. 관음재일은 관세음보살의 생일이 아닙니다. 오늘을 즈음해서 관세음보살을 기리고 공양하는 것이에요. 오늘 우리가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이 앞에서 공양을 올렸잖아요? 깨끗한 마음으로 꽃을 올렸고, 우리의 마음도 올렸습니다. 성북동 일대에 희한한 향기가 이렇게 감도는 것이 우리 자신이 관세음보살의 화신이 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제 집에 가셔서 식구들이 좀 귀찮게 하더라도 내가 관세음보살인데 이만한 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서야 되겠는가, 또 아버지들도 어머니들이 뭘 좀 해달라고 보채도 오늘부터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었는데 이런 것 가지고 인색해서는 되겠느냐, 이렇게 마음먹으십시오. 이런 것이 정진입니다. 이런 마음을 돌이키게 되면 내 안에서 보살의 화관이 생기고 감로수 병이 생기고 남의 원을 들어주려는, 헌신하려는 그런 능력이 개발됩니다. 허튼소리가 아닙니다. 누구나 대자대비하고 구고구난하면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이 마당에 관세음보살상을 세운 이유가 그것입니다. 이 세상이 거칠고 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이에요.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거예요. 때문에 대자대비란 성상을 모심으로써 새로운 기운을 펼치고자 이곳에 이렇게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겁니다.

네, 여러분은 오늘 관세음보살이 되었습니다.

● 이 법문은 『좋은 말씀-법정 스님 법문집』[법정 저, (주)시공사 刊, 2020년]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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