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에서 인생의 좌우명을 얻다
문성민
성균관대학교 사학·사회학 4학년, 성균관대 불교학생회 회원
현재를 살아가는 ‘나’를 깨닫다
이번 대원청년회 워크숍에서 들었던 한마디가 ‘나’(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고정된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작은따옴표를 붙였다)에게는 앞으로의 인생에 방향을 제시해줄 하나의 좌우명이 되었다. 대강 이런 요지의 말이었다.
“명상은 자신이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를 살아감을 확인하는 징표이다.”
그동안 ‘나’는 현재를 살아감을 깨닫지 못했다. ‘나’에게 현재란 과거라는 목줄에 단단히 묶여 미래라는 먹이를 쫓는 사냥개였다. 목줄에 조여 인간의 먹이가 되거나 먹이를 쫓다 지쳐 쓰러지거나, 자신이 빛깔 좋은 늑대임을 망각한 채 서서히 죽어갈 그런 사냥개. 과거의 악연에, 미래의 불안감에 항상 ‘나’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에 온 정신과 육신을 집중했다. 등산을 좋아하는지라 평소 북한산에 자주 가는데, 매번 산 중턱에서 바람을 맞으며 명상하곤 한다. 명상할 때마다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저 고요해진다. 단지 ‘나’는 숨 쉬고, 느끼고 생각한다. 오로지 현재에 발맞추어 있을 뿐. 현재가 곧 ‘나’이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잡념, 즉 근심 걱정과 두려움, 우울함과 분함은 현재가 무뎌질 때 나타난다. 현재가 무뎌지면, 현재를 당연시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현재는 마치 고정된 것처럼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사실 다 지나가는 것들이다. ‘나’는 줄곧 과거에, 미래에 집착하며 고통스러워했다.
명상에 집중한 3일...
명상하는 듯 현재를 살며 현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작심의 기회로 삼다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 이번 워크숍 기간에 나는 더 신실해졌다고 자부할 수 있다. 첫날 명상 이론 강의-앞에 인용한 말은 그 강의 때 나온 말이다-부터 둘째 날 경주 남산 걷기 명상, 셋째 날 집중 명상까지 매주 한두 번이 고작이었던 내 일상은 3일간 명상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오로지 현재만이 있을 뿐이며, 그 현재조차도 결국 지나간다는, 즉 모든 것은 공(空)하면서도 연기(緣起)한다는 보배로운 진리를 줄곧 확인할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물론 이번 워크숍에서 멈춰서는 안 되겠다. 명상이 공한 현재를 살아가는 공한 ‘나’를 확인해주는 시간이라면, 이것을 평생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명상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매 순간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어야 한다는 표면적인 당위가 아니라, 명상하는 듯 현재를 살며 현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작심으로 삼아야 하겠다.
불교와의 인연이 닿은 후로 ‘나’는 불교의 장대한 역사를 연구하여 불교계에 한 획을 긋겠다는, 인생의 큰 서원을 세웠다. 불교의 교리와 역사를 깊게 하는 것(敎)도 중요하지만 실천(禪)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명상을 통해 ‘나’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살아가며, 그 현재, 심지어 ‘나’조차 공한 것임을 깨닫고 매 순간 고요함으로 비워내야 하겠다. 이번 워크숍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작은 이정표가 되었음을 다시 한번 밝히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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