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감정노동이 아닌 나를 위한 것 | 정여울 작가의 책 읽기 세상 읽기

자비, 공감은
타인뿐 아니라
나를 위한 것

『행복은 뇌 안에』


문해력 뛰어난 사람이 공감 능력도 뛰어나
요새 아이들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기 아이가 자신의 아픔에 공감해주지 않아 부모가 상처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타인의 슬픔에 아무런 연민이나 공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는 고민 상담을 듣기도 한다. 공감 능력 결핍은 컴퓨터 게임이나 온라인 세계에 친숙한 아이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전 세대로 확장되고 있다.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문해력 부족’으로 인한 ‘공감 능력 결핍’ 문제를 겪고 있다. 다양한 상황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그리고 워낙 상황이 복잡하다 보니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할 때, 문해력은 물론 공감 능력까지 줄어든다.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과 공감 능력을 키우는 방법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실제 세계보다 디지털 세계에 더욱 친밀감을 느끼는 아이들 또한 문해력이 심각하게 부족한데, 이 또한 결국 문해력 결핍이라는 인류 공통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문해력은 ‘길고 복잡한 텍스트를 이해하는 능력’인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이야말로 그런 길고 복잡한 텍스트와 닮았기 때문이다. 즉 한 권의 어렵고 두꺼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이고 공감 능력 또한 뛰어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공감은 감정노동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해
『행복은 뇌 안에』를 읽으면서 나는 ‘공감 능력’을 일종의 ‘감정노동’으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를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공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이 책의 부제는 ‘타인 공감에 지친 이들을 위한 책’이다. 그만큼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조차 힘든 감정노동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처럼 공감 능력은 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심리학자뿐만 아니라 뇌과학자도 ‘자기를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날수록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 즉 공감 능력도 뛰어나다고 입을 모은다. “흥미롭게도 자신의 내부 감각 신호에 민감한 사람들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더 뛰어납니다. 가령 자기 심박수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사진 속 인물의 미묘한 표정을 더 정확하게 구분해낼 수 있고, 타인의 고통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알려져 있죠. 이런 결과들은 자기 신체 내부의 감각 신호를 인식하는 뇌섬엽의 기능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 간에 긴밀한 관련성이 있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읽어내는’ 사람이 타인의 상태와 마음을 이해하는 데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야말로 문해력과 공감 능력의 시작인 셈이다.

그러니 우리는 공감 능력을 ‘귀찮고, 힘들고,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는 마음의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뇌는 정서적, 인지적, 행동적 측면에서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 자신에 대한 오해를 좀 풀면 좋겠어요. 우리는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선함이 있어요. 남을 도울 때 보상 센터에 불을 켜면서 진정한 기쁨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세계적으로 기후 이상과 식량난, 에너지난이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워 공동체 전체의 위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해내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불교의 ‘자비’야말로 인류에게 필요한 공감 능력의 본질을 체현하는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다른 이름 아닐까.

생산량이 줄어도 80억 명이 위험을 골고루 분담하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세상은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식량 위기가 자체적으로 증폭될 거예요. 약 7억 명의 난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요. 먹고살려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거예요.

세상이 정의로워지지 않는다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타인이 안전해야 내가 안전해져요.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서로를 설득해야 해요. - 『행복은 뇌 안에』 중에서

정여울
작가, KBS제1라디오 <이다혜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진행자. 저서로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문학이 필요한 시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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