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은 왜 탄생하셨나?

부처님 오신 날의 의미

안양규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


보살의 탄생과 붓다의 탄생
엄밀히 말하면 보살(Boddhisatta)의 탄생과 붓다(Buddha)의 탄생은 구분되어야 한다. 대승불교가 일어나기 이전에 사용된 보살은 고타마(Gotama) 싯달타(Siddhattha)가 35세에 정각을 이르기 전의 수행자를 지칭한다. 무수한 과거 생에서부터 시작해 현생에 고타마 싯달타로 태어나 출가 수행해 정각을 이루기 전까지의 수행자를 보살이라고 부른다. 보살은 헤아릴 수 없는 전생을 통해 수많은 중생들을 위해 심지어 자신의 생명마저도 보시하였다. 『자타카』에 나오는 대표적인 예를 보면, 사슴 왕으로 태어나 사슴 무리를 구제하고, 원숭이 왕으로 태어나 원숭이 무리를 위험에서 구제하고, 물고기로 태어나 수중 생물을 구원하기도 하였다. 이번 생애엔 인간인 왕자로 태어나 인간을 비롯한 모든 중생들을 위해 행복의 길을 보여주셨다.

붓다의 탄생에 관한 전설 중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중심으로 붓다의 탄생 이야기를 되새겨보자.

연꽃을 든 코끼리 태몽
마야 부인은 하얀 코끼리가 코로 하얀 연꽃을 들고 북쪽에서 내려와 마야 부인이 누워 있는 침상 주위를 세 번 돌고 나서 우협을 통해 자궁으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고대 인도에서 코끼리는 구름을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신앙되었다. 여름 불볕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비를 내리게 하는 구름은 코끼리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상의 사람들은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코끼리를 모신다. 강우, 농작물의 풍요, 왕국과 백성의 번영을 위한 제사에서 코끼리는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코끼리는 농작물의 경작에 필요한 물을 관리하므로 고대 인도인에게 가장 숭배되었다. 붓다의 탄생 전설에 코끼리가 태몽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보살의 일대사가 인류의 행복과 안락을 위한 것임을 천명하려는 것이다. 연꽃은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상징한다. 뿌리는 더러운 진흙에 파묻혀 있지만 연꽃은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붓다도 번뇌로 가득한 윤회의 세계에 태어나 살지만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청정하게 사는 것이라고 해 연꽃을 정각을 이룬 붓다에 비유하고 있다.

보살의 입태
붓다의 탄생은 보통 중생의 출생과 구분된다. 정념(正念), 정지(正知)한 상태로 보살은 도솔천에서 죽어 그의 어머니 태에 들어갔다고 한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념과 정지라는 정신의 각성 상태에 관한 언급이다. 윤회의 원리에 의해 어느 한 세상에서 죽어 다른 생애를 받을 때 절대 다수의 중생은 깨어 있지 못해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붓다는 죽음에서 재생으로 전이되는 순간에도 각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붓다는 입멸 직전에도 정념, 정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투시타(Tusita) 천상에서 보살이 모태에 들어갈 때 세계엔 32가지 상서러운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간략히 소개해보자. ① 무한한 빛이 온 세계에 뻗쳤다. ② 맹인이 시력을 회복했다. ③ 귀머거리가 청력을 회복했다. ④ 벙어리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⑤ 꼽추의 허리가 곧게 펴졌다. ⑥ 절름발이가 걷게 되었다. ⑦ 구속된 중생이 감옥이나 족쇄에서 풀려나게 되었다. 이상은 인간, 특히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보살의 입태 계기로 장애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① 지옥의 불이 꺼졌다. ② 아귀의 굶주림과 기갈이 해소되었다. ③ 축생의 공포가 사라졌다. ④ 중생의 질병이 없어졌다. ⑤ 중생이 친절해졌다. ⑥ 말과 코끼리가 부드럽게 울었다. 이상은 3악도(惡道)의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난 것을 말하고 있다. 요컨대 보살의 입태는 지옥 중생을 포함한 일체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는 일임을 말하고 있다.

단지 일체 중생의 행복뿐만 아니라 자연환경도 아름다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① 온갖 종류의 악기가 연주되었다. ② 시원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모든 중생을 상쾌하게 했다. ③ 바다가 달콤한 물로 변했다. ④ 표면 어디에서나 5종류의 연꽃이 피었다. ⑤ 온갖 꽃들이 땅이나 물에서 피었다. ⑥ 연꽃이 하늘에 나타났다. ⑦ 꽃비가 하늘에서 사방으로 내렸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짠 바닷물이 맛있는 물로 바뀐 것은 무생물인 자연도 보살이 이 세상에 온 것을 축하한다는 뜻이다. 보살의 입태는 일체 중생을 포함해 우주적인 경사임을 보여준다.

살라 나무 아래에서 탄생
살라(sala) 나무 아래에서 붓다가 태어났다는 것은 수목과의 깊은 인연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정각을 이룬 것이나 살라 나무 아래에서 입멸한 것도 수목과의 긴밀한 인연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하마야(Maha-ma-ya-) 왕비는 출산 시기가 다가오자 친정이 있는 데바다하(Devadaha)로 가고자 했다. 카필라밧투(Kapilavatthu)와 데바다하 사이에 룸비니(Lumbini) 동산이 있었는데 이 동산엔 살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문헌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때 살라 나무는 뿌리에서 가지 끝까지 온통 꽃이었다. 나뭇가지 사이와 꽃들 사이엔 오색 벌들과 온갖 종류의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왕비가 그 광경을 보자 숲에서 노닐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시녀들은 왕비를 모시고 그 숲으로 들어갔다. 왕비는 커다란 한 살라 나무 아래에 가서 가지를 잡고자 했다. 부드러운 갈대처럼 살라 나무 가지가 아래로 굽어져서 왕비의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왕비는 손을 뻗어 그 나뭇가지를 잡았다. 그때 산기를 느꼈다. 시녀들이 왕비를 위해 가리개를 설치하고 물러났다. 왕비는 가지를 잡고 선 채 아이를 낳았다.”(『Jataka atthakatha』 p.52)

보살이 태어난 계절은 봄이다. 추운 겨울이 빨리 끝나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희망은 생명에 대한 동경이며 사랑이다. 새싹 돋는 봄은 생명이 탄생하는 계절이다. 겨울 동안 죽은 것 같기도 하고, 완전히 없어진 것 같던 것들이 연두색 싹을 틔우며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을 보면 우리는 생명의 신비를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새싹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는 것은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이 탄생하는 봄에 보살이 탄생했다는 것은 모든 중생의 생명을 새로이 싱싱하게 만드는 일과 관련된 것임을 의미한다.

보살의 탄생게
보살이 태어나자 곧 대지에 두 발로 굳건하게 서서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음을 걸었다. 하얀 일산이 보살의 머리 위로 펼쳐졌다.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대중의 지도자로서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최고이다. 나는 세상에서 최상이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연장자이다. 이번 생애가 나의 마지막이다. 다시는 나에게 재생은 없다.”(MN iii p.123) 탄생게의 내용은 정각과 열반의 성취를 전제로 한 것이다. 뒷날 주석서에는 탄생게를 정각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지에 두 발로 굳건하게 선 것은 4신족(神足)의 성취를 의미하고, 북쪽은 다수의 대중을, 일곱 걸음은 7각지(覺支)를, 일산은 해탈을, 사방을 둘러본 것은 전지(全知)의 성취를, 대중의 지도자로서 말했다는 것은 초전법륜을 의미하고, 탄생게는 무여의열반의 성취를 의미한다. 생물학적인 보살의 탄생 전설은 종교적인 붓다의 탄생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다. 종교적인 붓다의 각성, 즉 무명의 잠에서 깨어남에 관한 시각이 생물학적인 붓다의 탄생 전설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수행자로서 보살의 탄생은 수행 완성자로서의 붓다의 탄생(정각)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살의 탄생은 결국 붓다의 탄생으로 완성된다. 보살은 무수한 과거 전생을 통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수행했고, 붓다는 지혜를 완비해 현생에서 중생을 위해 유익한 가르침을 베풀었다. 자비행을 행하신 보살의 탄생과 붓다의 탄생은 이기적인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에게 일체 생명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열게 하는 의미로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은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한 날이다.

안양규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불교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동경대 연구원,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학과 교수로 있다. 역저서로는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 『The Buddha’s Last Day(Pali Text Society)』 등이 있고, 「사고의 역기능과 그 해결- 붓다(the Buddha)의 가르침과 아론 벡(Aaron T. Beck)의 인지치료(Cognitive Therapy)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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